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Opal Ridge North Peak (2023년 6월 3일)

진승할배 2023. 6. 5. 15:54

지난 3월 말, 필라델피아 근교에 있는 애팔라치아 산맥을 등산한 적이 있었다. 말이야 거창하게 애팔라치아 산맥이지 한국의 흔한 동네 뒷산 수준이었다. 그 산이 애팔라치아 산군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하게 된 건 산자락에 붙어 있는 캠프 그라운드의 이름이 애팔라치아 캠프 그라운드였기 때문이었다.
그 산에는 유난히 가시나무가 많았다. 산딸기 나무 처럼 잔가시가 있는 작은 나무도 많았고 장미 나무처럼 큰 가시가 있는 나무도 있었다. 산행을 끝내고 차로 돌아왔을 때 손바닥에 잔가시들이 박혀 있는 게 보였지만 눈도 잘 안 보이고 가시를 뺄만한 기구도 없어 그냥 무시하고 말았다. 
다음날 버지니아 리치몬드에서 물건을 싣고 돌아오는데 이상하게 손이 아프고 불편해서 살펴보니 양손이 퉁퉁 부어 있었고 손가락 마디 관절이 많이 아팠다. 처음에는 손에 박힌 가시 때문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갑자기 왜 이럴까만 생각했었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손에 박혔던 가시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손이 아프면서 이상하게 소화 기능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헛 트림이 자주 나오고 소화도 안 되는 거 같고 식욕도 전 같지 않았다. 손이 나으면 속도 괜찮아지겠거니 생각하고 손이 낫기를 기다렸다. 두 달쯤 지나 전체적인 손의 통증은 많이 없어졌지만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은 여전히 부어 있었고 관절의 통증도 사라지지 않았을뿐더러 소화 능력도 좋아지지 않았다. 결국 지난달 말 병원을 찾아 피검사와 변 검사등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특별히 안 좋은 데는 없다는 결론이 나와서 의사 선생님도 왜 손가락 마디가 아픈지 왜 소화가 안되는지 확실한 원인은 알 수가 없다고 하는데 내 큰 형님 말씀으로는 식물의 독으로 생긴 일종의 알러지 현상으로 소화 장애가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하신다. 지금은 의사 선생님의 처방대로 위장약과 통풍약을 먹고 있는데 여전히 좋아지지는 않고 있다. 
그날 3시간 남짓의 산행도 등산이라면 미국에서의 첫번째 등산이었던 셈인데 미국의 산은 낮은 산이라도 함부로 올라가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몸소 체험한 기회가 됐는데 어쩌면 그만하기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큰형 말대로 내 손이 식물의 독으로 부어오른 거라면 Tick 같은 해충이나 독거미 같은 독충 혹은 독사 같은 더 위험한 동물로부터 해를 입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지 동네 뒷산인데도 도무지 사람들이 올라 다닌 흔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아무 산에나 안전하게 올라 다닐 수 있는 우리나라는 정말 살기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암튼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날이 풀리고도 한동안 산에 가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았었다.

Opal Ridge North Peak(2575m)은 Alan Kane의 책에 따르면 Moderate difficult 등급이니 높은 산은 아니지만 쉽게 볼만한 산도 아니다. 이름 그대로 릿지 산행이라 처음 릿지로 올라서는게 힘들지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경사도 완만해지고 빽빽이 들어선 나무가 적당히 해를 가려주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기분 좋은 산행이 된다. 그런데 이 능선으로 오르는 코스가 사람(책)마다 다르게 안내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했다. 캐나디언록키바우(Canadianrockybou)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한국분의 유튜브에는 Eau Claire Campground에 파킹을 하고 캠핑장 입구 길 건너에서 산행을 시작한다고 했지만 캠핑장에는 캠핑객 외의 차량을 주차할 공간이 없었고 입구 반대편에도 산행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앨런 케인의 책에는 록키 크릭(Rocky Creek)에서 1km 남쪽, 캠핑장의 Just south라고 했는데 록키 크릭이 캠핑장보다 북쪽에 위치한 걸 보면 이건 분명 표기의 오류이고 산행 시작 지점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40번 하이웨이와 나란히 달리는 오팔릿지를 따라 북쪽으로 왔던 길을 다시 달리며 보니 오히려 록키 크릭 다리 앞에 주차할 공간이 넓게 있었고 그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게 조금 멀긴 해도 능선에 올라서기가 쉬워 보였는데 마침 크릭 옆에 캐른으로 산행 시작 지점을 표시해 놓았다.
기분 좋은 릿지 산행 끝에 수목 한계선을 벗어 나면서 짧지만 아주 가파른 바윗길은 왜 알란 캐인이 이 산을 Moderate difficult로 구분해 놓았는지 명확해진다. 여기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의 crux라 할 마지막 3m쯤의 바윗길을 손발로 기어오르니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넓고 평평한 능선이 펼쳐졌는데 밑에서 보기에 이 바위만 올라서면 정상일 줄 알았는데 저 멀리 능선 상에 비현실적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보인다. 과연 어떤 게 진짜 North Peak일까 생각하면서도 멀지 않은 곳에 더 높은 봉우리가 있으니 일단 올라 보기로 한다. 이 바위 봉우리도 쉽지 않아서 올라갈 때는 측면 바위길로 직등을 했지만 내려올 때는 뒤로 크게 우회해서 내려와야 했다. 전에 록키바우님의 유튜브에서 봤던 동영상에는 레지스터 통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다른 동영상이랑 착각을 한 건지 어디에서도 레지스터 통은 찾을 수 없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하지만  '소리 없이 강하다'는 광고 카피 처럼 6월 초 록키의 바람이 세진 않아도 제법 차가워서 눈에 익은 주변 산들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휴식 없이 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에 잠깐 방심하면서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낭떠러지와 맞닥뜨리니 정신이 번쩍 들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오늘 처음으로 배낭에 넣어 두었던 헬맷을 쓰고 바위 등반용 장갑을 끼고 윈드재킷을 꺼내 입고 약 40m쯤 되는 바윗길을 다시 기어올라야 했다.

5시간 45분의 짧은 산행이었는데도 오랫만의 산행이라 쉽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Gym에 다니면서 트레드밀 위에서 해왔던 호흡이 산행에서의 호흡과 맞지 않아 전체적으로 헉헉대며 숨 가쁘게 걸었다. 1시간 남짓 짧은 Gym에서의 운동은 운동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실제 산행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걷는 습관이 몸에 배어 밸런스가 무너져 힘이 들었다. 그나저나 요즘은 식욕도 없어서 많이 먹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도 배둘레햄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산행을 더 힘들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존 그리샴의 책(브로커)을 읽다 보니 카푸치노의 본 고장인 이탈리아 사람들은 오전 10시 30분 이후에는 카푸치노를 안 마신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음식물로 가득 찬 위장에 우유를 들이붓는 격이라 그렇다고 하는데 요즘말로 커피에 어린이인 나는 커피를 마실 일이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달달한 카푸치노를 마셨는데 이렇게 만삭인 이유가 카푸치노도 한몫하는가 싶어 이제는 카푸치노도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오늘 험한 바위길에서 살겠다고 바위 잡은 손에 힘을 주어서 그런지 아팠던 관절이 많이 좋아진 기분이 든다. 진짜 나아진건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난 김장호교수님의 말씀처럼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중앙의 뾰족한 봉우리가 오늘의 목표. 정면의 능선은 사진 왼쪽에서 록키 크릭(Rocky Creek)으로 급격하게 소멸된다.
Rocky Creek. 왼쪽의 뚝 뒤로는 많은 양의 물이 흐른다. 오른쪽의 두 케른을 따라 오르는게 쉽고 안전한 루트이다.
능선에 올라서자 마자 보이는 오늘의 목표물. 왼쪽끝 먼 산은 Fisher Peak.
능선에 올라서자 마자 서쪽으로 보이는 Mt. Kidd. 가운데 눈을 중심으로 오른쪽이 북봉 왼쪽 첫번째가 남봉. 남봉 왼쪽 제일 끝 산은 Mt. Bogart 같아 보이고 남봉과 북봉사이 구름이 걸린 봉우리는 Ribbon Peak로 보인다.
왼쪽 초록색 화살표부터 Mt.James Walker, The Fortress, Gusty Peak 마지막 파란색이 Mt. Galatea.
The Wedge
왼쪽 봉우리가 북봉? 그 오른쪽 살짝 고개를 내민 봉우리가 북봉? 오른쪽 끝에 삼각봉은 South Peak. 그 사이 Opal Ridge 종주는 Difficult 등급이다.
오른쪽 빨간 화살표부터 Mt.James Walker, Mt, Inflexible, Mt. Lawson 그리고 초록색이 Little Lawson. 그 아래 40번 하이웨이 남쪽 방향.
정면에 바위 봉우리 우회길이 없어서 위험한 구간. 마침 태양빛이 반사되어 만든 원호의 오른쪽을 따라 오른다.
올라온 길. 이 스크리 길은 잘 다져져서 전혀 미끄럽지 않았다.
바위 밑의 좁은 걸리(Gully)를 타고 오른다.
위 사진의 걸리를 올라서면 만나는 마지막 경사면. 오른쪽 바위 왼쪽 끝으로 오른다. 조금 미끄럽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은 스크리 사면.
오늘의 Crux. 올라가기 보다 내려오기가 아리까리한 구간. 앞에 봉우리가 북봉일까 그 오른쪽 비죽 나온게 북봉일까? 아직도 미스테리.
올라온 능선. 오른쪽 계곡은 Rocky Creek.
처음엔 Crux 위의 봉우리가 북봉인줄 알고 기념 사진도 찍었다. ㅋ
현재의 내 위치보다 더 높이 솟은 봉우리가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든다. 저게 진짜 북봉?

 

왼쪽의 눈을 지나 오른쪽 바위 경사면을 타고 올랐다. 내려올 때는 쫄려서 후면으로 크게 우회해서 내려왔다.
생각보다 눈이 깊게 빠져서 살짝 당황했다.
진짜 마지막 바위길
제일 높은 곳에서 본 Opal Ridge North
White Mountain Avens - Dryas octopetala
Moss Campion - Silene acaulis

 

사람이 보이십니까?
이젠 보이시나요? 오늘 유일하게 만난 동유럽 액센트를 쓰는 40대 친구.
이게 북봉!!! ㅋ
오늘의 베스트 컷. The Fortress and Gusty P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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