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Boundary Ridge (2016년 5월 8일)

진승할배 2016. 5. 8. 12:10

 파출소를 피하려다 경찰서를 만난 꼴입니다. 토요일 산행을 계획했다 비가 온다는 이유로 하루를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와 있었습니다. 4월 말에 말입니다. 그래도 비나 눈이 더 내리진 않는 다는데 만족 해야 했습니다.

사실 산사나이에게 비는 그닥 문제 될 것도 없습니다. 비 하니까 생각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이었습니다. 지리산 어느 능선이었던가 설악산 서북주능이었던가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비가 주룩주룩 새는 작은 텐트에 10명도 넘는 불쌍한 산사람들이 빙 둘러 앉았던 기억이 납니다. 거기에는 숙녀분도 계셨구 신사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 새는 비좁은 텐트에서 판쵸를 뒤집어 쓰고 부득불 젖은 속옷을 갈아 입어야겠다는 사람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분이 지금 모 대학 교수님이시라는군요. 말이 됩니까? 아마도 그렇게 창의적이어야 대학교수가 되는 모양입니다. ㅎㅎ

아뭏든 우리는 거기서 판쵸우의로 텐트 지붕을 뚫고 들어 온 비를 받아 그 거무죽죽한 물로 차를 끓여 마셨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렇게 앉아서 날 밤을 샜습니다. 그때가 정말 그립습니다.


어제는 Boundary Ridge를 갔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해서 Boundary Ridge가 목적지인 산행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릿지 산행은 아니었구 릿지로 올라가기 위해 Porcupine Creek 북동지류를 타고 오르는 계곡 산행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허벌나게, 아주 직싸게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Boundary Ridge는 어제 처음 간 곳이지만 그나마 전에 이웃한 Porcupine Ridge를 산행한 적이 있어서 그쪽 지형은 조금 알고 있었고 내가 산행 때 참고로 하는 Kananaskis Trail 책자나 내게 많은 도움을 주는 Bob Spiro의 웹싸이트에도 전혀 어렵지 않은 산행지로 나와있는데 왜 나는 그렇게 죽을 고생을 했어야 했는지 아무래도 이해가 안갑니다. 최고 지점의 높이도 겨우 2200m 대면 정말 록키에서는 애송이 산에 불과하거든요.


어제는 비 보다는 구름과 안개가 문제였습니다. Boundary Ridge는 록키 국립공원 official 코스는아닙니다. Unofficial 코스란 이정표도 없는, 국립공원 당국에서는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지가 알아서 잘 찾아 가야되는 루트입니다. 산행 전날 얻은 정보로는 좌2우1만 잘 지키면 되겠더라구요. 좌2우1이란 Porcupine 계곡을 따라가다 지류를 만나면 좌측으로 두번, 우측으로 한번만 따라가면 별로 길을 잃을 염려가 없거라는 저만의 공식이었습니다.

물론 그 공식을 따랐지요. 좌측 두번까지는 좋았습니다. 책자에 나온대로 Red Fox Canyon도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좌우로 깍아지른 듯한 절벽 틈새로 난 계곡, 마치 설악산 가야동계곡 쯤 들어와 있다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마지막 우1이 문제였습니다. 우측으로 빠지는 곳이 없었던게 아닙니다. 도저히 올라 갈 수 없었던게 문제였습니다. 책자에는 전혀 가파른(steep) 곳이나 무서운(horror)데가 없다고 했지만 거의 직벽에 가까워 올라 갈 수 조차 없었습니다. 공포 그 자체 였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내가 확실하게 두번째 좌측이라고 믿었던 지류가 잘 못 되었거나 두번째 좌측 지류 후 좌측으로 한번 더 꺽어진 후 우측으로 꺽였으면 지형상 말이 될거 같단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뭏든 우리는(참! 이번에도 산행 파트너는 수지여사 임다) 경사도가 50도는 실히 될 수직고도 200m가 넘는 scree 길을 죽기 살기로 올라 선후에야 Boundary Ridge에 올라설 수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릿지에 올라 선 후 더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습니다.

릿지에 올라 섰을 때가 1시 20분. 정확히 4시간 산행을 한 셈입니다. 나쁘지 않지요. 바로 돌아내려 온다면 약 7시간 산행이었던 셈입니다. 릿지는 비록 구름과 안개로 시야가 꽉 막혀 있었지만 비도 안오고 바람도 없었습니다. 덕분에 능선에서 느긋하게, 맛있는 점심도 먹었습니다. 내가 올라온 길은 틀림없이 잘못된 길이었습니다. 다음을 위해서라도 바른 길을 찾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릿지가 생각 보다 날카로웠습니다. 말 그대로 칼날 능선. 좌우로 깍아지른 낭떨어지입니다. 또 능선 상의 봉우리들도 높낮이 차이가 많아 능선길이라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분명히 어딘가 작은 지류 능선이 있을텐데 어디에도 탈출구가 안보입니다. 안개와 구름속을 신선인양 왔다 갔다 두시간도 넘게 헤맸습니다. 수지 여사가 초조해 하기 시작하고 슬슬 발작 일보 직전입니다. 알고 보면 그 여자도 대장 잘 못 만나 매번 사서 고생입니다. 결국 4시 반이 되서야 제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안그러면 조난되서 죽기전에 먼저 맞아 죽게 생겼더라구요. 천우신조로 올라 온길 간신히 찾아 이렇게 살아는 돌아 왔습니다만 올라 갈때 죽을 고생한길을 다시 내려 온다는게 얼마나 죽을 맛이었겠습니까. 게다가 능선에서 너무 힘을 소진해 지칠대로 지쳤으니까요. 스크리 지역을 거꾸로 내려 올때는 자갈 스키를 타는 재미도 아주 조금 있었지만 굵은 돌들이 있는 곳은 한번 잘 못 디디면 "낙썩~~" "마캉 수구리~~" "아버지 아니 수지여사 돌 굴러 와유~~" 입니다. 거기서 한번 미끄러지면 바위와 함께 브레이크 없는 썰매를 타는 꼴 일겁니다. 

어떻게 이 곳을 올라 갔는지. 날이 어두워 지면서는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따라다니는 산 친구들의 눈초리에 쫓기듯 지친 발걸음을 재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산 완료 시간 오후 8시 반. 총 11시간 10분을 산행한 셈입니다. 다행히 완전 어둡지는 않아서 안전하게 내려 올 수는 있었지만 무리한 산행으로 션치 않던 왼쪽 무릎이 탈이 나고 말았습니다.


산은 정말 모르겠습니다. 작은형을 따라 초등학교 4학년때 처음 산에 다니기 시작했으니 어언 50년 가까이  산에 다녔는데 아직도 산에만 가면 헤메는거 보면 머리가 돌인게 틀림없습니다. 산은 여자 보다 어렵습니다. 

산도 싫고 여자도 싫습니다. 이젠 모든 산에서 하산 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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