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친구가 말하길 내 산행후기를 읽고 내가 갔던 산을 따라가기가 어렵더라고 말한다. 당근 말밥이다.
나는 산행 중 있었던 에피소드나 그때 그때 느낀 감정을 기록한 후기를 쓰는 거지 산행 가이드 글을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후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에드먼튼으로 와서 마침 그때 새로 생긴 푸른 산악회에 가입하고부터다.
산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의 공유 필요성을 느끼고 카페를 만들었고 카페지기로서 카페의 활성화를 위해
못 쓰는 글이라도 산행의 기쁨을 공유하기 위해 산행 후기를 쓰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겨우 제스퍼 지역인지 밴프인지를 구분했을 뿐이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지 방위도 전혀 모를 때이다.
그러니 애시당초부터 산행 가이드 글을 쓸 엄두는 내지도 못했다.
내 생각에 산행 가이드 글을 쓸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번 이상 그 코스를 다녀오고 주변에 연관된 루트라던가
위험할 때 탈출로 또는 우회로를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 코스의 평균 난이도를 평가할 줄 알고 위험 요소를 적시해서 그 가이드 글을 읽고 산행하는 사람에게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혹시라도 내 후기를 읽은 분들은 내용이 전부 내 주관적인 생각과 판단임을 명심하시고 산행은 각자가 알아서 준비하시기 부탁드린다.
날씨가 다시 더워졌다.
새벽 5시 에드먼튼을 출발할 때 16도였는데 한 시간도 못 가서 갑자기 차의 온도계가 27도를 표시한다.
싼지브는 내 차의 온도계가 고장 났다고 하고 나는 실제 밖의 온도가 그럴 거라고 우겼다. 사실 새벽 6시에 밖의 온도가 27도라는 건 나도 믿을 수가 없었다.
싼지브는 한번 산행하면 더는 안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번 산행하고 2주 후에 산행을 할 거면 다시 또 따라가겠다고 미리 알려왔다.
사실 날이 좋으면 가보고 싶은 산이 한두개 더 있어서 벼르고 있었는데 싼지브를 또 그런 힘든 산에 데려갈 수는 없었다. 완전히 엮여 버렸다. ㅋ...
이번엔 온전히 싼지브를 위해 산행지를 결정했다.
그리즐리 픽 1. 이미 두 번 산행한 곳인데 2700m대의 낮지 않은 정상이라 아주 쉽지 만은 않은 데다 정상에서의 조망이 좋아서 성취감도 있는 산이다.
싼지브 말대로 지난번 첫 산행보다는 훨씬 좋아졌다. 여전히 늦기는 했지만 잘 따라왔다.
단점이라면 너무 자주 멈춰 서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거였는데 워낙에 경치가 좋아서 그럴 수도 있을 거고
힘들어서 사진 찍는 핑게로 좀 쉬는 거려니 하고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었다.
싼지브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 정상에 섰다. 2,767m. 생각대로 성취감이 컸던지 굉장히 좋아했다.
마침 전에 이 산에 왔을 때는 안보였던 정상 등반자 레지스터 통이 있어서 싼지브가 직접 기록도 했다.
싼지브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보람이 있고 좋았다.
그리즐리 픽은 산행을 시작할 때 작은 능선 하나를 넘어야 한다.
그 능선을 넘어 내려갈 때 싼지브에게 "지금은 이 내리막이 좋을지 모르지만 돌아올 때는 이 내리막 길이 너를 죽일지도 모른다(may kill you)"고 경고를 해주었었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 오는 길에 싼지브가 이 언덕에서 아주 죽을 맛인 모양이었다. 능선 정상에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싼지브가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나 혼자 훌쩍 내려와 버렸다.
나머지 길은 트레일도 뚜렷한데다 편안한 길이어서 가래톳이 서서 다리도 못 들겠다는 엄살을 다 들어주다간 지난번처럼 너무 늦을게 뻔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왜 그렇게 엄살이 심하고 애기 같이 구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싼지브 말이 자기는 도시에서 태어나서 대학 졸업 후 사무실에서 화이트 칼라로 일하다 이민을 와서 힘든 육체적인 노동이나 운동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민자 누구나 같이 처음 이민 와서 warehouse에서 육체 노동이라는 걸 처음 해봤는데 몸이 얼마나 고되던지 집에 와서 밤마다 와이프가 자기 팔다리를 주물러 주었는데 그때마다 와이프가 만지는 곳이 너무 아파서 아구구구 소리가 절로 나왔다고 하는데 저 아픈 소리가 우리하고 얼마나 똑같던지 진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도시 태생에 고생은 모르고 자랐지만 어려서 날라리로 산에도 다니고 또 군대를 공병대로 가서 육체적인 노동을 해봐서 얼마 만큼은 힘든 상황에 적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군대 생각을 하니 지금은 하남시로 바뀐 황산 초일리에서 육군 비행대 계류장을 만든다고 반년동안 찔통을 지고 콘크리트를 비비던 시절도 있었고 그 후엔 안양 수리산 레이더 기지 방공포대 보수공사에 동원되어 용접용 산소통을 짊어지고 수리산 비탈을 오른 힘들었던 군생활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런 경험이 나를 더 용기 있는 정신과 건강한 육체를 만든게 아닌가 싶다.
이제 택시 운전 5년 차가 조금 넘는 싼지브는 3년이 지난 시점부터 여기저기 몸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하더니 2년 전부터는 당뇨병 약도 상용할 만큼 건강을 많이 잃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나보다 더 빨리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산행을 하겠다고 굳은 각오를 보인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싼지브가 앞으로 일이 년을 더 산에 다닌다 해도 겁이 많아서 내가 가고 싶은 산을 같이 가기가 무리일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난감하게 생겼다. ㅋ..
그나저나 나는 얼마나 더 이렇게 산에 다닐 수 있을까.
때로는 스스로도 너무 위험하고 무리라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런 모험에 대한 도전과 성취감이 참 좋다.
그러니 단순히 나이만으로 그런 도전을 멈추고 싶지는 않다.
분명히 언젠가는 싼지브가 나보다 더 빠르게 걸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내가 그보다는 더 앞서서 늙고 있으니까.
그때까지만이라도 산에 다닐 수 있다면 무얼 더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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