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Windtower (2022년 6월 19일)

진승할배 2022. 6. 22. 14:56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고 꿈꾸었을 앨 캐피탄과 하프 돔으로 유명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홍수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2주 전쯤 캘거리에 있는 앨버타 재난안전관리국이 올해 록키의 아이스팩이 예년의 같은 시기에 비해 약 20~40% 정도 더 두꺼워서 앞으로 날씨가 더워지면 눈이 한꺼번에 녹으면서 2013년과 같은 대 홍수가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했다고 지역 신문이 보도했다.
자연재해의 피해가 점점 더 커지는 양상이다. 작년에는 너무 가물어 산불이 기승을 부리고 올해는 눈도 많고 비도 많이 내려서 홍수가 걱정이고. 

그런 저런 이유로 지난 5월 22일 마지막 산행 후 3주를 쉬면서도 마땅히 갈만한 산이 없어 산행을 못하고 있었다. 유튜브를 검색해 보거나 구글링을 해 보아도 6월 중순까지 산양(Big Horn Sheep)의 출산기라 입산이 금지된 곳이 많았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최근에 업로드된 산행 기록도 많지 않았고 흥미를 끌만한 산도 없었다. 

햇볕이 간간이 비추기는 했지만 마지막 산행 날과는 다르게 구름이 잔뜩 낀 아침이다. 그래도 어젯밤에 날씨를 체크했을 때 카나나스키스에 비 소식은 없었다. 두 시간쯤 달려 보우덴(지명)의 팀호튼 드라이브 스루에 들어설 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금방 폭우로 변해서 앞이 잘 안보일 지경이 되었다.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면서 일기예보를 다시 확인하니 비가 올 가능성이 조금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록키에 비 소식은 없었다.
에어드리(지명)를 지날 때쯤 여전히 약한 비가 내리고 있긴 했지만 저 멀리 보이는 록키는 머리에 쓴 하얀 꼬깔이 선명하게 보일 만큼 날씨가 맑았다. 

아직 씨즌이 이른 건지 일요일인데도 생각보다 차가 많지 않았다. 작년 이맘때쯤(후기를 찾아보니 6월 27일) 림월(Rimwall) 산행을 왔을 때 윈드타워(Windtower)와 같은 출발점을 쓰는 이곳 갓길에는 주차할 공간을 찾기 어려울 만큼 차가 많았다고 기억하는데 오늘은 그저 대여섯 대의 차만 주차되어 있었다. 
산행 입구의 간이 등산로 표지판에 웨스트 윈드 패스(West Wind Pass 이하 그냥 패스)까지 2.2km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1시간이면 패스에 도착하겠다 싶었다. 
할아버지, 엄마 아빠, 딸과 아들의 아름다운 가족 팀을 지나치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인도나 중동쪽 젊은이 네 명의 그룹을 지나쳐 예상대로 1시간 만에 패스에 도착했다. 패스는 분지마냥 널널했다. 패스의 반대편 끝까지 걸어가 아침에 타고 온 1번 하이웨이도 보고 림월과 윈드타워의 반대편 모습도 사진에 담았다. 높지는 않아도 전망이 좋은 편이었다. 

간식을 먹고 다시 출발하는데 이제 막 패스에 올라온 중동쪽 젊은 친구 팀이 나를 소리쳐 불러 세우더니 정상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는다. 참 놔~ 나도 처음인데 내가 어찌 안다요? 대답을 안 할 수도, 모르겠다고 딱 자르기도 그래 대략 3시간쯤 걸릴 거라고 소리쳐 대답해 주고 내 길을 재촉했다. 

패스에서 윈드 타워를 올라 가려면 이름 그대로인 타워를 바로 직등할 수 없어서 산 허리를 따라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경험상 이런 detour 길이 지루했던 기억이 많아서 내심 걱정 아닌 걱정이 됐었다. 그런데 막상 길에 들어서고 나니 대체로 바윗길이고 렛지라 부르는 바위 밴드를 10개도 넘게 넘어야 해서 전혀 지루한 줄 모르고 오히려 바위 타는 재미가 있었다. 40분쯤 걸어 넓은 능선(?)의 시작점에 도착했다. 한눈에 전체가 다 조망되는 시원하게 펼쳐진 능선은 찬바람이 거침없이 불어 닥치는 스크리 지역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마의 스크리를 오르기 전에 아주 작고 빼빼 마른나무 뒤에서 바람을 피해 윈드재킷을 입고 에너지도 보충하고 전열을 재정비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경사가 급하지 않은데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그런지 잘 다져져서 생각보다 미끄럽지도 않고 걷기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모처럼 산행에 적응이 되었는지 호흡도 가쁘지 않아서 제법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갔다. 중간에 머리를 드니 정상 쪽에서 불쑥 사람이 하나 나타나더니 빠른 속도로 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전체 능선 길의 삼분의 이쯤 올라간 지점에서 서로 마주쳤는데 내려오는 사람이 멈추지 않고 계속 내려오고 있었고 나도 모처럼 탄력을 받아 치고 올라가는 중이라 마치 말다툼한 연인들 처럼 인사도 없이 쌩~ 지나치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지나치며 흘끗 보니 내 연인은 아니어도 여자는 여자였다. 제법 나이가 들어뵈는... ㅋ

정상은 밋밋하게 올라 갔지만 타워답게 끝은 좁고 날카로운 낭떠러지로 둘러 있었다. 이름 그대로 또 들은 소문대로 바람은 차갑고 강했다. 누군가 돌로 바람막이 쉘터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 안엔 아직도 눈이 그대로 쌓여 있어서 제 구실을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 좁은 공간에 자리를 만들고 점심으로 싸간 치킨 샐러드 샌드위치도 먹고 정상 레지스터에 일필휘지도 남겼다. 레지스터 노트엔 2021년 7월 10일 자 메모로 시작이 되었는데 작년 겨울 직전에 윤철이가 왔었다는 기억이 나서 윤철이의 기록을 찾으니 없었다. 그 친구가 원래 이런 기록을 남기지 않는 건지 눈과 바람 때문에 고생했다더니 그때 이 레지스터 통이 눈 속에 묻혀 있어서 통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다음에 Gym에서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ㅋ..
정상까지 약 950여 미터를 3시간 10분 만에 올라왔다. 생각보다 굉장히 짧은 산행이다. 바로 이웃한 마운트 로히드(Mount Lougheed) 픽 1(Peak 1)의 위용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이 픽 1은 로히드 산 4개의 봉우리 중 가장 어려운 스크램블 산행이라고 한다. 오히려 로히드 산 최고봉인 픽 2가 더 쉽다고 해서 언제 한번 도전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하산 길은 자갈 스키를 탈 만큼 경사가 급하지 않았지만 날 듯이 뛰기에는 적당해서 올라올 때 지나친 여자만큼이나 빠르게 내려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올라올 때 그 여자를 마주친 지점쯤에서 이 추운 바람 속에도 반바지를 입고 혼자 올라오는 젊은 동양 아이(필리피노?)를 지나쳤는데 이번엔 그 친구가 능선 왼쪽 엣지를 따라 올라오는 바람에 거리가 멀어서 그냥 "춥지 않아?" "난 괜찮아" 정도의 인사만 소리쳐 묻고 지나쳤다. 

웨스트 윈드 패스에는 각자 개 한마리씩을 끌고 올라온 예닐곱의 일행 등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내려가고 있었다. 총 산행시간 5시간 25분. 기름값이 비싼데 비하면 본전도 못 뽑은 산행이었다. 그나저나 기름값이 또 올랐다. OMG!!

 

 

산행날 아침 1번 하이웨이에서 찍은 Windtower
지금부터 록키의 산이 보는 위치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기 위해 피존 마운틴 산행때 찍은 사진 몇장을 빌려 오기로 한다. 맨 오른쪽이 윈드타워, 그 왼쪽이 Mount Lougheed 제 1봉. 아직까지는 위 사진과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한 가운데 있는 산이 윈드타워인데 위에 사진과 같은 산이라고 알아보시겠습니까? 오른쪽은 림월.
위에 사진을 좀 더 광각으로 찍은 사진. 왼쪽이 로히드 픽 1.
Windtower/Rimwall 출발 지점. 그 뒤 가운데 산이 윈드타워.
출발~~~
윈드타워의 뒷모습
West Wind Pass
패스에서 본 윈드타워
패스에서 본 림월
올라온 방향. 스프레이 레이크와 그 뒤 구름에 가린 봉우리는 Mt.Nestor. 올해 안에 갈 산이다.
올라갈 방향. 오른쪽 트레일을 따라 능선 끝까지 돌아 간다.
이런 렛지를 10번 넘게 넘어야 된다.
연이은 작은 렛지들
좀 큰 렛지.
마침내 능선 시작점
저 앞에 작고 빈약한 나무 뒤에서 두번째이자 마지막 휴식을 취했다.
드디어 능선 너머 로히드 픽 1이 보이기 시작.
작년에 올랐던 림월 루트
정상을 향한 마지막 피치

 

림월과 그 뒤의 쓰리 씨스터즈
캔모어와 1번 하이웨이
마운틴 로히드 피크 1
올라온 방향

 

Made it in a gale-force wind! And first group to write in this book! 이렇게 쓰여진거 같습니다. 그 뒤는 이름이고요. 해석은 각자가 알아서 ㅋㅋㅋ
정상

 

까만 점 같은 사람이 보이세요? 사람을 찍을 때 대놓고 찍을 수 없으니까 이렇게 멀리서 찍을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