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King Creek Ridge (2022년 2월 13일)

진승할배 2022. 2. 18. 07:19

먼산 부엉이 밤새워 울어대고?
앞 내 물소리 가슴을 적실 때? 

나는 혼자서 산행을 나섰네... ㅋㅋ (원래 가사는 '나는 사랑이 뭔지 알았네' 다.)
오늘 새벽 차에 타자마자 흘러나온 첫 노래다. 찾아보니 김연숙의 초연이라는 노래다. 뒷부분은 통속적으로 변하지만 앞부분이 듣기 좋아 빌려왔다. 

어제 오후에 뜬금없는 보이스톡을 받았다. 그전에 여기 산악회에서 같이 몇 번 산행을 했던 동갑인 Y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잔소리부터 한 바가지 들어야 했다. 왜 위험하게 혼자서 산에 가느냐부터 산행이 꼭 산에 올라가는 맛만 있는 거냐 8시간 넘게 오고 가며 이바구하는 재미도 있는 거다. 요즘 같이 기름값이 비쌀 때 기름 값을 셰어 하면 경제적인 부담도 적지 않느냐. 모두 맞는 소리라 아무 대꾸도 못하고 듣고만 있었다. 결론은 에드먼턴 산악회가 다시 시작했으니 같이 다니자는 말이었다. 젠장~ 그럼 좋은 소리나 하고 같이 다니자고 하던지. ㅋㅋ
뭐 이러거나 저러거나 내게 결론은 버킹검이다. No! 

지난 가을쯤이었나? 한국에서 대선 소리가 나올 때쯤 산악회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좌우를 떠나 과거는 묻어두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한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때문일까? 의문이 생겼다. 산악회를 시작하려면 새 봄부터 할 것이지 하필 시즌 다 끝난 늦가을에 웬 봉창?
오늘 산행을 하고 돌아오니 현직 산악회 회장이라는 사람이 두 번이나 전화를 했고 음성 녹음을 남겼다.
참 세상... 혼자 조용히 산행하는 것도 힘들다. 

지난 1월도 참혹했다. 이제는 날씨가 요술을 부린다. 어느 날은 일교차가 30도 가까이 되고 어느 날은 영하 9도에 비가 내린다. 내린 비가 자동차 앞유리에 부딪히자마자 얼어 오돌돌 한 돌기를 만들고 와이퍼로 닦여지지도 않는다. 어느 날 전화기에 뜬 일기예보에 낮 최고기온이 3도였고 같은 날 최저 기온은 영하 26도였다. 일기예보를 보도하는 아나운서가 하루 일교차가 10도만 넘으면 일교차가 크니 옷차림에 신경 쓰고 감기에 조심하라는 멘트를 하는데 영상에서 영하로 급전직하하는 날씨에는 하루에도 외투를 두 번은 갈아입어야 한다.
눈 내리는 날이 거지가 빨래하는 날이라더니 기온이 좀 올라가 산에 갈만하면 눈이 내려서 산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7시 55분 에어드리를 지날 때쯤 왼쪽 하늘이 빨갛게 물들더니 해가 떠올랐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다. 저 멀리 록키 쪽에는 구름이 조금 끼었어도 눈 덮인 하얀 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데 막상 록키에 도착하니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원래는 Little Arethusa를 가려고 했다. 얼마 전 산을 검색하면서 유튜브에 캘거리 한인 산악회 회원들이 눈이 쌓인 리틀 아레수사를 등반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그때 산행 날짜는 확인을 안 하고 업데이트된 기간만 보고 최근 산행으로 생각했다. 사실 그 산이 있는 하이우드 패스 구간이 겨울철 폐쇄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그 유튜브를 보고 또 나도 눈에 덮인 미스트 마운튼을 갔던 적이 있어서였는지 도로가 차단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다 보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다. 이번에도 구름이 잔뜩 낀 하늘 걱정만 하면서 산행지로 향했는데 카나나스키스 레이크 갈림길에서 하이우드 패스 방향의 길이 차단되어 있었다. 그 삼거리 왼쪽의 킹 크릭 트레일 입구에는 차가 많이 주차되어 있었다. 나 같이 하이우드 패스 쪽으로 가려다가 길이 차단되어 그냥 가까운 킹 크릭으로 향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킹 크릭을 겨냥해 온 건지는 모르겠다. 나도 다른 계획 없이 카나나스키스 깊이 들어간다는 게 시간 낭비 일거 같아 그냥 킹 크릭 트레일 입구에 주차했다. 
킹 크릭 릿지는 몇 년 전에 시즌이 끝날 때쯤 아줌마 부대를 몰고 온 적이 있었다. 그날 때 이른 눈이 내려서 하산 길에 무지 고생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오늘도 눈길에 킹 크릭 릿지를 가는 게 좋을지 킹 크릭을 따라 걷는 쉬운 트레일을 걸을지 잠시 고민했다. 전에 누군가 킹 크릭 릿지를 산행하고 반대편 킹 크릭으로 내려서는 루프 산행을 했다가 킹 크릭 물이 불어나 크릭을 건너는데 애 먹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서 루프 산행을 해 보기로 했다.
릿지로 올라서는 길이 가파르다. 그래도 요즘은 워킹용 아이젠도 좋아서 자석을 붙인 듯 척척 달라붙는 느낌이라 힘들거나 어렵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며칠 전 산우회 단체 카톡방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었다. 올해 칠십 중반쯤이 되셨을 상일이 형님이 토왕폭 상단 빙벽을 도전하시는 사진이었다. 듣기로 젊으셨을 때 토왕폭에서 100여 미터를 추락하셔서 생사를 넘는 고비를 겪으셨다고 알고 있는데 그러고도 그 연세에 또 토왕폭에서 빙벽을 하신다니 정말 존경스럽다. 그런데 나는 겨우 조금 경사가 심한 눈길에서 마치 꽤나 힘든 산행을 하는 양, 이 글을 쓴다는 게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시간 30분 만에 릿지에 올라 서고 전에 아줌마들이랑 올랐던 릿지의 한 봉우리에 섰다. 그날은 눈보라도 심했고 시계도 안 좋아서 릿지에 올라선 걸로 만족하고 하산을 했었는데 오늘은 먹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이지만 눈도 안 오고 더욱이 바람도 없는 날씨라 릿지 끝까지 가서 킹 크릭으로 내려설 수 있으리란 희망이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듯한 오른쪽의 오팔 산맥(Opal Range)의 바위 산들을 보며 걷는 능선길은 낭만적이었다.
끝으로 갈수록 릿지가 좁아지고 일부 바윗길로 이어졌지만 그만 그만한 높이의 봉우리 몇 개를 넘어 마지막 봉우리까지 왔는데 기대하지도 않은 분홍색 탄약통이 있었다. 마지막 봉우리가 제일 높아서 있는 건지 그냥 릿지의 끝봉우리라 있는 건지 헷갈린다.
그나저나 마지막 봉우리까지 오도록 오른쪽 크릭 쪽으로는 낭떠러지라 내려설 길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봉우리에서는 급격히 경사가 낮아지면서 날카로운 바위 릿지가 이어지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크릭으로 내려설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이번에도 크릭으로 도는 산행은 포기하기로 했다. 내가 착각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집에 와서 Jillian Daffern의 가이드북을 찾아보니 분명히 루트는 있었다. 또 언제 할지 모를 숙제가 하나 더 늘었다.

 

하산 길에는 오랜만에 엉덩이 썰매도 탔다. 경사가 급해 살짝 겁도 났고 정지가 안돼 눈 속에 처박히기도 했지만 오히려 기분은 상쾌했다. 한 길도 넘는 눈 속을 헤쳐 나오면서 이번 겨울 설동을 파서 야영을 해보고 싶다던 희철이 형 생각이 났다. 뜻하지 않게 얻어걸린 산행치고는 대박이었다. 오랜만에 산에 올랐지만 별로 힘든 줄도 몰랐다. Gym에 등록하고 싸우나나 하면서 거저먹기만 한건 아닌 모양이다. 장하다! ㅍㅎㅎㅎ

 

 

 

 

작년 11월 14일 갔던 Little Lawson

 

Mount Wintour

 

Upper Kananaskis Lake 와 Lower Kananaskis Lake
Mt. Brock(왼쪽)과 Mt. Blane

 

 

 

마지막 봉우리(정상?)

 

탄약통 안이 궁금하실 분을 위해... ㅋ

 

 

 

릿지 반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