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Allstones Lake Trail (2019년 1월 6일)

진승할배 2020. 5. 5. 01:39

  어느 날 술 잔뜩 취해서 잠들었다가 다음날 눈떠서 '여기가 어디지? 내가 왜 여기 있지?' 하는 당혹감을 느껴본 사람이 있는가?
바로 올해가 딱 그런 기분이다. 
술 취해 잘 자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1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더라는.
육십갑자를 지나 그런가 세월이 부쩍 빨라진 느낌이다.
이제 갈수록 더 그렇지 않을까 싶고 몇 년 후에는 낮잠 자고 일어났더니 1년이 지나갔더라는 무릉도원을 이야기할지도 모를 일이다.

엊그제 개띠해 첫 산행을 한거 같은데 어제 돼지해 첫 산행을 했다.
겨울 날씨 치고는 기온도 영하 5도 안팎이고 해도 볼 수 있었고 바람도 불지 않아서 자연적인 산행 조건은 아주 좋은 편이었다.
다만 지난 1월1일 쉬는 날에 수지 여사한테 끌려 나가 동네 파크에서 하드 트레이닝을 받아서 다리에 알 박힌 게 풀리지 않은 게 더 걱정이었다.(사족이지만 300단이 넘는 가파른 계단을 10번 왕복하게 만들었다)
오늘 등반한 산은 Allstones Lake Trail.  이름 그대로 올스톤 레이크를 가는 트레일이지만 당연히 레이크 위에 있는 산 정상에도 갔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산 이름은 모른다.

 

전에 어느 산행 후기에 한번 갔던 산은 다시는 안간다고 썰을 풀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건 '켄터키 옛집에 햇빛 비추어 여름날 검둥이 시절' 이야기이지 요즘 같이 해도 짧고 눈도 많은 겨울철엔 가는 곳이 뻔할 수밖에 없다.(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따옴표는 노래다. 우리의 호프 김보스님의 젊은 시절 18번인데 한번 신청해서 들어 보시라. ㅋ) 
카나나스키스 초입에 있는 볼디레이크 룩아웃이나 밴프 곤돌라가 있는 썰퍼 마운틴 그도 아니면 캔모어 시내 바로 옆 산인 하링 피크나 그 외 몇 개의 레이크 트레일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오늘 간 올스톤 레이크 트레일은 같이 산행한 수지 여사와 띠동갑 동생인 성옥씨는 처음 가본 곳이고 나도 2년 전쯤 혼자 산행하고 두 번째 온 그나마 후레쉬한 산행지다.

 

올스톤 레이크 트레일은 록키의 변방이라 할만한 곳에 위치한 아브라함 레이크 근처에 있는 트레일인데 아브라함 레이크는 지난해 한국 텔레비죤 방송 '뭉쳐야 뜬다'라는 프로그램으로 소개된 곳이기도 하다.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브라함 레이크는 레이크 바닥에 가라앉은 침전물에서 올라오는 메탄가스가 호수 얼음 속에 기포로 얼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난 한 번도 못 봤다. 서울 사람 남산 타워에 올가 가는 거 봤는가. ㅋㅋ

 

록키에서 겨울 산을 다녀보면 아름드리 나무들이 힘없이 쓰러져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저게 왜 혼자 저렇게 넘어질까 궁리를 해보니까 나름대로 결론을 얻게 되었다. 록키는 대부분이 바위산이다. 그렇다고 나무가 하나도 없는 건 아니고 수목한계선인 2300-2400m 대까지는 침엽수들이 제법 많이 자라고 있는데 나무가 심겨 있는 그 지역에 토양이 풍족하지 못한 모양인 것 같다. 그러니 나무뿌리가 땅 밑으로 깊게 뻗지를 못하고 마치 남자 팔뚝에 핏줄 일어서듯 뿌리가 지표면을 기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지표면에 있는 뿌리가 겨울이면 록키의 추운 날씨에 당연히 꽁꽁 얼게 되고 모든 사물이 완전히 얼어버리면 그리 강하지 않은 충격에도 쉽게 깨지는 것처럼 그런 상태에서 강한 겨울바람이 불어오면 마치 몽당연필 부러지듯 깨지는 게 아닌가 싶은 거다. 부러진 둥지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생각되어진다.

믿거나 말거나! ㅋ...

 

오늘 산은 겨우 2100m대의 낮은 산이지만 수지여사 말대로 록키산은 낮아도 그 값어치를 한다. 아브라함 레이크 전경을 볼 수 있는 것도 좋고 병풍처럼 둘러 쌓인 이름 모를 산들의 전경도 좋았다.
다행히 알박힌 다리로 별 무리 없이 5시간 40분의 산행을 마무리했다. 
이젠 뒷풀이 시간. ㅋㅋㅋ
오늘은 마침 산행지에서 가까운 록키마운틴 하우스(지명) 지역에 사는 성옥씨 아는 언니 집으로 간다고 한다. 그래서 수지 여사가 고기도 준비하고 술을 나보다 잘 마시는 성옥씨는 비싼 24도짜리 4살배기 두꺼비도 한 마리 준비했다고 한다.
난 입만 준비하고 쭐래쭐래 못 이기는 척 따라간다.
시골집 가라지 안에는 우드버닝 스토브가 벌겋게 달아져 있고 그 위에서 지글거리며 노르스름하게 구워지는 목살은 내일 아침이면 또 한해를 넘길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ㅋㅋㅋ

 

이상하리만치 이날 사진이 많지 않았다. 에이브라함 호수를 배경으로 정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