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Mount Tyrwhitt (2022년 8월 28일)

진승할배 2022. 9. 4. 03:44

다른 차 지붕을 보면서 운전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역시 기술이란 시간이 갈수록 숙달되게 마련이라 한 달새 많이 익숙해졌다. 그동안 종이의 원료인 앨버타 펄프를 싣고 미국 메인주의 북쪽 끝에 있는 종이 공장에 배달하고, 돌아오는 길에 퀘벡주의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회용 식기를 싣고 캘거리로 돌아온 적도 있었고, 식료품을 싣고 알래스카 근처의 화이트호스라는 도시에 배달을 하고 온 적도 있었다. 난생처음 13시간 스트레이트 운전도 해보고 역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워낙에 운전하는 걸 좋아해서 인지 재미는 아주 좋은 편이다. 다만 트럭 운전은 느림의 미학이 있는 일이라  성질 급한 내가 때늦게 느림의 미학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그 바람에 올해 계획한 산행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산행할 시간이 없다기 보다 장거리 운전을 끝내고 와서 다시 장거리 운전을 하고 산행을 나서는 게 엄두가 안 나서 산행을 못했다. 그런데 마침 현성 형님이 카톡으로 산 사진이 보고 싶다는 말씀에 다시 기운을 내서 산에 다녀왔다.
산에 집중할 시간이 없어서 루트 공부를 안해도 되는 산 3개를 머리에 떠올리며 무작정 산으로 출발했다.
거스티 픽은 지난 마지막 산행 때 시도했다가 입산 금지가 되어 못 올라갔었는데 혹시나 올해 전체 입산 금지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제일 먼저 제쳐두기로 하고 한번 갔다가 정상에 못 간 마운틴 키드와 한 번도 안 가봤지만 그리즐리 픽을 가면서 봐 둔 마운트 티어위트(Tyrwhitt : 어떤 사람은 타이어위트라고도 발음하는데 어느 것이 정확한지 모르니까 쓰기 편한 티어위트라고 표기하기로 한다.) 중에서 어느 산을 갈까 고민하면서 록키로 향했다. 먼저 마운틴 키드를 지날 때 아침 8시 40분이었다. 오늘 시간도 이르고 시즌으로도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마운트 티어위트는 10월 초면 하이우드 패스(캐나다에서 차로 넘을 수 있는 최고 높이의 고개) 쪽 40번 하이웨이가 폐쇄되니까 오늘은 우선 티어위트 마운틴을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하이우드 패스로 향했다.

오늘 등산복은 어제 일 할 때의 작업복과 똑 같다. 티셔츠만 긴소매를 입었다. 정확히는 등산복이 작업복이 아니라 작업복이 등산복이었던 셈이다. 처음 이 직업으로 일을 나갈 때 무슨 복장이 좋을지 고민하다 그냥 편한 복장이면 될 거 같아 평소에 입는 등산복을 입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등산복이라야 특별한 브랜드의 등산복은 아니고 바지는 코스트코에서 20불쯤 주고 구입한 주머니가 많이 달린 싸구려 레저용 바지인데 이 바지가 어찌나 편한지 한국산 유명 브랜드 바지보다 훨씬 편안해서 여름엔 주로 등산복으로 입는다.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초등 친구에게서 한국 유명 브랜드의 등산복 바지를 선물 받았는데 이 바지가 다리통은 좁고 밑은 길어서 자꾸 흘러내려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은 브랜드를 너무 좋아해서 고집스럽게 유명 브랜드만 찾아 입는 마니아들도 있지만 난 아무래도 브랜드 제품을 사용할 그릇은 아닌 모양인지 그냥 편한 게 최고다.

아침에 하이우드 패스 주차장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산행을 끝내고 내려왔을 때는 주차장이 꽉차 갓길에 까지 차들로 넘쳐났다. 캐나다 최고 높이의 고개인 만큼 우리나라의 대관령이나 한계령 같이 인기가 많은 곳이다.
그리즐리 꼴에서 올려다 보이는 티어위트는 압도적이다. 몇 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사람이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코스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고도감도 운전 기술하고 비슷한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가령 고층 아파트로 처음 이사 간 주부가 처음에는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게 무섭다고 베란다 출입을 꺼리다가 빨래도 널고 화분도 돌보느라 베란다를 드나들며 힐끗힐끗 내려다보면서 적응이 되어 나중엔 베란다 창문에 몸을 반쯤 내밀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밥 먹으라고 부르는 이치와 같다.
그리즐리 꼴에 도착했을 때 내 앞으로 네다섯명이 티어위트를 오르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왜 위험하게 오른쪽 엣지를 따라 올라갈까 생각하며 나는 가급적 왼쪽으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올라 붙고 나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오른쪽으로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게 코스였다. 그 외의 길(?)은 지독한 스크리라 아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올라가다 어느 순간 우연히 밑을 내려다보게 되었는데 바로 등골을 따라 차가운 전류가 찌릿하고 흐른다
진짜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여지없는 황천길이다. 코스는 대체로 스크리 지역이거나 짧지만 아주 경사가 급한 슬랩 또는 바윗길인데 바윗길은 홀드는 많지만 푸석 바위처럼 안정적이지 않아 홀드로 잡은 돌이 빠져나와서 주의를 해야 했다.
대략 250m 쯤 높이의 홀드가 많은 바위 페이스 등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고도감은 덤이다.
바위로 아치 모양으로 만들어진 창문(Rock arch window) 바로 아래에서 먼저 올라가던 여자를 추월하고 창문 밑에서 기다렸다가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정상은 밑에서 보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좁았다. 정상에 올라섰을 때 두 명은 어려운 릿지를 타고 포카테라 산 쪽으로 릿지 산행을 이어 갔고 혼자 온 남자 한 사람은 하산을 시작했다. 나도 얼른 두 사람을 따라 포카테라 산으로 릿지 산행을 하고 싶었지만 오늘 저녁 에드먼튼에서 식사 약속이 있는 걸 생각하고 포기했다.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여자가 따라 올라왔고 레지스터 수첩에 이름을 적고 동행인듯 자연스럽게 수첩을 건네주었다.
이 산 정상은 브리티시 콜롬비아주와 알버타 주의 경계이다. 엘크(Elk) 레인지를 따라 올라온 주 경계가 아까 두 사람이 내려간 릿지가 아닌 이 정상에서 저 아래 어디쯤 평야로 급전 직하해서 내려간다. 전에 엘크 레이크를 거쳐 폭스(Fox) 마운틴의 프로즌(Frozen) 레이크를 갔을 때 릿지가 아닌 평야에 있었던 주경계가 기억난다.
저 어디쯤... 하니 생각나는 게 있다.
지난 주 토요일 gym에 갔을 때의 일이다. 운동을 끝내고 탈의실에 들어갔을 때 내 옷장 근처에서 어떤 두 노신사가 사이를 두고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요일 뭔가 하자고 제안을 했던 모양이다. 난 여기서부터 말을 들었다. "근데 말이지 사실은 내일 우리 골프 클럽에서 멤버들 토너먼트가 있어서 좀 곤란할 거 같아." 그 말을 들은 다른 친구가 " Wow~ you're rich!" 그랬더니 그 친구가 대답했다. "Not rich~ But somewhere in the middle."
우리나라도 그럴 거 같다. "와! 너 부자구나" 그러면 "부자는~ 대충 그렇게 사는거지." 이 나라나 저 나라나 부를 얘기할 때 겸손하게 표현하는 건 똑같다.
누가 나한테 "너 부자구나" 라고 물을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누가 나한테 "너 가난하구나." 그렇게 묻는다면 난 겸손하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Not poor, but somewhere in the middle." ㅋㅋㅋ
드디어 인생의 막바지에 그래도 연봉 1억(10만 불) 직업군에 발을 담갔다. 물론 지금 당장 그 돈을 다 받는 건 아닐지라도 아무튼. 그럼 내가 이제 부자가 될 수 있을까?....................... I don't think so. ㅋㅋㅋ

그리즐리 픽 능선에서 찍은 사진. 여기서 보면 정상이 평평하고 넓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는 좁았다.
Alan Kane의 Scrambles in the Canadian Rockies에서 복사해 왔다. 저 루트로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사진에 G는 Grizzly Col이고 A는 윈도우가 있는 곳이다.
그리즐리 꼴로 올라가면서 찍은 티어위트.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윈도우가 선명하게 보인다.
Ptarmigan. 바로 내 발 앞에 있었는데 도망가지도 않는다.
출발~ 머리 위로 4명의 선등자가 보인다.
그리즐리 꼴의 높이. 산행 시작 지점인 하이우드 패스 주차장은 약 2200m 쯤 된다.
올라온 길. 왼쪽에 그리즐리 꼴로 올라오는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Rock Arch Window
윈도우를 통해서 본 Pocaterra. 원래 계획은 하루 야영을 들어와서 하루는 티어위트를 하고 다음날 포카테라를 할 예정이었다. 올해안에 실현 가능성이 없어서 티어위트 부터 올랐다.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여자를 기다리느라 5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ㅋ
정상. 뒤로 보이는 호수는 유명한 Upper Kananaskis Lake(왼쪽)와 Lower Kananaskis Lake.
티어위트 정상에서 포카테라로 이어지는 능선. Alan Kane의 등급에 의하면 티어위트와 포카테라 산 자체 산행은 Moderate인데 이 릿지 등반은 Difficult이다.
Kananaskis Lake
검은 빛깔의 그리즐리 릿지와 그 뒤 초록색의 하이우드 릿지. 그 너머 멀리 중앙에 있는 산은 Storm Mt.(Difficult)
Mount Rae(Moderate) 올해 안에 가려고 계획했던 산. 티어위트랑 출발지점이 같다.
Elk Range. 이 산맥이 주 경계다. 오른쪽이 BC주 왼쪽이 Alberta. 산맥 제일 끝 산이 Mount Storelk(Difficult)
Upper Elk Lake(오른쪽)와 Lower Elk Lake. Upper Elk Lake 오른쪽 산이 Mt. Fox. Elk Range를 따라 온 주 경계가 티어위트 정상에서 90도로 꺽여 눈 앞에 평야를 가로질러 폭스 마운틴 정상으로 이어진다. 폭스 마운틴까지 가상의 선 왼쪽이 BC 주, 오른쪽이 Alberta 주.

앞에 나즈막히 엎드린 그리즐리 릿지와 그 뒤의 하이우드 릿지. 그 사이가 Paradise Valley인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 그대로 Paradise이다. 저 멀리 능선 왼쪽 봉우리는 Storm Mt. 과 중앙 오른쪽 봉우리는 Mist Mt.(Moderate ; 내가 3000m 이상 높이의 산을 오른 첫번째 산이다.)
2845-2580=265m(꼴에서 부터 높이) 오늘 전체 산행 높이는 대략 650m. 산행 시간 5시간 30분의 짧은 산행이다.

포카테라 마운틴. 왼쪽 경사면 어딘가에 릿지로 올라서는 길이 있을텐데... 어느 산이나 그렇다.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이 보이지만 어딘가에 하느님이 만들어 놓으신 꼭 한군데의 비밀 통로가 있다. 그 길을 찾아야 한다. 저 정도가 Moderate이다.
돌아오는 길에 하이웨이에서 찍은 사진. 중앙이 티어위트, 왼쪽이 그리즐리 픽(비공식 명칭), 오른쪽이 포카테라 마운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