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피
남자가 말이 많으면 수염이 안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와 같이 일(운전)하는 구피(Goopy 본명은 Gurpreet Singh Gopy)만 봐도 알 수가 있다.
구피는 방해하지만 않으면 서너 시간은 너끈이 수다를 떨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수다꾼이다. 하지만 구피는 보통의 인도인들 처럼 수염은 물론 온몸이 털로 뒤덮힌 털복숭이다.
두꺼운 레자 커튼을 치고 침대에 누우면 모든 소리가 차단되어 엔진 소리 마저 작은 소리로 웅웅 거릴 뿐인데 그 소리에 섞여 스며드는 구피의 웅얼거리는 인도말을 자장가 삼아 잠이 들곤 한다. ㅋ
이왕에 구피 이야기가 나온 김에 구피를 소개해야겠다.
구피는 인도 북부 지방인 펀자브(Punjab)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펀자비인데 나이는 우리 영준이보다 2살 많은 38살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두바이로 가서 14년 동안이나 트럭 운전을 해서 트럭 운전에는 도사인 친구다.
하지만 나이와 경력에 비해서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수해서 나를 늘 피터썰(Peter Sir)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같은 동양이라 그런지 노인을 공경하는(물론 우리나라에는 더 이상 없지만) 자세를 배워온데다 언어에 우리 말과 같이 존댓말이 있는 자기 말의 습관대로 노인인 나를 그냥 이름으로 부를 수 없어서 뒤에 썰(Sir)을 붙인건데 내가 아무리 '내 이름은 피터지 피터썰이 아니라고 해도 자기한테는 피터썰'이라고 결코 호칭을 바꾸려 하지 않는게 문제다. ㅋㅋ
구피에겐 8살짜리 쌍둥이 딸과 부인이 인도 자기 고향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구피의 수다 대부분은 부인과의 수다이고 그 수다를 떨기 위해 밤낮이 정반대인 인도 시간에 맞추기 위해 자진해서 야간 운전을 자임하고 있다.
구피는 코로나 팬데믹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한사람이다. 두바이에서 일하면서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두바이 같은 중동 국가에서는 일은 할 수 있어도 이민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캐나다로 이민을 결심하고 캐나다로 들어오기 전에 잠깐 가족들을 만나러 인도에 들어 갔다가 코로나로 각국이 국경을 봉쇄하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인도에 1년 이상을 묶여 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 1년이 캐나다 기술 이민 조건인 캐나다 입국 전 최소 2년 이상 같은 직종에 연속 근무를 해야하는 조항에 부합하지 않아 14년을 베테랑 트럭 운전사로 일을 하고도 바로 정부 영주권을 신청할 자격을 갖지 못해 지금 새롭게 영주권 자격을 따느라 고생하고 있다.(지금은 work permit 만 받고 일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영주권을 따기 위해서는 영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는데 자기 나라 말 다음으로는 아랍어를 잘하는 구피에게 영어는 최대의 난관이다. 사실 그런 이유로 회사에서도 같은 인도 친구들과 일을 하면 영어를 배울 기회가 없을테니 구피를 나와 팀을 만들어 영어를 배울 기회를 준 걸텐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구피가 워낙에 자기말로 수다를 많이 떨다 보니 정작 나하고는 말할 기회가 없는게 문제다. 얼마전에 시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인데 가족을 빨리 캐나다로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큰 구피는 합격의 소식을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다. 똑 같은 조건으로 중국인 이민자를 종업원으로 고용하는 영준이에게 물어보니 말도 안되게 영어를 한심하게 하는 중국인들도 합격하는 걸 보면 말이 테스트지 웬만하면 다 합격시켜 주는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주라고 한다.
영어 테스트를 합격해야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고 그걸 근거로 사랑하는 가족들의 비자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된다 해도 아직 가족을 만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어서 빨리 시간이 지나가 구피가 가족을 만나 활짝 웃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그런 이유로(구피의 영어 시험) 지난 트립은 처음으로 혼자 운전해서 미국에 갔었다. 목적지가 펜실베니아였는데 지도를 찾아보니 어머니가 사시는 곳에서 아주 가까운 고속도로를 경유해서 갈 수 있기에 법이 허용하는 최소한 만큼만 쉬고 내리 달려 온전히 하루를 비우고 어머니 집과 가장 가까운 트럭 스톱에 트럭을 파킹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누님이 엄마를 모시고 나를 데리러 와서 누님 차를 타고 엄마 동네로 가서 매형과 식사를 같이하고 엄마 집으로 가서 하루종일 놀다가 저녁 늦게 누님이 다시 데려다 줘서 하루를 엄마와 지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마침 36시간 Refresh 의무 휴식 시간을 잘 조절해서 아들과 손자들을 만나 이틀을 같이 보내고 돌아왔다.
트럭 일을 시작할 때 잘하면 엄마도 뵙고 아이들도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했는데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온 셈이다.
직업을 바꾼 보람(?)이 생겼으니 그걸로도 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