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헐... 공원이 폐쇄됐네요. (2020년 3월 30일)

진승할배 2020. 5. 7. 09:18

  철이 없다는 말은 계절을 모른다는 말이라고 한다.
내가 진짜 철이 없어 계절을 모르고 사는지(사실 나를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는 그런 소리를 자주 듣는다. 암튼) 아니면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건지 
도대체 인간이 규정한 자연에 대해 알다가도 모를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평소에 궁금했던 한가지는 온도. 섭씨 100도 C는 물이 끓는 온도다. 물론 그 안에 들어앉을 수는 없지만 100도 C 건식 사우나 도크 안에는 들어가 앉아 있을 수 있다.
섭씨 35도가 넘는 무더운 여름철에 자동차 에어컨 온도를 20도로 세팅하면 아주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그런데 영하 20도의 한겨울에 자동차 히터 온도를 20도로 맞추고 바람에 손을 대보면 아주 뜨겁지는 않아도 제법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 그 두 바람이 같은 온도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섭씨 0도 이하는 물이 어는 온도다. 내가 사는 지역 지난주 낮 기온이 줄곧 영하 5-6도였다. 그런데 요즘 햇살이 강해서인지 갓길에 쌓인 눈이 녹아서 길이 엉망진창이다.
햇볕이 뜨거워서 기온이 올라가 눈이 녹는 건 이해하겠는데 대기 온도는 하루 종일 영하 오륙도인데도 눈이 녹는다는 건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또 하나는 내가 신기루 현상을 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하면 에드먼튼에서 록키를 가려고 캘거리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Mountain View라는 지명이 나온다.
그러니까 그 지역부터 아주 멀리 록키마운틴이 보이기 시작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그 Mountain View 지역 가기 전부터 저 멀리 록키 쪽으로 산이 보이는듯 할 때가 있다. 그것이 진짜 산의 모습이 아니라면 신기루 현상이 아닐까 싶은 거다.
전에 산악회에서 여러명이같이 버스를 타고 올라올 때 그런 현상을 본 적이 있는데 버스에 탄 사람들끼리 갑론을박한 적이 있다.

 


구름이라고 하기에는 산 모양이 너무 정교해서 구름이라 그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산이 보일 지역도 아니고 매번 그지역을 지날 때마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신기루 현상을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면 '신기루란 대기 중에서 온도 차이가 나는 공기에 의해 빛이 굴절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오늘도 마침 그런 현상이 나타나서 몇번이나 내가 마운틴뷰를 지나쳤는지 다시 확인해야 했다.

 

마운틴뷰에서 보이는 록키의 모습. 구름 밑에 하얗게 보이는게 록키 산맥이다. 여기에서도 저렇게 작게 보이는데 록키에서 더 먼 곳에서 본 저 위의 사진이 진짜 록키의 모습인지 의아스럽다.

그런 상념에 빠져서 캘거리에서 No. 1 하이웨이로 들어서니 저 멀리 진짜 록키가 보인다. 눈 덮인 록키는 언제 봐도 매혹적이다. 


그런데 오늘 모처럼 일요일 산행에 나선 길인데 록키로 가는 하이웨이 1번이 아주 한가한 편이다.
그 이유를 카나나스키스로 향하는 40번 하이웨이에 들어서서야 알았다. 카나나스키스 빌리지 입구를 지나자마자 길을 가로막고 있는 공원 패트롤과 마주 섰다. 

 


입산금지란다. 뿐만 아니라 공원내 공중화장실을 포함한 모든 시설물과 Dayuse 주차장도 모두 문을 닫았다고 한다. 헐~~
아침 10시 30분인데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자니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갑자기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라 얼른 지갑을 열어보니 아침에 따로 챙기지 못했는데도 
현찰 50불이 들어있었다. 차를 돌려 아주 가까이 있는 카지노로 향했다. 전에 초등 친구들 왔을 때 랍스터 뷔페를 먹은 곳이다.
50불을 투자해서 돈을 따면 그 돈으로 맛있는 점심을 사먹고 잃으면 그만큼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얼라? 카지노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텅 비었다. 그제야 에드먼튼의 카지노들도 문을 닫았는데 여기라고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망할 놈의 코로나 바이러스... 묘책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근처에 팀호튼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수련장 같은 곳이 있는데 그 수련원 뒷산이 Horton Hill이라고 가이드북 1번 코스에 소개되어 있던 게 생각이 났다. 사설 시설물은 문을 열지 않았을까 싶어 차를 돌려 팀호튼 수련원으로 향하는데 가는 길에 
Lusk Creek Trail Dayuse 주차장이 다른 곳과 달리 바리케이드로 막아 놓지도 않고 차도 두대가 주차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한켠에 이용금지라는 아주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긴 한데 입구가 열려 있으니 반쯤은 사용 허락이 난 거라 생각이 들었다. 겨우 헛걸음은 면한 셈이다.
Lusk Creek Trail은 Baldy Pass North와 연결되는 곳이고 전에도 이맘때쯤이었는지 혼자와서 눈길을 걷는 동영상을 찍어 초딩 밴드에 올린 적이 있는데 
김봉규라는 놈이 팔자걸음을 걷는다고 시비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난 팔자걸음 안걷는데 말이다. ㅋ..

 

Baldy Pass까지 갈 시간은 안될거 같아서 볼디 패스 트레일로 시작해서 중간에 러스크 크릭 트레일로 돌아오는 6km 정도 거리에 고도차 대략 80m 구간을 2시간 반 만에 땀이 바짝 나게 걸었다.


오늘은 올해 마지막 겨울 산행을 눈이 아주 많은 곳을 찾아서 스노우 슈 산행을 하려고 카나나스키스 레이크 안쪽까지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계획이 틀어져 버리고 말았다.


여기까지 쓰고 뭘 더 쓸 말이 없을까 다시 읽어보니 진짜 산행후기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하지만 불현듯 
어떤 높은 양반이 일갈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나랏 말싸미 미쿡과 달아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에쎄이는 따로 적당한 말싸미 없으므로 논문이라고 칭한다."
아하! 그렇담 나도 여직 논문을 쓰고 있었던 셈이다. 더구나 앞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치밀한 과학적인 문제 제기를 하였으니 이 에쎄이는 아주 훌륭한 논문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평생 한번 열심히 공부 해본적도 없는데 논문의 제 1 저자라니. ㅋㅋㅋ
그나저나 오늘 혼자서 산행을 하고 혼자서 이 후기를 쓰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되었든 같이 
산행한 사람이 있었다면 
분명 나한테 누구는 실험실 비이커 설거지 했다고 논문 제일 저자가 되는 마당에 자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산행을 같이 했으니 이 논문(?)의 제일 저자가 되는 게
당연하다고 바득바득 우겼을테니 말이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