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어릴적에는 진짜 똥밭이 있었습니다.
내고향 인천은 당시 도시라고는 하지만
시골과 진배 없었습니다.
부지런한 우리 부모님들은 자투리땅이라도 일구어
텃밭을 만들고 밥상에 올릴 찬거리를 만드셨지요.
그 밭에는 늘 변소에서 퍼온 자연산 비료들이 뿌려졌습니다.
전쟁에서 쓰였을 철모속의 하이바에 긴장대를 꽂아만든 똥바가지로
나무로 만든 통에 담아온 천연비료를 밭에 뿌리던 기억이
아삼삼 떠오릅니다.
찬바람이 불때쯤에는 수확이 끝난 너른 밭을
친구녀석들과 작대기 하나씩을 들고 쑤시고 다닌 기억입니다.
그러다 미처 수확되지 못한 무우라도 발견하면
그자리에서 다리춤에 흙 슥슥 문질러대고
턱주걱을 만들어 이빨로 득득 껍질을 벗겨내고 먹던
시원한 무우맛은 아직도 상큼합니다.
김장용 배추를 경작하고난 밭에서는 배추 꽁다리를..
더러 고구마나 감자밭에서는 큰 횡재를 했던 기억입니다.
그 밭에는 비료와 함께 밭에 뿌려졌다가
인분은 삮아들고 누런 공책 쪼가리들만 찬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녔지요.
그 종이들을 모아 비쩍마른 수수깡대를 꺽어 불을 붙이면
그 따뜻한 불이 참 좋았습니다.
거기에 고구마며 감자를 구워먹고
수수를 끄슬려 손으로 비벼서 껍질을 불어내고 먹던
그 맛은 아마 죽어도 못잊을거 같습니다.
그을음에 시꺼멓게 된 친구녀석 얼굴을 서로 보며 낄낄대던
모습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그러고 우물가나 개울가로 달려가 씻다가
장난기가 발동한 한녀석의 시작으로 옷이 다 젖어버리고
오돌오돌 떨면서 집으로 달려가면
엄마한테 야단맞던 기억들... ㅎㅎㅎ
그당시는 종이도 참 귀했습니다.
온전한 신문지는 벽지로 귀한 대접을 받았던 기억이구.
딱지 접을 종이도 귀해서
미제봉투 종이로 만든 왕딱지는 일전씩인가 돈으로
거래도 된 기억입니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 어렸을적에 딱지를 접어주면서
아빠 어렸을 때는 딱지 접을 종이도 없었다고 하니까
믿지를 않으려던 기억이 나는군요.
우리어릴적에는 그렇게 똥밭을 구르며 놀았습니다.
요즘은 이승에 굴러도
어찌 그 똥밭에 구를때 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ㅎ...
2010.02.05. 05:53
정수.

멀리 떨어져있는 우리 친구님이 더욱더 고향생각과
옛생각이 나는구만요...그래도 추억할수있는 과거가 얼마나 좋소?..
세월이 흐른후에는 지금에 이런 얘기도 또 과거가 될게고...

그곳에 네가 있었구나!!


보리따서 불에구워먹고^^ㅎㅎ많은 추억들이생각난다^우리여자애들은 삔따먹기도 했는데>.강치기도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랑자.. 그 부러움. (0) | 2011.08.05 |
---|---|
... (0) | 2011.08.05 |
Re: 피러가 만든 메인접시... ㅎ (0) | 2011.08.05 |
그냥... 옛날 생각. (0) | 2011.08.05 |
자유인 피러(정수) (0) | 2011.08.05 |
댓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