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을 바꾸다.
직업을 바꿨다. 아니, 운전이라는 업종은 같으니 직업이 바뀐건 아니고 일하는 장소가 달라졌으니 직장이 바뀌었다고 하는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하는 일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난다.
지금까지 잘 해오던 택시 일을 버리고 새로운 일을 하기로 결정한 건 아주 우연이었고 조금은 즉흥적(그 중요한 먹고 사는 일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는)이었다.
어느날 운수 회사에서 배차계로 일한다는 젊은 친구를 택시 손님으로 태웠는데 얘기 중에 나도 대형 면허가 있다는걸 말하게 되었다. 그 친구 말이 요즘은 어느 운수회사나 Class 1 자격증만 있으면 개나 소나 다 고용이 되는데 왜 이런 택시 운전이나(?) 하냐고 한다. 속으로는 '왜 택시 운전이 어때서?' 하는 불끈한 성미가 올라 왔지만 도체 무슨 이야기나 하는지 들어나 보자하고 있었더니 자기 회사는 주로 미국으로의 운송을 하는데 장거리 트럭 기사를 구하기 어려워 1년 사시사철 트럭 기사를 모집중이니 한번 도전해 보라면서 전화번호를 주었다. 그 친구 말을 듣고 10년 전에 대형 면허(Class 1. 일반 승용차 운전면허는 Class 5)를 따고 아주 잠깐 경험해 본 츄레라(우리 나이에는 이 말이 더 친숙한 분이 있을듯 ㅋ)를 다시 운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할 수만 있다면 개나 소가 되어 미국 구경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구나 집 나가 싸돌아 다니기 좋아하는 건 내 주특기가 아닌가 말이다. 그 즉시 그 친구 회사에 전화를 한게 이직의 발단이 되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 친구의 회사는 내가 트럭 운전 경험이 너무 부족해서 개나 소도 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려주었다. 하지만 그걸 계기로 오기가 생겨 알아보기 시작하니 정말 조금 과장하면 도로 위를 달리는 모든 트럭 회사에서 기사를 구한다고 할 정도였다. 그때부터 Job 싸이트를 뒤지기 시작하고 무조건 이름이 알려진 회사부터 어플라이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때는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막연히 옛날에 트럭 운전을 조금은 해봤고 운전만 40년 넘게 했는데(1978년 면허 ㅋ) 그까짓 운전이야 못하겠냐는 배짱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고 지금의 직장을 잡는데까지 정말 우여 곡절이 많았다. 대부분의 트럭 회사가 2년 이상의 경험을 요구하는데 나 같이 트레일러 경험 몇개월에다 5톤 트럭 운전까지 합쳐도 2년이 안되는 사람을 불러 주는 회사는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내 생각과는 달리 어찌 연락이 와서 요구한 운전면허 카피를 보내고 5년짜리 Commercial Driver Abstract(운전 과실 증명서?)를 보내면 별 이상이 없는데도 나이 때문인지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하기사 이제 은퇴가 채 2년도 남지 않은 경험도 없는 늙은이를 누가 채용하겠다고 부르겠는가. 하지만 경력 있는 사람들이 대우가 좋은 직장으로 옮겨 가다 보면 결국 어딘가는 새 면허증을 발급 받은 사람이건 나처럼 오랜 장롱 면허를 가진 사람도 채용하는 회사가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꾸준히 지원서를 써 나갔다. 그런 중에 어찌 어찌 서류는 통과가 되서 로드 테스트까지 응시해 볼 기회도 있었는데 로드 테스트도 세번이나 떨어졌다.
구인 광고에는 약속이나 한듯이 2년 미만의 최신 오토매틱 트랜스 미션 트럭을 운전한다고 했지만 가보면 무슨 심뽀인지 로드 테스트는 18단 매뉴얼 기어로 운전 테스트를 한다. 3번이나 거푸 낙방을 하고 나니 이 수동 기어 운전이 그냥 도전한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운전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운전 학원들이 얼마나 많은 트럭 운전 지망생들로 문전 성시를 이루는지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한게 6월 초였는데 어느 학원이나 8월이나 되야 등록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도 끈질기게 매달려서 나는 Refresh가 필요하니 다만 몇시간이라도 트레이닝 받게 해달라고 졸라서 토요일 새벽 6시에 2시간 혹은 일요일 오후에 2시간 하는 식으로 황금 주말에만 시간을 받아냈다. 그 때문에 일요일 산에 가는 건 꿈도 못꾸었다. 운전 트레이닝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시간당 120불, 한번에 240불씩 두군데 학원에서 총 17시간 30분(뒤에 수강생이 없으면 내가 강사를 졸라서 그 자리에서 현찰을 주고 한번은 1시간, 한번은 30분을 더했다.)을 트레이닝 받을 수 있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면 몰라도 240불은 내가 하루 종일 택시를 운전해야 벌 수 있는 돈인데 그걸 단 2시간에 투자하는게 나한테 쉬운 결정은 아니다. 암튼 그렇게 트레이닝을 받아보니 옛날에 내가 이런 차를 운전이나 하긴 했었나 기억은 가물가물하고 여지껏 무슨 배짱으로 연습 한번 없이 로드 테스트에 도전 했나 생각하면 기가 막힐 뿐이었다. 지금도 기어 변속이 어려운 건 저속으로 기어를 변환할 때 브레이크로 속도를 늦추면서 악셀을 밟아 엔진 RPM을 높여 낮은 기어로 바꾸는 건데 그 큰 트럭이 브레이크 없이 내달릴때는 악셀을 밟는게 겁이나서 주저하게 되고 그러다 당황하면 일반차 매뉴얼 기어 운전 할 때 버릇 처럼 클러치를 밟아서 아예 기어를 엉켜 버리고 마는게 문제다.(이건 진짜 글로 설명이 어려운데 해봐야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학원을 다니면서 조금 자신이 붙었는지 기왕이면 하이웨이 운전을 하는 직장을 잡고 그것도 미국을 가는 트립을 하는 회사를 지원을 해서 늙으막에 넓은 세상 구경이나 해보자는 뜬금없는 배짱으로 지원을 했는데 진짜 하느님이 보우하사 그런 직장을 잡게 되었다.
10년전 라때(ㅋㅋ)만 해도 국가에서 주는 "쯩"을 따는 국가 고시(?)가 지금 처럼 어렵지는 않았다. 학원이라고 다녀봐야 열 몇시간쯤 운전대 잡게 해주고 대충 기어 변속해서 로드에 나갈 줄 알면 그 어려운 국가 고시가 패스(물론 한방에 ㅋ)되었다. 그러니 학원비도 싸서 등록비, 로드테스트비, 면허세 등의 인지대를 다 합해서 약 4천불쯤 들었다고 기억하는데 요즘은 국가에서 요구하는 MELT(Mandatory Entry-level Training) Program 이라는 코스를 강의실과 현장 실습 포함 121.5 시간 이수해야 로드테스트에 응시할 자격을 준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학원비도 비싸서 제일 싼데가 9천불이 넘는다고 하고 몇번에 합격하느냐에 따라 평균 만이천불은 들어야 한다고 하니 운전 면허증 하나 따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대략 천만원이 넘게 드는 셈이다. 그렇다고 그 비싼 돈을 주고 면허를 땄다한들 초보운전자(?)에게 바로 그 비싼 트럭과 비싼 화물을 덜컥 내어줄 일이 없다.
그러니 처음엔 Apprenticeship(견습 제도)이 있는 회사에 들어가 우리식으로 조수 일부터 시작하던가 아니면 8시간 일중 운전은 2시간 정도만 하고 나머지 시간 내내 딜리버리 같은 육체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회사에 들어가 경력을 쌓는 수 밖에 없다. 나도 면허 따고 처음에 취직한 회사가 GFS라는 식재료 배달하는 회사였다. 이미 택시라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내가 그 고생을 할리 만무였다. 더구나 그때만 해도 기사 대우가 그렇게 좋지도 않은 때였으니 그나마 3개월을 버티고 그만 둔 건 기적이었다. 그렇게 트럭 일을 그만두고는 다시는 트럭을 돌아 볼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 직장은 '98% No freight touch'라고 한다. 그 말은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물건 집어 올리는 일 말고는 화물을 만질 일이 없다는 뜻일테니 60 넘은 노인에게는 더욱 잘된 일이다.
몇해전에 김형석 교수의 '행복 예습'이란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책 내용이 얼마나 허접하던지 그 이후로 김형석 교수를 존경하는 마음이 싹 없어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100세 노인의 말 중 한가지 기억되는 말은 나이 60이 되었다고 해도 뭔가 새로운 걸 찾아서 도전하라는 말이었다. 마침 그 책을 읽은 해가 내가 딱 60이 됐던 해여서 과연 나는 무엇을 새롭게 도전해 볼 수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고 그 이후로도 뭐가 새로운 도전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은퇴후에는 전 아메리카 대륙을 알라스카부터 남미 칠레의 끝 푼타 아레나스까지 여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단지 1년간의 계획일 뿐 뭔가 새로운 도전이랄 수는 없었는데 이번에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도전을 한거 같아 기대가 되기도 한다.
그나저나 이 일을 시작은 했지만 트럭 로드테스트를 준비하면서 유튜브에서 프리 트립 인스펙숀(Pre Trip Inspection) 같은 테스트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찾다가 당연히 트레일러 관련 사고 동영상도 많이 보게되었다. 평생 운전을 겁내 본 적은 한번도 없는데 확실히 나이를 먹기는 먹었는가 보다. 괜히 안하던 일 한다고 덤볐다가 남의 회사에 큰 피해나 주는게 아닌지 잘 못돼 불명예 퇴직하는건 아닌지 정말 걱정이 많다. 하지만 나름 조심성도 많고 책임감도 강하다고 믿고 있으니 스스로 잘 하리라고 위안한다.
지금까지 3번의 트립을 끝 마쳤다. 제일 멀리 유콘 테리토리의 화이트 호스(Whitehorse)를 3일 동안 다녀왔다. 지금은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너무 재미있어서 신나 죽을 지경이다.
자! 이제 지켜 보자. 내가 얼마나 견딜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