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Who?

진승할배 2023. 9. 1. 13:49

한국의 행정구획이 20년 전 내가 한국에 살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면 특별시와 광역시를 포함한 일반 시는 구와 동으로 나뉘고 그 밖에는 도, 군, 읍, 면, 리로 나뉜다고 알고 있다.
반면에 캐나다나 미국은 주(Province 혹은 State)와 시(City) 그리고 사전에 '군'이라고 해석된 County가 다인거 같다. 그런데 캐나다나 미국은 그나마도 주소 적을 때 구획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내 주소를 예로 들면 2588 Anderson Way Edmonton AB 인데 주나 시나 카운티를 나타내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캐나다에 살지 않는 사람이 주소를 보면 에드먼턴이 시인지 카운티인지 모를게 당연하다. 나도 미국으로 화물 운송을 가면 서류에 적힌 저런 주소만 들고 가기 때문에 내가 가는 곳이 얼마나 큰 도시인지 혹은 아주 시골인지 알 수가 없다. 반면에 한국은 주소에 친절하게 도, 시, 구, 동 혹은 군, 읍, 면, 리 등 행정구획 명칭이 표시되니까 주소만 봐도 대충 지역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의 본적지 주소나 현거주지 주소를 보면 그 사람이 순수한 촌놈인지 아니면 약삭빠른 도시 깍쟁이 인지를 알 수가 있다는 얘기이다. 

1년 넘게 캐나다와 미국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도시나 타운들에게서 대충 공통점 같은게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가장 특기할만한 점은 시골이라도 병원이 있으면 타운 소리를 들을만하다. 그 타운에는 미국 3대 자동차 회사인 포드나 지엠, 크라이슬러 중 하나의 딜러가 있는 경우가 많고 또 맥도널드나 버거킹 따위의 유명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이 하나쯤은 있는 곳이 많다. 내 생각에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읍 소재지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도 그런 읍 소재지가 아무리 커도 County(군) 소재지랑 다른 점은 군 소재지에는 대부분 법원하고 칼리지 하나쯤은 보이고 미국 3사의 자동차 대리점은 물론 어쩌면 일본자동차 대리점을 볼 수도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면 소재지쯤 되는 작은 마을에는 아주 오래된 낡은 주유기 1개나 2개쯤 가진 주유소가 한 곳에 작은 편의점과 간단한 식사와 술을 마실 수 있을 거 같은 카페가 그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가게인 경우가 많다. 그나마 옛날에 생활방식이 농축산업이나 광산 같은 1차 산업에 의존도가 높았을 때는 제법 번성했을 것 같은 읍이나 면 크기의 마을들에는 사람들이 떠나고 폐허가 된 채로 방치된 집들이 작은 마을을 더욱 황량하게 만든다. 심지어 캐나다 국경 하고 가까운 노스 다코다의 밸포(Balfour)라는 작은 마을은 길가로 주유소, 카페, 자동차 수리점, 교회 등 한때는 제법 번성했을 마을이었을 텐데 지금은 마을 전체가 사람이 한 사람도 살지 않는 텅 빈 마을이 된 곳도 있다. 마을 교회 옆에는 작은 공동묘지도 보이는데 과연 그 묘지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기는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몇 손가락안에 꼽히는 강국이고 부국이다. 그래서 국민들의 자긍심도 높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과연 저런 읍이나 면 단위급의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미국에 산다는 자긍심이 있을까 싶다. 또 미국은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햄버거의 나라이기도한데 면 단위급의 시골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맥도널드 햄버거를 얼마나 먹어 볼 기회가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소설(특히나 외국 소설)을 읽으면서 그 소설에 나오는 지명에서 책을 읽게 되거나 가까이 있을때의 신기함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이번에 존 그리삼의 '포드 카운티'라는 그의 첫 단편집을 가져오게 되었는데 그 책 안에 포함된 7개의 단편이 미시시피주의 포드 카운티와 클랜튼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인데 구글지도에서 아무리 찾아도 그 두 곳의 지명을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봐서 작가가 만들어낸 유령의 타운임이 틀림없을 거 같다. 하지만 멤피스라던지 파치맨의 미시시피 주립 교도소등 배경이 되는 곳은 실명을 사용해서 마침 책을 읽는 동안에 그 근처에 있었던 관계로 더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게 되었다. 더구나 그 단편들 중에 '피시 파일'과 '카지노'는 앞에서 말한 평소 내 생각과 비슷한 내용이어서 더욱 재미있었다. 책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인구 만 명 정도가 사는 포드 카운티의 법원 주변에서 생활하는 51명의 변호사 중 하나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늘 큰 변화 없이 시시콜콜한 사건을 처리하며 지루하게 살아가던 중 몇 년 전에 맡았던 쉽게 끝나지지 않고 캐비닛 속에서 생선 비린네를 풍기며 썩어가기만 하던 파일이 뉴욕의 큰 로펌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화로 해결이 되는 걸 이용해 한탕을 계획하고 그 작은 도시를 탈출하기로 마음먹고 가정도 버리고 남미의 작은 나라 벨리즈라는 곳으로 줄행랑을 친다는 내용이다. 또 카지노는 지역의 작은 보험회사 시장자료조사원으로 평범하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부인이 늘 그렇고 그런 따분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어느 날 갑자기 부엌 식탁 위에 이혼 서류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나가게 되면서 아내를 찾아 나선 남편이 전 부인이 재혼한 카지노의 사장이 운영하는 카지노에서 큰돈을 따서 그 카지노를 망하게 하고 다시 전 부인과 재결합한다는 다소 만화 같은 내용의 소설이다. 사실 그 소설이 아니더라도 그런 작은 타운을 지나갈 때면 정말 조용한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다. 

이번에 알버타를 떠나 미국의 최남단 텍사스로 가면서 국경을 넘어 몬태나로 들어가 와이오밍과 콜로라도, 오클라호마를 거쳐 텍사스로 이동했다. 이 루트는 캘거리에서 시작된 해발 1000m대의 고도를 계속 유지하다가 콜로라도를 지나면서 해발 2000m가 넘게 올라갔다가 텍사스로 들어서면서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 2000m 넘는 지역 대부분이 여기 에드먼턴처럼 드넓은 평원이다. 해발 2000m면 우리나라(남한)에는 그만한 높이의 산조차도 없다. 여기 앨버타 록키에서도 산행 시작 지점이 대부분 1400m대의 산속이고 캐나다 전체에서 자동차로 넘을 수 있는 고개 중 가장 높다는 Highwood Pass도 2200m 정도의 산마루이다.
해발이 높아서 그런지 경작지는 안보이고 농가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주인도 없을 거 같은 검은 소 떼만이 황량한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이런 곳엔 사람이 얼마나 살고 있나 검색을 해보니 몬태나는 땅의 크기로는 미국 주중 네 번째로 큰데 인구수는 우리가 사는 광역 에드먼턴 인구수와 비슷한 백십만 명이 조금 넘는다. 또 와이오밍은 면적으로는 열 번째인데 인구수는 미국 주중 가장 적은 50만 명이 조금 넘는 인구가 거주한다고 한다. 50만 명이면 인천의 한 구에 지나지 않는 내 고향 부평의 인구수와 비슷한 정도이니 남북한 다 합친 것보다 조금 더 큰 땅에 달랑 인천시 부평구 인구가 산다고 상상하면 얼마나 적은 인구가 살고 있는지 실감이 날 것 같다. 
그런 곳을 지나가면서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저런 황량한 시골에 살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다가 나는 과연 어떻게 해서 캐나다 에드먼튼에 살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정말 나 스스로 선택해서 에드먼튼에 살게 된 건지 아니면 그냥 어떻게 하다 보니 이곳으로 흘러들어 온건 아닌지 스스로도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에드먼턴에 사는 교민 중 누구라도 자기가 한국을 떠날 때 세계지도를 탁 펴놓고 세계의 그 많은 나라들 중 또 그 많은 도시들 중 에드먼턴을 콕 집어서 '그래 여기 가서 살자.'라고 마음을 먹고 온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생각이 든다.
정말 우리는 어떻게 해서 여기로 와서 살게 되었을까. 더 작게는 어떻게 '사랑의 교회'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사람 좋은 목사님과 교인들을 만나 함께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을까.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면 '다 팔자 소관'이라거나 '조상님 탓' 운운할지 모르지만 믿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누군가의 손길이 나의 인생을 간섭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천재 아인슈타인이 '자연의 섭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있다. 그것이 나의 종교다.'라고 했다니 나 같은 사람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포드 카운티의 마지막 단편 '이상한 녀석'을 다 읽고 눈물이 그렁한채 책을 덮었다. 

또 하나님이 나를 울렸다. 그분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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