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Olympic Summit (2020년 12월 20일)

진승할배 2020. 12. 23. 10:56

아침 6시 10분.
Red Deer의 Gasoline Alley로 들어서는 길이다. 초입에 있는 맥도널드 드라이브 스루 입구가 노란색 우유 박스로 막혀져 있는 게 보인다.
이제는 아침에 무얼 먹을까 고민해야 되는 게 아니고 어디서 먹을 수 있을까를 걱정해야 한다.
다행히 2주전에는 닫혀 있던 팀호튼이 열려 있어서 칠리와 커피로 이른 아침을 해결했다.

작은 고개를 넘어 록키로 진입하니 헤드라이트 불빛 속의 도로는 젖어 있고 노견은 엷은 눈으로 덮여있다.
저 앞에 경찰차의 경광등이 번쩍이고 길이 막히기 시작한다. 검은색 SUV 한대가 커브길에서 미끄러져 전복된 사고가 있었다.
일기예보에 오늘 날씨는 맑음에 영상 6도였는데 완전히 약속이 틀리다.
아직도 어둠에서 채 깨어나지 못한 록키가 회색빛 구름에 덮여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그래도 여전히 1번 하이웨이에는 록키로 들어가는 차 미등의 빨간 줄이 도로 끝까지 이어져 있다. 나중에 보니 많은 차들이 나와 같은 40번 하이웨이 방향으로 향하는데 알고 보니 나키스카 스키장으로 향하는 차들이 대부분이었다.
아! 이제 스키 시즌이 되었구나. 나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나키스카 스키장이 몇 년 전에 폐쇄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일요일인데도 리본 크릭 주차장엔 일행인 듯한 차 3대만이 한켠에 주차되어 있었다.
산행 준비를 하는 동안 독일제 최고급 차가 내 옆에 와서 주차했는데 어울리지 않게 아주 어려 보이는 동양인 아이가 혼자 차에서 내렸다.
잠시 후 하얀색 세단이 그 차 옆에 섰는데 내린 사람이 그 젊은 친구에게 경상도 말씨로 아는 척을 한다.
뭐라 했더라? 생각보다 억수로 가깝다 했나 보다.

오늘은 Centennial Ridge의 책받침 봉인 Olympic Summit이 목표다.
다른 팀들은 리본 크릭 쪽으로 가버리고 나 혼자 쎈테니얼 릿지로 향했다.
9시 정각 출발했는데 아직도 어둑 컴컴하다. (동지가 가까워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다음날인 월요일이 동지였고 해 뜨는 시간이 8시 49분이었다.)

이 지역은 1952년까지 운영되었다는 탄광(Coal Mine)에서 이용하던 산판 도로를 크로스컨트리 스키 트레일로 활용하는 곳이다.
올해는 아직 눈이 많지 않은지 설상차로 다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쎈테니얼 릿지로 가는 길은 산허리를 좌우로 가로지른 산판 도로를 서너 차례 종으로 횡단해 올라간다.
가이드 북에는 이 코스가 2km 이내에 610m를 올린다고 했는데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만큼 급경사는 아닌 것 같다. 전체적으로 흙길이 많고 짧은 지그재그로 올라가서 적설기에도 도전해 볼만 할 거라 생각해서 온 거였다.

시작할 때 살짝 흩뿌리던 눈이 나무가 있는 지역을 벗어나 능선으로 나설 때쯤부터는 강한 바람과 함께 눈보라로 변했다. 작은 바위 밑에서 바람을 피해 패딩을 하나 더 입고 아이젠을 신었다. 겨울 산행이 결국 이런 강한 눈보라 같은 추위와의 싸움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3시간이 조금 안되게 올라 올림픽 썸밋의 바로 밑 능선에 섰을 때는 눈도 그치고 날이 화창하게 바뀌었다. 이제야 약속을 지킬 모양이다.

사진 몇 장을 찍고 가던 길을 가려고 돌아 섰다가 깜짝 놀랐다.
한 무리의 큰 뿔 양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 중이다. 처음에 나에게 하얀색 엉덩이를 보이고 있던 놈들이 내가 다가가려고 하자 뿔 달린 놈이 뒤돌아 서더니 떡 버티고 서서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한 10분을 대치하다가 강한 바람이 불어오고 발이 시려와서 그냥 내가 포기하기로 했다. 서로 고집부리다 피보는 것도 그렇고 그까짓 5-60 미터 더 올라가 눈 앞의 봉우리를 올라도 그만 못 올라가도 그만이었다.


바람이 부는 반대편 사면에 앉아서 간식을 먹었다.
바로 발밑이 나키스카 스키장 슬로프다. Nakiska는 Cree 원주민 말로 'to meet'라는 뜻이라고 한다.
1988년 캘거리 올림픽 때 스키 활강 경기가 열렸던 곳이라고 한다. 그때 1등을 한 선수가 저 밑에 스키장 베이스까지 2분이 안 되는 시간에 활강을 했다고 한다. 나도 스키를 빌릴 수 있다면 2분은 어려워도 3분 아니면 4분이면 쉽게 하산을 완료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은 하루 종일 아니 지난 주말부터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삶과 죽음"
무엇이 사람을 살게 하고 무엇이 사람을 죽게 하는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걸까.
지난 주말에 아주 안타깝고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너무나 슬프고 속상해서 참담한 심경이다.
진짜 옛날 유행가 가사처럼 죽음 앞에는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소용없는 것인가?
하늘나라로 간 젊은 영혼을 위해 기도드린다.

산길로 들어서면 울적한 마음을 좀 달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마는 아닌 모양이다.
이런 날은 친구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친구를 만나도 갈 곳이 없다. 팬데믹이 사람들을 고립시킨다.

김범수의 노랫말이 유난히 귀에 들어오는 오늘이다.

?지친 맘 달래 주던 너의 목소리 그리워
술 한잔에 기댈 수 있는 친구가 그립구나
추억 속에 묻어야 했던 사랑이 보고 싶다~?

 

 

사진 한가운데 두산 사이의 V자 계곡이 River Creek이고 나는 우측 키오스크의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산판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작은 분지가 나오고 여기서 부터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된다.
Mount Kidd가 아직은 구름에 가려져 있다.
구름 사이로 Ribbon Mountain이 잠간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올라가는 길이 생각보다 급하게 보인다. 
Mount Kidd와 오른쪽에 South.

 

Olympic Summit. 이 때까지만 해도 큰뿔 양이 있는 줄 몰랐다.
여기까지 대략 780m를 올라왔다.
Olympic Summit과 Mt. Collembola

 

 

오늘 따라 The Wedge가 유난히 날카로워 보인다. 앞 능선 오른쪽 끝은 산불 감시 초소가 있던 Mt. Kidd Look-out. 사진 맨 왼쪽은 Fisher Peak.
G8 Summit(Wasootch Peak)
정면 눈 덮힌 평평한 봉우리가 Old Baldy. 왼쪽의 높은 봉우리는 Mt. McDougall.
Coal Mine
Merry X-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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