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러 나라가 이상기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여기 에드먼턴도 예외는 아니어서 50년 만에 가장 추운 12월을 보냈다고 한다. 연일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추위가 계속되고 눈도 아주 많이 왔는데 길가에 쌓여있는 눈더미를 보면 에드먼턴으로 이사 온 이후로 가장 많이 온 게 틀림없다. 산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새해 첫날 날이 좀 풀린다고 해서 그믐날 산행 준비를 하다가 정말 아무 이유 없이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이틀을 기어다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운동 부족이라 생각이 들어 새해 첫 월요일(3일) 스포츠센터에 가서 년등록을 해버렸다.
반 달이 지난 지금은 운동보다도 싸우나하고 한증막하는 맛으로 부지런히 다니고 있다.
1월 들어 날이 조금 풀리면서 비가 오기 시작한다. 눈이 쌓였던 도로는 살인적으로 미끄럽다. 자동차 사고도 당했고 오른손에 태블릿을 쥐고 넘어져서 오른손 등이 다 까지기도 했다. 기온이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롤러코스터를 탄다.
너무 움츠러드는거 같아 겨우 정신을 차려 산으로 갔다. 지난번 어니스트 로스(Ernest Ross) 갔을 때 봐 두었던 Tuff Puff.
동네 뒷산 처럼 아주 쉬운 산인데 이런 산이 산행 출발 지점 찾기가 더 어렵다. 구글 지도를 켜고 가는데 17분쯤 남았을 때 '경로를 찾을 수 없습니다.'란 메시지와 함께 구글 앱이 꺼지고 말았다.
갓길에 주차를 하는 모양인데 눈이 덮혀서 거기가 거기 같다. 도착 예정 시간까지 운전해서 속도를 줄이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사진에서 본 비슷한 곳을 찾았다. 킹렛(Kinglet) 레이크 트레일 입구보다 조금 더 남쪽이라고 알았는데 길가에 주차할 만한 곳을 찾을 수 없어 그냥 킹렛 레이크 트레일 입구에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높은 곳(어니스트 로스)에서 내려다 볼 때는 나지막이 엎드려서 산세가 부드러운 줄 알았는데 제법 가파르다.
날이 좋을거라 예상했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고 바람에 따라 날씨가 급변한다.
스노우 슈를 신고 산행을 시작했는데 경사가 급해지면서 눈이 옅어져서 스노우 슈가 짐이 되었다. 그렇다고 벗기도 애매해서 계속 스노우 슈를 신은채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걸었다.
폭이 넓은 눈에 덮힌 산등성을 오르는 거다 보니 따로 길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딱 한 사람인듯한 발자국이 있었는데 눈이 없는 곳에서 사라졌다. 스노우 슈 때문에 눈 있는 곳으로 걸으려다가 방향을 잘못 잡고 길을 놓친 게 틀림없었지만 정상에 서면 길은 한 곳에서 만난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올라갔다. 터프 퍼프는 릿지 산행이지만 나는 침엽수림과 백양나무 숲을 오르고 있다. 처음부터 길을 잘 못 들었던 건지 그 흔한 표식기 조차 하나도 볼 수가 없었다. 걱정은 되었지만 내려올 걱정은 내려올 사람이 하는 거라 생각하고 우선 무작정 오르기로 했다.
두 시간을 걸었을 때 마침내 능선에 올라섰는데 처음엔 정상인 줄 알고 동영상을 찍었다. 그런데 능선이 약간 내리막으로 이어지면서 산행 시작 때 보았던 발자국이 나 있었다. 내 신조가 '남이 가면 나도 간다'니까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아직 시간도 널널하다. 숲 속으로 향한 발자국은 스노우 슈도 없이 점점 더 깊은 눈 속으로 빠져간다. 꾸덕꾸덕 얼은 눈 표면에 빠졌던 스노우 슈를 들어 올리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질 때쯤 다시 능선으로 나왔는데 눈보라가 무서울 정도로 몰아친다. 여름 산행 시간이 4시간 30분이라니까 정상이 멀지 않았겠지만 눈도 못 뜰 만큼 몰아치는 눈보라가 무서워 돌아서기로 결정했다.
지난 연말 블랙 프라이데이 때 배낭을 하나 샀는데 오늘 처음 써보는 날이었다.
친구 녀석 말로는 요즘 한국에서는 북유럽 제품에 밀려서 아줌마들이 동네 뒷산 올라갈 때도 안 멘다는 브랜드의 배낭을 샀다. 그런데 배낭 어깨끈의 간격이 멀어서 자꾸 어깨 밖으로 벗겨지려고 해서 편안하질 않았다. 집에 와서 전에 쓰던 노스페이스 배낭과 비교해봐도 어깨끈의 폭이 너무 넓었다. 비싼 배낭을 샀는데 더 불편한 배낭을 산꼴이 돼서 속이 쓰라렸다. 한번 쓴 배낭을 바꿔줄 리가 없을 것 같아 일주일을 끙끙 앓다 반값으로라도 반환이나 교환이 될라나 싶어 MEC(Mountain Equipment Co-op) 매장을 찾아가니 두말 않고 선뜻 바꿔준다고 한다. 정말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하고 고마웠다.
이번엔 더 꼼꼼히 고르고 골라 전에 샀던것 보다 4리터 작지만 편안해 보이는 배낭으로 바꿔왔다.
이제 이 새 배낭으로 가야할 산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부디 나의 수호신이 되어 산행을 그만두는 그날까지 같이 안전하게 산행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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