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Crypt Lake Trail (2021년 7월 30일)

진승할배 2021. 8. 6. 14:58

밤새(?) 고민하다 눈을 뜨면 바로 워터튼 파크로 가기로 했다. 20분 만에 후다닥 텐트를 걷고 7시 정각에 공원에 도착했다. 어제 보아 두었던 제일 구석진 비치 옆의 화장실로 갔다. 예상대로 수세식 화장실에 더운물이 나오는 세면대가 있는 럭셔리한 화장실이었다. 전세를 낸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웃통을 벗어던지고 샤워에 버금가는 세수를 했다. 

7시 반쯤 선착장에 도착했는데 주차장에 들어 오는 차는 있었지만 아직 줄은 없었다. 차를 주차하고 아침을 해결할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써브웨이가 있었지만 문이 닫혔고 스타박스에서 관광지답게 비싼 chicken breast 샌드위치 하나를 20불 가까이 주고 샀다. 선착장에 돌아오니 10분전인데 벌써 줄을 길게 섰다. 줄 속에 서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산행을 하면서 두번째로 배를 타는 거다. 첫 번째는 오봉산인가 칠봉산 갈 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소양호에서 배를 탄 적이 있었다.
40명쯤 타는 작은 배가 8시15분에 먼저 떠나고 그 두배쯤 되는 배를 타고 정시에 출발했다. 그 아침에 호수에서 아침 목간을 하는 곰을 만났다. 진짜 곰이 많은 곳인 모양이다. 

15분쯤 배를 타고 호수 대안에서 내렸는데 자연히 좁은 트레일 위에 사람들 속에 섞여 있게 되었다. 산행 출발지점 사진 찍을 틈도 준비 운동을 할 틈도 없이 그냥 사람들에 떠밀려 산행이 시작되었다.
벌써 몇년전에 여기 산악회 사람들과 산행할 때 단체로 해보고 정말 오랜만에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산행을 하는 거다. 
근데 산행이 시작되자 마자 보행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혼자 산행하면서 굉장히 천천히 걸었던 모양이다. 선착장에 내리면 제법 경사가 급한 오르막을 한동안 오르게 되는데 언젠가 어디선가 이런 길을 올랐던 기억이 있는 듯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주 오래전 형들을 따라 배를 타고 만리포였는지 덕적도였던지 배를 내려서 작은 산 하나를 넘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는 배낭도 흔치 않았는지 쌀부터 부식들을 박스에 넣어 짊어지고 나르던 시절이었다. 집에서 출발하면 그런 박스 하나씩 짊어지고 부평역으로 걸어가서 기차를 타고 하인천에서 내려서 다시 걸어서 부두로 가 배를 탔다. 그 당시는 타이야 쥬브(그 시절 그대로)를 집에서부터 바람 넣은 채로 들고서 '나 해수욕 간다아~' 하고 광고 내면서 놀러 다닐 때다. 근데 어린 나에게는 무거운 박스 대신 타이어 쥬브가 맡겨졌는데 배를 내려 그 언덕을 넘을 때는 벌써 중천에 뜬 햇볕으로 까만 쥬브가 달아 올라 만지기도 어려울 만큼 뜨거워서 그 타이야 쥬브를 들고 가는 것도 무지 힘이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상식 밖의 속도였지만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뒤쳐지지 않으려고 용을 쓰고 걸었다.
40분쯤 걸었을 때 앞 배의 구룹 후미를 따라잡았고 그때쯤 우리 선두 그룹에서도 뒤로 처지는 낙오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약 1180m의 호수면에서 1420m대의 언덕을 올라 서고 나면 대략 그 높이에서 오르막 내리막을 걸으며 약 1600m 대까지 오르게 된다. 그 이후에 제법 급한 경사를 스윗치 백으로 오르는데 그때는 zig에서 보면 zag의 사람 모자 뚜껑이 보일 만큼 경사가 급해진다. 그 길을 동굴 나오기 직전까지 올라서면 시원한 계류가 갈증과 더위를 식혀준다. 

오늘 트레일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될 동굴 지점이다. 저 밑에서 웅장한 Crypt Fall이 보이기 시작할때 쯤부터 마음속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누가 말은 안 해줘도 물줄기가 떨어지는 지점이 호수 일건 뻔했는데 폭포가 있는 바위 벽이 너무 높고 가파라서 바로는 못 갈 거 같고 아직도 왼쪽의 높은 산 하나를 더 돌아야 동굴이 있나 보다 했다.
산속의 호수들이 대부분 그렇다. 산과 산 사이의 계곡을 가로 막고 물을 가두는 댐 역할을 하는 바위 둑 위로 폭포가 떨어지고 그 바위를 바로 올라가는 쇠줄이 설치돼 있거나 크게 돌아 올라가는 길이 있게 마련이다. 리본 레이크가 그렇고 보우 레이크가 그렇다.

그런데 써프라이즈. 이 트레일의 백미가 거기에 있었다. 폭포 옆의 거대한 벽을 왼쪽으로 다가갔을 때 그 절벽 중간에 동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3m쯤의 철제 사다리를 오르면 동굴이 시작되었다. 전체 길이는 60피트(약 20m)라고 한다. 낮은 곳의 높이는 겨우 1m 남짓. 성인은 몸을 한껏 구부려야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정도다.

그런데 여기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동굴로 들어가기 직전에 휴대폰 동영상을 켜고 왼손에는 폴을 몰아 잡고 동굴로 진입을 했는데 얼마쯤 갔을까 배낭이 동굴 옆 벽을 드르륵하고 긁으면서 갑자기 뭔가 탁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싶은데 내 발 앞에 주홍색 플라스틱 조각이 떨어졌다. 그것을 주워 들면서 '이게 뭐더라. 어디서 많이 봤는데...' 하는 순간 갑자기 눈이 매워지면서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배낭 오른쪽 주머니에 꽂아둔 베어 스프레이가 동굴 벽에 긁히면서 안전핀이 뽑히고 페퍼포그를 발사하기 시작한 거였다. 그때부터는 정신없이 뛰다시피 기어서 동굴을 빠져나오자마자 스프레이 통을 절벽 아래로 수류탄 투척하듯이 투척해 버렸다. 그러고 눈물 콧물인 채로 앉아서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는데 내 뒤를 따라오던 대여섯 명의 젊은 아가씨 일행이 나랑 똑 같이 눈물 콧물에 기침을 해대면서 나오더니 어떤 젊은 여자애는 나오자마자 구토까지 했다.
난 즉시 배낭에 꽂힌 내 곰 스프레이가 터졌음을 설명하고 사과를 했는데 이 친구들이 자기 배낭을 보여주면서 자기네도 곰 스프레이를 가지고 있다면서 운나쁘게 네 스프레이가 터졌지만 네가 고의로 그런 게 아닌 걸 안다면서 오히려 좋은 이야깃거리가 생겼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동안 내 스프레이 유효기간이 지나서 작동을 하려나 의심을 품은 사람이 많았지만 내 말이 맞는게 증명되었다. 그나저나 혹시 저 계곡 밑에서 곰들이 목간을 하다가 갑자기 날이온 페퍼포그를 맞고 '어떤 개코부랑 말코 같은 인간이...'하고 욕을 해댄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ㅋㅋ 

이제 왼쪽에 설치해 놓은 쇠줄을 잡고 바위를 오르면 곧 Crypt Lake 1946m 표지판이 보이고 바로 호수에 내려 서게된다.
호수에 서니 어떤 커플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 전화기를 내민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그 친구가 내게 'R u gonna cross the border?' 그러는 게 아닌가? 난 뭔 말인가 싶어 어리둥절해 있는데 호수 반대편이 미국이니까 원하면 미국을 갔다 오라는 소리였다. 정말? 그렇담 가봐야지. 그러고 바로 1시간 거리의 호수 일주를 하게 되었는데 국경은 개뿔 어떤 표식 조차 없다. 아뭏든 그렇게 잠깐의 불법 월경을 하고 신발을 벗고 호수에 발을 담갔다. 많은 젊은 친구들은 남녀 할 것 없이 호수 여기저기 흩어져서 그냥 빤쯔 바람에 물속에 들어가는 친구가 많았다. 이제 빤쯔는 더 이상 속옷이 아니다. ㅋ 

호수까지는 페퍼포그 소동속에도 2시간 40분이 걸렸고 전체 시간은 1시간 호수 일주 시간을 포함해 6시간 5분이 걸렸다. 전체 길이 17.2km에 700m의 높이 산행이다. 
3시 30분 배를 탈 생각으로 선착장에 도착하니 3시 정각이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길래 줄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내 또래의 영감님이 'roughly' 줄이 있긴 있다고 하면서' 네가 36번째'라고 농담을 한다. 내 뒤로 대여섯 명쯤이 더 내려온 거 같고 모두가 첫 번째 작은 배에 타고 돌아왔다. 

마지막 밤을 보낼 야영지로 돌아가는 길에 갈등이 많았다. 너무 덥고 지쳐서 내일 테이블 마운틴 산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차에서 내리는게 싫었다. 그렇다고 지친 상태로 6시간을 넘게 운전해서 집에 가는 것도 안전한 거 같진 않았다. 올라가는 길이니까 우선 캠프장까지 가서 좀 쉬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캠프장에 와서는 여기까지 와서 테이블 마운틴 산행을 포기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지감치 저녁을 먹고 어제보다 더 일찍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Twin Falls

 

Burnt Rock Falls

 

저 멀리 Crypt Fall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본 캐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