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Heart Mountain ( 2020년 8월 31일 )

진승할배 2020. 9. 8. 01:20

오도다. 아니 5도란다.
싼지브의 SUV 뒷문을 열면서 "보 탄드"(very cold의 힌디어)라고 소리 치자 싼지브가 낄낄대며 온도를 알려주었다.
어쩐지 주차장에서 싼지브를 기다리는데 얼어 죽는 줄 알았다.
싼지브와 준회씨가 동시에 도착했다. 
오늘은 일행이 한명 더 늘었다. 역시 동종업에 종사하는 싼지브 또래의 한국 친구다. 
내 블로그를 보고 산에 가고 싶어했지만 민폐가 될 거라며 주저하더니 지난 두 번 싼지브가 산행한 걸 보고 자신이 생겼는지 같이 가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준회씨는 택시를 하기 전에는 에드먼턴에서 2시간쯤 떨어진 시골에서 주유소를 운영했다고 하는데 
어느 날 시골 생활을 청산하고 에드먼튼으로 올라와 택시 한 대를 사서 택시 운전사로 급변신을 했다. 
그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다른 한국 기사 말에 의하면 그는 한국에서 유수의 국립대를 나와 선생님을 했었다는데 
이민 오기 바로 전까지는 중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인 손님을 태우면 중국어로 대화를 하는 능력자라고 한다. 
그는 싼지브 처럼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교회에 열심이고 술도 안 마시는 나랑은 또 꽈가 다른 친구다.

오늘 싼지브와 준회씨는 첫 대면이다.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전에 휠체어 손님 인수인계로 전화 통화를 한 적은 있었다고 한다. 
그 둘은 장애인 택시를 운행한다. 그렇지만 둘 다 똑 같이 휠체어 트립을 지독하게 피해 다닌다. 장애인 트립을 받으면 특혜도 있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ㅋㅋ

오늘은 싼지브 요청으로 낮은 산을 골랐다.
Heart Mountain. 2145m(Wikipedia 기준)
그러나 솔직히 함정이 있는 산을 골랐다. 낮지만 제법 가파른 바윗길이 있어서 초보자에게는 위험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바위산이다. 
싼지브에게 낮은 산이라고 더 쉬운 산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 주고 싶었다.

역시 준회는 한국 사람이었다. 처음 200m를 올릴 때 까지는 조용조용 싼지브 뒤를 따라오더니 바윗길이 나타나자 훌쩍 싼지브를 지나쳐 앞으로 치고 나갔다. 
평소 그가 하는 말을 들어 한국에서는 제법 산에 좀 다녔겠구나 싶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바윗길에서 과감하게 오픈된 페이스로 나가서 바위를 즐기고 있었다. 초보자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준회씨가 앞에서 치고 나가는 바람에 곤란한 일이 생겼다. 처음 산행하는 준회씨도 멋진 사진을 찍어줘야 하는데 
가뜩이나 겁이 많은 싼지브를 떼어 놓고 준회만을 쫓아가서 사진을 찍어 줄 수는 없었다.
싼지브도 첫 번째 두 번째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다.
여전히 느리긴 했지만 그래도 30분 넘게 쉬지 않고 꾸준히 걸었다. 느리나마 자기 페이스를 찾은 듯싶었다. 
산행 후 한 말이지만 만약에 오늘 하트 마운틴을 처음에 왔으면 자기는 중간에 포기했을 거라고 한다.
오늘 싼지브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험한 바윗길을 넘어 정상에 섰다.

원래 계획이 하트 마운틴 정상을 넘어 그랜드 맥키완 피크 정상까지 갈 생각이었다. 
정상에서 싼지브에게 그랜드 맥키완까지 가겠느냐고 묻자 당장 눈 앞에 50m쯤을 떨궜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는 게 싫었던지 오늘은 여기서 뭠추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준회씨의 등산화에도 문제가 있는 듯싶고 마침 정상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어서 나도 주저 없이 그러자고 했다. 
다만 준회씨만이 아름다운 릿지 산행을 못하는 게 많이 아쉬운 듯싶었다. 싼지브라면 몰라도 준회씨라면 다음에 얼마든지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든다. 

나는 혼자 산행한 이후로 산행중 점심을 먹지 않는다. 점심 준비하는 게 번거롭기도 하고 하루의 산행이 내 불룩한 뱃속에 저장된 지방으로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때문이다.
정상에서 간단히 스낵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하산을 시작하자고 했더니 준회씨가 호일에 싼 김밥을 건네준다. 
참치 김밥이었는데 아마도 채식주의자인 싼지브를 생각해서 준회씨 부인이 고기 대신 참치를 넣어 만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싼지브는 참치나 생선도 먹지 않는 리얼 베지테리언이라 그 맛있는 김밥을 먹지 못했다. 
분명히 뒷뜰에서 정성껏 수확했을 깻잎을 넣어 만든 참치 김밥이 깻잎을 좋아하는 나한테는 너무 맛있었다. 준회씨 부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비록 740여 미터를 올라 갔지만 총거리가 6km도 되지 않는 짧은 산행을 정확히 7시간 30분이나 걸렸다.
2주에 한번 산행을 하니까 앞으로 눈이 오기 전에 한번이나 많으면 두 번 더 산행할 기회가 있을 텐데 
산행 능력이 좋은 준회씨를 위해 좀 더 힘들지만 산행이 재밌고 경치가 좋은 산을 가고 싶지만 아직 싼지브를 데리고 가기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지금부터 첫눈이 올 때까지는 동면에 들어갈 곰들이 식욕을 늘리면서 행동 반경도 늘린다고 곰 출현 경고나 등로 통제가 시작될 테니 산행지도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준회가 산행에 합류한다고 했을 때 싼지브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대뜸

"Two is better than one, Three is better than two. Why not?" 이라고 되묻는다.
산우회의 시조새 찬영 형님도 동행이 있어야 산행이 더 재미있고 에피소드가 많이 생겨 오래 추억된다고 일갈하셨다. 
맞는 말씀이시다. 뭉쳐야 뜬다. ㅋㅋ...

 

정상부 바위가 하트 모양으로 생겨서 하트 마운틴이라고 명명되었다고 한다. 고속도로에서 하트 모양을 보고 사진을 찍었는데 싼지브가 너무 빨리 달리는 바람에 하트 모양이 살짝 찌그러졌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