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이제... 겨울이네

진승할배 2022. 11. 14. 03:47

늦게 시작된 추위가 매섭다.
지난 금요일부터 시작된 눈폭풍(Snow Storm)으로 구피와 난 서로 의논하여 트립을 미루고 뭉그적 거리고 있는데 회사에서는 톡방을 통해 언제 출발할건지 계속 묻고 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우리를 서둘러 출발하게 하려고 재촉하는건 아니고 떠나는 시간에 맞추어 배달하는 회사에 리씨빙(Receiving) 스케줄을 다시 잡아 도착해서 하역을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이런날 출발해서 눈길에 사고라도 나면 회사로서도 좋을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런 악천후의 운행은 전적으로 기사에게 맡겨 두는 편이다.

눈이 잠시 소강 상태인 틈을 타 일요일 오전에 출발을 했다. 이번 목적지는 야구를 좋아하는 공화당원이라면 아주 우울한 주말을 보내고 있을 펜실베니아의 필라델피아이다.(필라델피아는 월드 씨리즈에서 휴스턴에 졌고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을 민주당에 내주었다.)

난생 처음 트레일러로 눈길 운전이지만 캐나다 겨울 운전 20년 내공 때문인지 2시간이 더 걸리긴 했어도 무사히 국경에 도착해 구피에게 운전대를 넘겨주었다.

밤새 운전한 구피에게 차를 넘겨 받아 트럭 스톱(주유소뿐 아니라 운전자의 샤워, 세탁, 식사 등의 편의 시설을 갖춘 일종의 트럭 휴게소)의 커피숍에 들어 서니 20대 초반의 앳된 인도 기사 아이들이 졸음이 가득 찬 얼굴로 커피나 티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한때 한국, 독일 등이 이민 순위 1, 2위를 다투던 캐나다는 이제는 인도, 필리핀, 중국 순으로 이민자가 많다고 한다. 이제 우리 나라 젊은이들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지언정 다른 나라로의 이민은 생각하지 않는듯 하다. 그만큼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된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저 젊은 인도 기사들의 대부분은 구피 처럼 영주권을 따기 위해 졸린 눈을 비벼가며 하이웨이에 나와 있지만 영주권을 따면 다시는 트럭 운전을 안하겠다는 아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누가 이쁜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을 집에 두고 길바닥 위에서 지내고 싶어하겠는가? 하이웨이 기사는 우리 같이 늙고 마누라가 없거나, 마누라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나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ㅋㅋ

위스콘신 주에 들어서 얼마간 운전을 하니 길가 작은 전광판에 네줄짜리 경고문 같은게 떴는데 빠른 속도로 지나가며 언뜻 눈에 들어온 앞에 두문장은 '일년에 위스콘신 주에서 16,000 건의 사슴 충돌 사고가 발생한다'는 내용 같았다. 운전하면서 생각하니 16,000건이면 대략 하루 50건의 교통사고가 나는데 그렇게나 많이? 생각이 들고 내가 1,600을 잘못 봤나 싶다가도 위스콘신 크기가 우리나라 크기 몇배는 될테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었다가 그래도 그렇지 혹시 미국 전체 사고 숫자였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안가 똑 같은 전광판이 나타나 자세히 보니 분명히 '16,000 Deer crash'로 시작된 문장은 1년에 위스콘신 주에서만 일어난 사고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고 든 처음 생각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슴의 개체수가 있으면 매년 저렇게 많은 사슴이 죽을까이고 다음으로는 매일 50대 가까운 자동차가 정비 공장으로 들어갈테고 보험 회사에서 지출하는 비용도 클테니 그게 사회적 손실 비용일까 아니면 그걸로 정비 공장들의 경영이 잘되니 사회적 이득 비용일까를 생각하다 그런건 홍종학이 같은 놈이 생각할 일이지 나는 사슴하고 부딪히는 사고나 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온다. ㅋㅋㅋ
그러고 보니 좁은 하이웨이 갓길에 수많은 사슴의 사체가 눈에 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는 겨울에 저런 동물의 사체들이 또 다른 사고 요인이 된다. 차라리 바퀴에 깔려 죽은 건 비참해도 좀 더 나은데 차에 부딪혀 죽은 채 도로 위에 남겨진 동물의 사체는 캐나다의 어마어마한 추위로 순식간에 꽁꽁 얼어 마치 도로 위에 바위를 얹어 놓은 거나 마찬가지여서 야간 운전 할때 미처 보지 못하고 그 동물에 부딪히면 또 다른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영하 12도에 출발해서 영상 10도 안팎에서 놀다가 다시 영하 18도로 돌아오는 중에 어느 트럭 스톱에 들러 화장실에 가는 길에 구피가 뒤에서 큰소리로 나를 부른다. 영어 시험에 합격했다고 뛸듯이 기뻐한다. 영준이 말이 맞았다. "be 동사"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구피가 영어 시험에 합격했다. Good Job Go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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