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Ha Ling Peak... 2012. 04. 03

진승할배 2013. 12. 19. 12:28

새벽에 퇴근하면서 밤하늘을 올려다 보니
서쪽 하늘 중천에 반달이 떠 있었다.
지 지난주 산행하는 날 동쪽 하늘에 하현달을 보았는데
2주만에 달은 딱 반달로 바뀌었다. 그렇게 바뀌는가?
그러고 보면 이 나이가 되도록 달이 어떻게 차고 기우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셈이다.
그사이 날이 많이 따뜻해졌다.

 

산으로 가는 길에 차안에서 잠깐 잠이 들었나 보다.
깨어나니 차는 벌써 캔모어 시내로 들어서고 있다.
운전을 하는 황대장이 시내 뒤로 보이는 험악하게 생긴 바위산을 가리키며
오늘 우리가 올라 갈 산이라고 한다. 하링 피크(Ha Ling Peak).
'에이... 어떻게 우리가 저런 산을...'
자다 일어난 나를 놀리려고 농담하는 줄 알았다.
진짜란다. 마음 속으로 '어이쿠.. 오늘 죽었다.'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잠결에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산의 위용을 카메라에 담는 것 조차 잊어버렸다.

 

황대장이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 산행을 시작하겠다는 말에
시계를 보니 정각 10시 30분이다.
체조하고 회장님 인사말 듣고 10시 40분에 산행을 시작한다.
새벽 6시에 에드먼튼에서 출발해서 맥도널드에서 아침 잘 먹고
이 시간에 등산을 시작 할 수 있다면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다.
그래도 조금 더 시간을 절약해서 산에서 노는(?) 시간을 좀 더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산에 올라 붙자 마자 이길 전회장님이 안오시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급경사다. 역시 어프로치가 짧은 산은 각오해야하는 산행이다.
급한 경사면을 왼쪽으로 올라 붙다 보니 어쩐지 한계령에서 대청으로 오르던 산길이 생각난다.
30대 초였던가 관광버스로 등산을 다니는 산악회를 운영하는 친구를 따라 무박 2일로 가 본 길이다.
처음 친구한테서 같이 산행을 해보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관광버스? 참 팔자 좋은 사람들이네...' 게다가 회원 대부분이 사,오십대라고 한다.
가볍게 놀다오면 되리라 생각하고 역시 가볍게 승낙한게 문제였다.
더구나 잠은 버스에서 잠깐 자면 될거라 생각하고
그 전날 아니 버스가 떠나기 두어시간 전인 새벽까지 술타령을 했으니...
술도 덜 깬채 그 뜨거운 여름날 한계령에서 서북주능으로 올라타는 급경사길에서
온갖 개망신을 당하고 만다.
게다가 관광버스 산악회라는 것이 그날 그날 모이는 사람이 다른 터라
버스에 타면 인사부터 나누는데 친구녀석이 나를 아주 산을 잘 타는 전문 산악인(?)으로
소개까지 했던 터가 아닌가.
친구에게서 후미를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무전기를 건네 받고
구룹의 후미에 여유있게 따라 붙는다.
그런데 헐~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무신 놈에 노땅(그 당시 내가 보기에)들이 그렇게 잘 걷는데요. 아예 날아다니는 수준이다.
그 급경사 길.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어제 마신 아니 몇 시간 전까지 마신 술이
이제야 올라오는지 머리는 빙빙 돌고 하늘은 노랗고 속은 메스껍고 드디어 생 오바이트를 하고
퍼질러지고 말았다. 후미에서 같이 걸으며, 내 눈치를 살피며 걱정을 하던 노인네(?)들이
드디어 내가 퍼지고 마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제는 막 대놓고 깔보는 눈초리를 보낸다.
급기야는 퍼져있는 내게서 무전기를 빼앗아(?) 들고는 선두의
대장 친구에게 나의 상태를 설명하고 도저히 이 친구는 포기해야겠다는 보고를 한다.
후미에서 지켜줘야 할 전문 산악인(?)이 진짜 전문 산악인에게 도움을 받고 있으니
아~~ 그때의 쪽 팔림이란...

그렇게 무전기도 빼앗기고 무장해제 당한채 버려지고 말았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 난다.
(그때 그날 이후로 난 관광버스 타고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절대로 날라리가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 선두의 황대장을 보니 심상치가 않다.
오늘따라 자주 멈춘다. 멈춰서 잠깐 잠깐 쉬는 듯 하고 물도 벌써 한통을 비운 듯 하다.
아침에 만났을 때 입에서 술내가 진동을 하던데 ㅋㅋㅋ 지가 아무리 산대장이라 한들...
옛날의 내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실실 웃음이 비져나온다.
황대장이 늘 그렇게 체력(?)이 좋으면 온유엄마가 괜히 황대장을 구박하겠어? ㅎㅎㅎ

 

수목한계선을 벗어 날 즈음부터 눈의 깊이가 달라진다.
선두구룹이 럿셀은 해 놓았지만 다리는 자꾸 깊은 허당으로 빠지고 만다.
걷는다기 보다는 허리까지 빠지는 눈속에서 차라리 무릎으로 기고있다.
바로 내 뒤에서 열심히 따라오고 있던 이석주님을 돌아보니 그 큰 거인이
가슴까지 눈에 묻혀서 죽을 고생을 하는게 역력하다.
하기사 근수가 나보다는 훨씬 더 나갈테니 빠지는 깊이도 나보단 더하리라.
안쓰러운 생각이 들지만 어찌 도와 줄 방뻡이 읍다. 나도 죽을 맛이니까...

 

로키산에는 어김없이 있는 정상부근의 너덜 바위 지대.
바람이 심해지면서 눈이 날리어 눈의 깊이는 한층 얕아졌지만
여름에도 미끄러운 그 길이 눈과 섞이어 한 걸음 올리면 두 걸음 미끄러지며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죽음과의 사투'라 하면 너무 거창한가?
그래도 히말라야 거봉을 오르는 산악인들과 무엇이 다를게 있나 싶다.
힘들게 올라선 안부. 갑자기 날씨가 돌변하면서 강한 바람과 함께 눈발이 날린다.
왼쪽으로 100m 쯤 높이에 우리의 목적지인 하링피크 정상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이름 모를 산으로 오르는 능선길이다.
그 산 사이의 능선이 한쪽에서 몰아친 바람으로 아름다운 커니스(눈 처마)를 만들고 있는데
올라서면 저 천길 아래 낭떠러지로 무너져 내릴까봐 감히 가까이 갈 생각을 못한다.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으신 회장님과 산행 경험이 별로 없는 김찬영씨가
여기까지 올라온게 대단하다.
선두구룹(황대장, 유병수씨, 백형선씨, 김미옥씨)은 벌써 정상 부근에 다다른게 멀리 보이는데
두분에게는 여기가 한계인가 보다. 그 칼바람 속에서 무방비로 능선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그대로 찬 바람속에 앉아 계시면 하이포써미아(저 체온증) 증세가 올까 봐
정상을 안 올라가실거면 서둘러 하산을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이다.
내가 정상에 섰을 때는 선두구룹은 벌써 기념촬영을 끝내고 하산 준비를 하고 있다.
멀리서 보이던 표지판이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이 아니고 돌을 던지지 말라는 표지판이다.
허무하다. 누구 말대로 정상에 무엇이 있다고 이렇게 올라온단 말인가?
우리는 등정주의자인가 등로주의자인가?
정상에는 꼭 올라야만 하는가? 그러면 정상 바로 밑 능선까지 올라오신 회장님이나 김찬영씨는
혹은 그 밑에서 포기한 다른 회원들은 오늘 이 산에 못 올라갔다고 해야하는 걸까?
산에 가는 차안에서 김미옥씨가 남들이 산에는 왜 가느냐고 물으면 무어라고 대답하느냐고
물었던 질문과 겹치면서 많은 의문과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꼴찌라고 생각하면서 하산을 하는데 얼러리? 후미를 맡으셨던 이재기부대장이
처진 사람들을 단도리 해놓고 혼자서 지친 기색도 없이 정상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
그러면서 나보고 사진까지 찍어 달라고 한다.
손은 시려워 죽겠고 사진기 꺼내 들 힘 조차 없지만 어쩌겠는가?(나보다 높은 분이시다)
'저 양반.. 다른 사람 핑게대고 적당히 밑에서 개길것이지... 저 양반은 정상에는
꼭 올라가야 직성이 풀리는 얼어 죽을 등정주의자가 틀림 없겠군'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셔터를 누른다. ㅎ..

 

어떻게 내려왔는지는 묻지 마시라. 생각도 안나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자랑스럽게 살아 돌아왔을 뿐이다.
오늘은 차라리 수박이나 한 덩어리 있었으면 좋겠는데 또 삼겹살이란다.
이석주님이 지난번 삼겹살 맛에 뻑 갔었나 보다.
그래도 독한 물, 거품나는 물이 있어 난 또 그 폭탄에 뻑이 가고 만다.
그 이상한 물들 탓일까? 오늘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하게 한 황대장이 너무 이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