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다시 남으로...

진승할배 2011. 8. 5. 14:10

피곤했던지 늦잠을 자버렸다.
벌떡 일어나 커튼을 열어 젖히니 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
날이 어둡다. 그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부랴부랴 챙겨서 담배한대 피우고 차에 오르니
덜 마른 머리가 뻣뻣하다.
옷을 얼마나 껴입었던지 그 와중에도 이마에 땀이 맺혔다.

 

라디오를 켜니 들어있던 CD에서 이동원의 향수가 흘러나온다.
향수의 부드럽고 느린 곡조가 내리는 눈과 어울려
좋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렇게 잠시 탐스럽게 내리는 눈을 보며 음악을 듣고 있다가
오라는데도 없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왜 이렇게 서두르나
생각이 들어 갑자기 우울해진다.

 

돌아가는 날이다.

그래 서둘지 말자. 까짓꺼 다 못보면 어떨것인가.
결국 Pisew폭포는 보고 Norway House는 가지를 못했다.

 

Pisew폭포는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관광지화 한 곳이다.
13m 높이의 폭포가 생각보다는 장관이다.
영하 30도가 넘는 이 추위에서도 거침없이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 있자니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거침없다는 것... 쉬운 일은 아니다.

 

 

매니토바 최고(最古)의 유적지 Norway House.
1700년대 초 유럽인들이 이곳 인디언들과 모피를 거래하기 위해
전초 기지를 만든 곳이다.
지금 아메리카 최대 백화점 중 하나인 Bay백화점의 전신인
Bay Co.가 최초로 아메리카로 들어온 톨로가 된 곳이다.
그곳을 가기위해서는 남쪽으로 가는 길에서 두시간 넘게
왕복을 해야하는데 포기하기로 한다.

                                                            

올라가는 길에 점심을 먹었던 한국 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늦은(오후 3시) 점심을 먹는다.
새해 첫날 찬 샌드위치를 먹게 했던게 미안했던지
주인 아쩌씨가 잘 대해주신다.
바쁜 와중에도 정비소도 보여주시고 뒤에 창고도 보여주고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 일곱분의 한국분들이 같이 살고 계신다고 한다.
두 부부와 세 아주머니.
가족 같이 참 재미있겠다고 인사를 건네니 미소로만 답을 하신다.
왠지 얼굴이 밝지만은 않다는 느낌이다.
나름대로 고충도 있으리라고 지레 짐작을 해본다.
떠나려는데 안주인이 무언가를 들고 나온다.
이고장에서 유명한 피크럴이란 생선이다.
값으로 따지면 이곳 쇠고기값의 두배가 넘는 고급 생선이다.
태도는 아닌 듯해도 내가 지나갈거라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신듯 싶다.
..........................!!!

 

여기까지 온김에 한군데 더 들러 한국분 한분을 더 만나 볼려고 차의 속도를 높인다.
우리친구 누군가가 사는 남미에서 12년을 사시다가
형제분이 있는 이곳으로 10년전 쯤 재 이민을 오신분이다.
3년전에 시내 가게를 청산하시고 위니펙에서 두시간 떨어진
이곳 조그만 타운에 제법 규모가 큰 그러서리 스토어를 인수하셔서 옮기셨다.

가게가 닫혀있어서 전화를 드리니 버선발로 뛰어나오신다.
마침 부인이 병원 예약때문에 시내 딸네 가셨다고
집근처의 조그만 식당으로 데리고 가신다.
막무가네 주문으로 점심먹은지 두시간만에 또 저녁을 먹는다.
그러고도 집에서 대접하지 못함을 자꾸 미안해 하신다.
전형적인 한국분들이시다.
 

 

오랫만에 만나 이야기 꽃을 피우다보니
두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고 말았다.
술 한잔하고 자고 가라고 한사코 잡으신다.
가까운 시일내 다시 와서 술한잔하고 자고가겠다고 부도수표를 날리고 돌아선다.

 

이제 정말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으로...
그래도 언젠가는 노란손수건이 만발한 집으로 돌아갈거라는 꿈을꾸며 다시 남으로 향한다.

끝.

 

2010.01.06. 23:14

정수.

 



Tie A Yellow Ribon Around The Oak Tree
- Don Gib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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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10.01.06. 23:51
부러워서 돌아가시겄쏘~ .. 어느 작가는 집팔아 세계일주 나섰다던데.. 그라진 못하드라도 문걸어잠그고 "한달 휴가" 붙여놓고 밑에서부터 쫘~~~~ 악~ 이긍!!! 사는게뭔지.. 여봐요 피러씨! 다못본 그곳 계절 좋은때 마저 돕시다 함께!!!! (나도 부도수표ㅎㅎ)
 
 
보라 10.01.07. 00:56
경쾌한 음악과 함께...부러움 가득한 좋은글 잘 봅니다..
저어기 주황색 상의입은 멋쟁이가 우리 피러님??
행복한 꿈!1 계속 꾸자구여....^.^*
 
 
물망초 10.01.07. 06:48
오늘도 덕분에 가만히 앉아 염치없이 피러친구가 올린 글을 보고 있다우? 가끔가다 여행은 삶의 질과 새로움을 선사해주지요....... 무사히 여행 마치고 돌아온 친구에게~~ 그리고 그때 그때마다 느낀 감정을 옮겨놓았다가~~ 이렇게 친구들을 위해 기쁨을 선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진데..... 우쨔됐던지간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ㅎ
 
 
백곰 10.01.07. 07:34
연이어지는 여행기를 끝트머리와 앞머리를 연결해서
아침에 들여다보는 재미가 아주 기막히다우...글쓰는이는 여행하며 때로는 외롭고
그글 기다리는 조선땅에 팬들은 즐겁고..뭐인가 조금은 어긋난듯 허네만...친구님 말대로 노란리본 만발할날이 분명 올게요..
 
 
하늬바람 10.01.07. 09:25
언제나 자연은 인간을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만들지요!~ 잘낫다 뽐내구 다녀두 자연의 웅장함앞에서는....
그래두 베낭하나메구 떠날수 잇는 피러님이 한없이 부러움은?!~~ㅎ
오늘 위니팩 집앞 나무에 아마두 노란리본이 만발할것이오
마음의 리본을 주렁주렁 매달고 돌아올 피러님을 기달릴터이니 말이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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