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의 배터리 잔량 표시 마지막 바 한 개가 깜박거린다. 충전기째 들고 나와 차의 usb 포트에 꽂았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고속도로 입구에서 지난달에 큰 맘먹고 구입한(진부한 표현이지만 이렇게 써야 진짜 좋은 장갑을 샀다고 느낀다. ㅋ) 우모 벙어리장갑을 놓고 온 게 생각이 나서 유턴을 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일요일 날 산행을 나서는 건 정말 오랫만이다. 어제저녁 일을 하다 너무 한가해서 갑자기 산에나 가기로 맘을 먹었다. 그렇다 보니 오늘 아침 준비 없이 산행에 나서면서 좌충우돌이다.
이민 사회에서 교회에 나간다는 것은 단순한 종교활동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몇몇 큰 교회를 빼고는 영세한 교회가 많다보니 신앙심의 깊이에 상관없이 교회의 중요 직책을 맡은 분들이 많다.
그분들이 교회에 빠지면 예배에 지장이 있을 정도다.
또 여기서 유일하게 한국 사람을 한꺼번에 많이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다 보니 교회는 사교의 장이고 정보 교환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기서 일요일 산에 간다는 것은 찍히기 딱 좋은 행동이다.
물론 나는 그런 종교 활동과 상관없이 직업 때문에 일요일 산행에 나서지 못했는데 코비드 19로 모든 것이 엉망인 지금 차라리 일요일 산행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무래도 일요일 사람들이 더 많을테니 혼자 산에 가도 좀 더 안전할 거라는 생각도 든다.
고속도로를 달려 에드먼튼 공항을 지나고 나니 도심 불빛에 감춰졌던 별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날씨가 좋았다. 에드먼튼의 이번 겨울은 정말 따뜻하다. 지난 2주 동안 12월의 낮 기온이 영상인 날이 더 많았다.
생각한 대로 Galatea Lake Trail 주차장은 만차였다.
날이 따뜻해서 등산객이 많은 건지 원래 일요일은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지는 모르겠다.
주차장에서 일단의 동양인을 만나서 캘거리 한인 산악회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중국인들이었다.
참 오늘 일요일이지... 교회를 안다니는 중국인들은 일요일 산행을 하는 모양이다.
전에 마운틴 키드를 갈때 무거운 마음으로 건넜던 현수교를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건넜다.
오늘의 목표는 Guinn Pass다. 귄 패스를 못 가면 Galatea Lake까지라도 갔다 올 생각이다.
갈라티 레이크까지는 편도 약 7.3km에 670여m를 올라가야 하고 귄 패스까지는 1000여 m를 올려야 하니 웬만한 산 정상 가는 높이는 된다.
이 트레일은 전에 한번 온 적이 있는데 후기를 찾아 보니 2013년 10월 2일이었다.
그해 여름에 카나나스키스 지역에 대홍수가 있었는데 트레일이 다 떠내려 가서 길을 잃고 중도에 포기했던 미완성의 산행이었다.
갈라티 레이크 트레일은 오른쪽에 마운틴 키드 싸우스를 끼고 갈라티 크릭을 따라 현수교부터 난간이 없는 통나무 다리까지 총 9개의 다리를 맑은 옥수가 흐르는 계곡 위로 이리 저리로 건너 오르는 산행이라 힘든지 모르고 쉽게 오를 수 있는 트레일이다.
얼마 걷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날이 따뜻해서(-3°C) 그런지 우모 장갑 속의 손이 난로불 쬐는 것처럼 후끈 달았다.
장갑을 벗고 폴을 잡으니 벗은 장갑 때문에 폴 잡기가 어렵다. 장갑이 짐이 되었다.
어려서 꼈던 벙어리 장갑이 생각났다. 어머니가 손뜨개로 떠 주신 벙어리 털장갑. 그 장갑에는 잃어버리지 말라고 장갑끼리 연결해서 목 뒤로 거는 줄이 있었다.
그때는 그 줄이 너무 싫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그런 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털실 장갑을 떠올리니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받았던 문화 충격이 떠오른다.
캐나다에서 내 첫 직장은 월마트였다. 그 당시 월마트에는 지금은 없어진 fabric 코너가 있었다. 거기서는 천도 끊어 팔고 뜨개용 털실도 팔았다.
2000년도 초에는 우리나라에도 월마트나 까르프 같은 세계적 대형마트도 들어왔고 우리나라 토종 대형마트도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그 어느 곳도 천을 끊어 팔거나 털실을 파는 곳은 없었던 기억이다.
그런데 선진국이라는 캐나다 대형마트에 뜨게용 털실이라니.
이제는 그 fabric 코너는 없어지고 월마트엔 그로서리가 자리를 잡았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게 나는 건 월마트 면접 볼 때 면접관이었던 친구가 월마트에서 그로서리를 취급한다면 어떨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던 기억이다.
당시는 영어로 내 의사를 자유롭게 구사하기 어려울 때라 "I don't think so." 그러고 웃음으로 때우고 넘어갔는데
그 후 10여년이 흘러 월마트에서 그로서리뿐 아니라 야채 같은 프로듀스도 취급하는 걸 보고 내가 참 미래를 못 보는 놈이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하긴 한국의 신세계나 미도파 같은 고급 백화점에도 지하에 식품부가 들어섰으니 월마트가 그로서리를 취급한다고 이상할 건 없을 것이다.
그런 변화는 또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맥도널드 하면 햄버거 가게인데 언제부턴가 맥카페라고 해서 커피를 팔기 시작하더니 불과 얼마 전부터는 도넛도 판다.
그런가 하면 내가 캐나다 처음 왔을 때 팀호튼이라면 커피와 도너츠를 파는 곳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아침, 점심용 샌드위치는 물론 여러 종류의 수프도 판다.
그런 게 옛날 한국에 커피와 차만 팔던 다방이 언젠가부터 음식과 커피를 파는 경양식 집으로 바뀐 것과 비슷한 양상이지 싶다.
다만 여기 맥도널드와 팀호튼에는 아쉽게도 돈까스와 오므라이스는 없다. ㅋ..
진짜 라때는 학교 앞 다방에서 죽치고 있을 때도 있었으니 이젠 나도 옛날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 다방 이름이 초원다방이었던가?
아! 맞다 삼옥다방! 시경 앞 삼옥 다방이 있었구나.
서울대 문리대생들이(그 당시 서울대는 지금의 관악 캠퍼스로 다 옮기고 문리대만이 동숭동에 있었던 기억이다) 데모를 해서 동숭로가 막히고 가톨릭 회관이 폐쇄되면 따로 연락할 길이 없어도 금요일이면 자연히 모이던 곳.
내 인생에 그 삼옥다방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산우회의 집회 장소.
근데 이제 와서 궁금한 점 한가지. 왜 가톨릭회관에서도 먼 삼옥 다방이었을까 싶다. 그 다방에 드나들던 사람들도 모두 나이가 많던 사람들이라 우리 같은 애송이들이 드나들기에는 어울리지 않던 곳이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선배님들 중 누군가가 말씀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왜 삼옥다방이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ㅋㅋ
얘기가 한참 빗나갔다. 어디까지 했더라...
맞다. 릴리안 레이크.
책에서 사진으로만 본 릴리안 레이크는 아니다. 난 늘 아름다운 빛깔의 레이크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레이크 트레일은 주로 겨울에만 오니 늘 눈에 덮인 하얀 레이크만 본다.
오늘도 그랬다. 그냥 하얗다. 레이크 옆 캠프 싸이트에 앉아 간식을 먹고 워킹용 12발 아이젠을 신었다.
릴리안 레이크 옆 표지판을 보니 갈라티 레이크 까지는 1.1km, 귄패스 정상까지는 1.7km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질리안의 가이드 북에는 귄패스 가는 길이 릴리안 레이크 800m 전이라 했는데 여태껏 갈림길도 표지판도 없었다.
귄 패스 가는 길은 official 루트이니 그럼 질리안의 책이 잘 못된 것일까 의문이 든다.
릴리안 레이크에서 갈라티 레이크까지의 길은 눈도 많고 경사도 제법 급해졌다. 게다가 바람도 세게 불었다.
그런다 한들 1킬로 미터다. 힘들다 싶었는데 어느덧 갈라티 호수다.
호수 바로 앞에 표지판은 떨어져 나가고 지도만 붙은 표지판 폴이 서 있었다. 그런데 어디를 봐도 600미터만 올라가면 넘을 수 있는 재는 안보였다.
대충 짐작되는 곳은 있었지만 경사가 엄청 급하고 발자취도 없어서 오늘도 귄 패스는 패스하기로 한다.
전에 귄패스의 반대쪽인 리본 크릭을 따라 리본 레이크를 거쳐 귄 패스를 온 적이 있었는데(찾아보니 그날도 10월 2일이었다. 다만 연도는 2015년이었다) 그때도 귄패스 바로 아래에서 포기를 했었다. 그때는 귄패스를 목표로 온 것은 아니었고 혼자 리본 레이크까지 오다 보니까 조금 시간이 남는 것 같아 리본 레이크를 지나 더 올라 와 본 것이 Bullar Pass와 Guinn Pass 갈림길이었고 거기 표지판에 귄패스가 조금 더 가까워서 시도를 하다 너무 지치고 시간상 늦어서 귄패스 바로 밑에서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그 당시 기억으로 귄패스 올라가는 길이 이쪽처럼 급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귄패스를 넘어 불라 패스나 리본 크릭 쪽으로 관통해 보고 싶다. 물론 그때는 차가 두대여야 할 테니 그것이 문제긴 하다.
갈라티 호수에서 돌아 내려 오는 길에 인상 깊은 두 팀을 만났다. 첫 번째 팀은 커플 혹은 남자 두 명으로 보이는 팀인데 내가 Hi! 해도 인사도 안 받아 준 친구들이다.
신발은 고소화 혹은 빙벽화 같은 특수화를 신었고 커다란 어택 위에 각자 자일 한동씩을 얹어서 올라가던 친구들이다.
저 호수 위 어디에 빙벽을 하는 곳이 있는 걸까 아니면 호수 뒤 The Tower를 직등하러 가는 걸까?
두 번째 팀은 세명의 여자였는데 나보고 한 20분 더 가면 되냐고 물어서(물론 영어로) 희망을 주려고 10분만 올라가면 된다고 했더니 자기들끼리 환호를 지르며 다 왔다고 떠들던 팀이다. 한국말로. 얼굴을 칭칭 동여 매서 동양인인지 몰랐다.
헐~ 한국 사람이 일요일날 교회도 안 가고 등산이나 하는 사람도 있단 말인가? 저런 사탄 마귀 같은 사람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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