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전날,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 담배를 태우려고
베란다에 나서니 남쪽 하늘에 조금 못 찬 반달이 걸렸다.
구름 때문인가 달 주위에 달무리가 졌다. "내일 비가 올려나?" 그래도 날은 푹하다.
생각이 많은 하루였다. 이번엔 회장님 덕분에 해결이 되었지만 오늘 하루의 문제가
아니다. 산행 때 마다 차량 문제가 대두된다.
그렇다고 별 뾰죽한 수도 없으니 회장님 말씀마따나 산악회 차량 구입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항상 나갈 주머니가 더 크다고 툴툴거리는 억수로님은 그 힘든
가운데서도 벌써 차량구입비로 1,000불을 기증했다고 한다.
오늘은 차량 두대, 7분이 산행에 나선다. 이제는 정시에 출발 못하는게 비정상이 되었다.
레드디어 맥도널드. 모자랄게 뻔한 회계. 나설 일이 아니니 입닥치고 앉았다.
차량을 지원해 준 아임혁님이 유류비에서 20불을 도네이션하고 미소천사님이
모닝 커피를 도네이션하여 회계가 마무리되었다. 난 안냈다. 감사한 일이다. ㅋ..
작년 캘거리 홍수 때 같이 피해를 본 Cougar Creek과 Benchlands Trail(도로명)이
만나는 지점이 오늘 산행 출발지다. 하천 복구 공사가 한창이다.
거기서 어떤 분이 오늘 산행에 합류하셨다. 미소천사님이 초대하신 미소천사님의
애인(?) 캘거리 산악회 멤버 이모씨라고 한다. 우리 산악회원 몇 분들하고는 이미
안면이 있으신 모양이다. 어? 난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처음 뵙지만 누군지 알듯하다.
'혹시 저 분이 그 무섭다는...?' 살짝 긴장이 된다.
오늘은 또 세리사랑님의 남편 분(박상배님)이 처음 산행에 참석하셨는데
알고보니 이분은 이재기대장, 미소천사님 부류의 날다람쥐과 이시다.
작년 송년회때 뵈었을 땐 춤 스텝만 빠른 줄 알았는데 산행 스텝도 빠르신 분이시다.
글쎄 로키 산행은 처음이시라는데 사람 많이 다닌 길만 따라 가면 된다고 맨 앞에서
냅다 뛰다시피 날아 가시는 바람에 갈림길에서 길을 잘 못 들어 그 부인되시는 분이
한참을 따라 올라가 소리소리 질러 다시 끌고 내려오신 분이시다.
또 은근히 웃기기도 하신 분이다. 누구든 같이 사는 사람(?)을 모임에 내보내고 나면
집에서 소설(?)들을 쓰고 앉았는데, 그래도 산악회 모임은 안심을 해도 된다고 한다.
그 이유가 산에 가는 사람은 옷을 많이 입었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옷 많이 입은거 하고 소설 쓰는 것 하고 무슨 상관인지 난 하나도 모를 소리다. ㅎㅎ..
공사 중인 쿠가 크릭 상단부 얼음 계곡을 건너니 본격적인 산행길이다.
산길이 참 곱다. 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걷기 좋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 길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 곧 오르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늘 산행은 왕복 6-7km 남짓으로 산행 거리상으로는 긴 코스가 아니지만
오르막이 심하니 그리 쉬운 코스는 아니다. 늘 말하지만 출발점에서 빤히 보이는
어프로치가 짧은 산은 가파르고 힘들다.
산행공지에 몸 풀기 산행이라 했는데 이건 미소천사님 수준의 몸풀기다.
언제나 그렇듯 자기 나름대로의 페이스로 산행을 하시는 Sunny님이 본대가 두번째
쉴때는 따라 붙지를 못하신다. 조금 늦어도 올라 오기는 온다는 사실을 알지만
혹시나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깬 숫곰과 한판 붙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다려보기로 한다.
5분도 못되어 따라 오신 Sunny님을 다시 뒤로 하고 서둘러 본대로 따라 붙는다.
저 위, 오픈된 급경사의 비탈면 위에 회원들이 점점이 박혀 용쓰는 모습이 보인다.
100여 미터 바로 아래서 봐도 저렇게 작게 보이는데 저 하늘 높은 곳에 계신 분이
내려보시면 개미보다도 작게 보이리라. 그 개미보다 작은 인간이 2,600m가 넘는
고봉에 들러 붙어 살겠다고 올라가고 살아 보겠다고 내려온다. 왜?
나무가 옅어지면서 바람이 거세졌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의 바람(?)과는
의미가 다를 바람이 체감 온도를 떨군다. 그 추위 때문인지 경사 때문인지 줄 곧
선두에 서셨던 세리사랑님의 남편분이 내려오신다. 산행을 포기하신게 아니다.
밑에서 힘들어하시는 짝궁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 분 보기완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고가 틀리신 분이다. 실망이다.
-산에 오는 차안에서는 같이 사시는 분과 분명 남 같이 지낸다고 하셨슴- ㅎㅎ..
박선생님이 내려가셨으니 이제 세리사랑님과 Sunny님은 걱정을 안해도 될것이다.
오랫만에 산행에 나서신 회장님이 급경사면 끝에서 다리에 쥐가 나셨다고 뒤로 쳐지신다.
선두에 서신 미소천사님과 그녀의 애인 그리고 아임혁님을 따라
정상으로 이어진 바위능선에 올라서니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눈이 많아졌다.
그런데 재수없게 바람에 날려 눈이 얇게 덮힌 바위면 위에서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팔꿈치를 조금 다쳤다. 바람에 주위력이 산만해져 덤벙대다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난 정말 바람이 싫다. 어떤 바람(?)이던 바람은 정말 싫다. 아~ 바람아 멈추어다오.
평소에 전문 암벽등반이나 빙벽등반이 아닌 워킹등반에서는 가급적 등반 기어(Gear)를
쓰지 않는다는 주관인데 이제 나이를 먹은 모양이다. 다리에 힘이 빠져 걷는 산행도
아이젠이 필요하게 된거 같다. 이러다 조금 있으면 겨울에 집 앞에 나갈때도
신발에 체인이 필요하고 지팡이가 필요하게 되리라. ㅠㅠ..
여자들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능선상의 바위 하나를 넘어서니 티하우스가 있었을
자리가 바로 코앞인데 -산행입구의 안내판에 따르면 티하우스를 철거중이라고 한다.
그래 그런가 티하우스는 볼 수가 없었다-
미소천사님과 그녀의 애인이 티하우스 바로 밑 허리까지 빠지는 눈속에서
서로 끌어안고 딩굴며 비명을 지르고 깔깔대고 좋아 죽을라한다. 미소천사님의
애인은 우리가 보건 말건 미소천사님한테 대놓고 뽀뽀를 하고...
아임혁님은 큰 누님들의 명령에 찍소리 못하고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
참 자~알 한다. ㅎ..
미소천사님의 애인. 그가 누구인가. 전에 우리 산악회의 누군가가 내게 그 분에 대해
말한 것이 생각난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막 해대는 무섭고 예의도 없고...
특히나 우리 같이 담배를 피는 사람들은 쥐잡듯 한다던데.
올라오는 내내 생각을 했다. '만약에 나한테 담배 핀다고 막해대면 어쩌지?'
'난 잔소린 질색인데... 가만 보니 뭐 나랑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뭐 지가 내 마누라야 뭐야? 나 담배 피는데 지가 뭐 보태준거 있어?'
'만약 나한테 뭐라 그러면... 그래 붙자 붙어!'
그런 각오를 하고 올라왔다. 그런데 이게 왠일? 그 분이 나한테 사진도 찍어달라 하고
사진도 같이 찍자고 애인같이 착 달라붙고... 어잉?
이거 완전 듣던 거와는 딴판이다. 역시 사람은 직접 만나봐야 알고 사람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다른가 보다. 그 분 사람 보는 눈썰미도 있는 듯하다. -아님 내 얼굴에 성질 더럽다고
써있나?- 암튼 괜히 겁먹었다. ㅎㅎㅎ...
그렇게 사진을 찍고 하산을 할려고 하는데 저쪽 바위 위로 불쑥 회장님의 머리가 올라온다.
역시 우리의 회장님, 회장님... 포기를 안하셨다. 다시 사진 촬영 모드.
회장님을 중심으로 오늘 목표점 인증사진 한컷!
하산 길. 벌써 몇번인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더 이상 넘어질 수 없어 베낭에
꽂아 놓았던 폴을 꺼내들었다. 이것도 미소천사님 애인의 권유인데 그 마음 써주심이
고맙다. 아 참! 그 분의 성함이 이정옥이시고 물론 여자 분이시다.
미소천사님의 애인. 저렇게 마음이 고우시니 처음 보는 사람도 몸에 나쁜 담배를
피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에 그러셨으리라. 그래도 담배 피는 놈이 있으니 참...
언제나 하산길에서 느끼는 것. 이걸 어떻게 올라갔을까? 내려올걸 왜 올라갔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려오다 보니 문득, 먼저 내려가신 분들이 차 키가 없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 분들이 추운데 차밖에서 떨면서 우릴 기다릴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빨라진다. 혹시 알아? Sunny님이 오늘 집에 가셔서 술 한잔하시고
'무슨 산대장이 회원에 대한 배려가 없느니 어쩌니...' 카페에 글을 올리시면?
아이고~ 초보 산대장 죽는다! 뛰듯이 내려간다. ㅎㅎㅎ...
유리도 없는 썰렁한 쉘터에 박선생님이 난로에 장작을 지피니 쉘터안이 금새
따뜻해졌다. 만족하신 세리사랑님 왈. '저이가 쫀놈이라 장작불은 잘 지펴요.'
아이고... 박선생님. 한때는 한 성질 하셨다니만 어쩌다 이렇게 마나님한테
쫀놈 소리까지 들으시나요. ㅋ..
미소천사님의 애인 이정옥님을 포함 8명의 산행 동지들이 모이고
삼겹살이 구워지고 술 도가 주인이신 회장님이 공급해 오신 꼬냑과 소주,
미소천사님이 가져오신 포도주를 딱 한잔씩만 마신다.-우리 푸른산악회는 하산주를
딱 한잔씩만 한다- 믿거나 말거나.
얘기 꽃이 만발하고 웃느라 빼꼽이 빠지는 줄도 모르고
그러는 바람에 출발 시간은 한시간이나 늦어지고...
그래도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걸 어쩌란 말인가.
2014년 3월 11일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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