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Pigeon Mountain (2021년 10월 17일)

진승할배 2021. 10. 26. 00:24

"나 바빠 왜?" 아들놈 한테 전화하면 늘 듣는 첫마디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 같으니라고...
근데 이게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왠지 혀에 착착 감긴다. 분명히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하던 소리 임에 틀림없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난 모르겠다.
암튼 늘 바쁘다고 툴툴대던 이 녀석이 이번에 집을 샀다. 진짜 바쁘긴 바빴던 모양이다. 내가 이민 와서 처음 샀던 집보다 더 큰 집을 샀다. 지은 지 7년뿐이 안된 새집이라는데 스스로의 힘으로 집을 장만하는 거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자~ 돌 날아오기 전에 자랑질은 이쯤에서 접기로 하고 산 이야기나 해야겠다. ㅋ 

모든 것이 완벽한 듯했다. 모자, 시계, 손수건도 챙겼고 자전거도 실었다. 한주를 쉬어서 몸도 가벼웠다. 산행지인 데드 맨스 플랫(Dead Man's Flat ; 지명)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주유소에 도착했다. 주유기에서 카드로 결제하려는데 뒷주머니에 있어야 될 지갑이 없었다. 차에도 없었다. 순간 머리는 하얘지고 눈앞은 캄캄해졌다. 진짜 큰일이었다. 집에는 어떻게 간다지? 주유구를 닫고 다시 차에 들어와 이 난관을 어떻게 뚫고 나갈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하필 지난주 일요일 놀 때 만탱크를 채워놓아서 아침에 지갑 꺼낼 일이 없었다. 오면서 커피 사 먹을 때도 3불 50센트를 동전으로 줬다. 시동을 걸어서 연료계를 보니 반 조금 모자란다. 지난번 워터튼 파크에 갔을 때 지갑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길까 봐 글로브 박스 안에 백 불짜리 몇 장을 숨겨 놓았던 게 생각나서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벌써 치웠다. 우선 동전통의 동전을 다 꺼내 세어보니 17불 90센트였다. 따로 더 돈이 있을 리 만무였다. 여기 주유소 기름값이 리터에 1.43 달러. 물론 다른데 보다 몇 센트 비싸다. 나가는 길에 시발드 크릭(Sibbald Creek)에 있는 원주민 주유소 말고는 캘거리 시내로 들어가야 한다. 그럴 바엔 조금 비싸도 여기서 그냥 기름을 넣을 수밖에 없다. 주유소 카운터 직원에게 지갑을 잊고 안 가져왔노라고 불쌍한 모드로 궁시렁거리며 잔돈을 세어주니 에누리 없이 17불 90 쎈트 어치만 찍어준다.(선불이다.) 이런 씨발드~ 크릭.
기름을 넣고 연료 정보를 보니 368km를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 372km를 왔다. 그렇담 조금 안심이다. 집에까지는 못가도 공항까지만 가면(집 보다 약 20km 덜 간다.) 택시가 많을 테니 아는 친구도 있지 싶었다. 

나중에 삼수갑산을 가도 우선 비둘기 산(Pigeon Mountain)을 올라가기로 했다. 2,394m. 계절적으로 낮은 산을 선택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산이다. 지난주 복수형이 10km를 걸었다고 천사 같이 착한(?) 후배들을 원망하던데 이 산은 17.4km다. 게다가 1,000m 가까이 올라가야 한다. 

처음 약 5km는 송전선을 따라 스코간 패스(Skogan Pass 8.4km) 가는 산판 도로를 따라 걷는데 다행히 눈이 하나도 없었다. 1시간 10분 만에 자전거를 끌고 약 400m를 올라와 피존 마운틴 트레일 시작 지점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숲 속에 감춰두고(자전거 묶어두는 록 체인을 안 가져왔다. ㅠㅠ) 물 한 모금 마시고 내처 걸어 다시 600여 미터를 올려 1시간 40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빨리 올라왔다. 오늘 오후에 에드먼턴에서 저녁 약속이 있을지 몰라 서두르기도 했지만 트레일이 너무 쉬웠다. 그런데 이 낮은 산이 주변 경치가 너무 좋은데 놀랐다. 우리말에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이라는 말이 있는데 영어에도 비슷하게 'breathtaking'이라는 말이 있다. 이 산을 검색할 때 많은 사람들이 'Breathtaking view'라는 말을 쓴 걸 보고 의아했는데 충분히 그런 말 들을 자격이 있는 산이었다. 

정상에서 Zia(자기 이름을 소개할 때 내가 잘 못 알아들으니까 알파벳 라스트 글자가 처음에 오고 알파벳 첫 글자가 라스트에 오고 그 사이에 i가 있다고 말했는데 처음에 그 말을 더 못 알아들었다.)라는 파키스탄인 친구를 만났다. 얘기를 나눠 보니 이 친구도 대체로 혼자(가끔은 와이프와) 다니는 듯싶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산들을 보며 자기가 올라간 산 자랑을 했다. 지아는 윈드 타워와 림월을 올라갔고 나는 림월과 빅시스터를 올라갔다. 맞은편의 로더 픽과 얌누스카를 올라간 건 같았고 알란도 둘 다 올라 갔다. 올해, 난 8월 15일 템플 마운틴을 올라갔는데 지아는 하루 전인 14일에 올라갔다고 한다. 근데 8월 14일이 파키스탄 국경일이라고 하는데 8월 15일은 우리나라 광복절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크게 웃으면서 사진을 같이 찍었다.
근데 이 친구가 마지막 부탁 하나만 더 들어 달라더니 자기 전화기를 주면서 아무 설명 없이 동영상을 찍어 달라고 한다. 그러곤 땅바닥에 손을 짚고 엎드렸다. 나보고 촬영을 시작하라고 함과 동시에 큰소리로 카운트를 하며 팔 굽혀 펴기 스무번을 했다. 자기는 어느 정상에서나 이렇게 한다고 하면서... ㅋㅋㅋ 
먼저 정상에 올랐던 지아가 내려가고 이번엔 내가 동영상을 찍고(물론 난 팔굽혀 펴기 같은 건 안 했다.) 지아를 따라 내려갔다. 산길이 끝나는 지점쯤에서 지아를 다시 만났는데 지아한테 10불만 빌려달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결국 못했다. 

1시간 10분 올라간 거리를 자전거로 20분 만에 내려왔다. 아침에 주차장에 들어올 때는 집에 갈 걱정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주차장에서 나오면서 보니 'Banff Gate Mountain Resort' 큰 간판이 보인다. 그제야 초딩 친구들 놀러 왔을 때 마지막 이틀을 여기에서 묵었던 게 생각이 났다. 마지막 날엔 리조트 뒷산, 결국 피존 마운틴 일부를 올랐었는데 그때 내가 이미 피존 마운틴을 올랐더라면 그냥 피존 마운틴 정식 루트로 인도를 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더 좋은 경치를 보여줄 수 있었겠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캘거리로 나오면서 내리막 길에서는 기어를 중립에 놓고 탄력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몇 번을 하니까 드디어 남은 기름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남은 거리보다 조금씩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아들한테 e - transfer를 부탁하려고 3시쯤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를 안 받는다. 그 후로 두 번인가 더 했는데도 안 받았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1,200m 대의 캘거리에서 600m 대의 에드먼턴으로 내려가는 길이니까 올라올 때보다는 기름이 덜 먹을 거라는 기대로 운전을 했다. 다행히 아주 다행이 아슬아슬하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처럼 심주택씨 부부와 전 산악회 부회장님과 세리사랑님과 저녁을 다 먹고 났는데 그때야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바빴냐고 물으니 하루 종일 말도 안 되게 바빠서 그때야 missed call이 찍힌 걸 보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지갑을 안 가져가서 e - transfer를 부탁하려고 전화했었다고 말하니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냐고 잔소리만 들었다. ㅋ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인상적인 실패담이 쓰여진 여행기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란다.
여태껏 난 대체적으로 계획한 산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기를 써온 셈이다. 그러니 내 산행후기가(내 후기도 여행기의 일종이라면) 재미없었을 게 뻔하다.(지 글재주 없는 건 생각도 안 하고. ㅋ) 오늘은 자칫 큰 실수가 될 뻔한 사건도 있었는데 과연 그 이야기가 글을 더 재미있게 만들었을까? ㅋㅋ
암튼 뭐 재미있거나 말거나, 누가 보거나 말거나 이 후기는 내 기분에 취해서 내 기록을 남기는 거니 어쩌겠는가. 오늘도 술기운을 빌어 한자 남긴다. 끄윽~

 

 

하이웨이에서 보이는 피존 마운틴
Dead Man's Flat 인터체인지에서 올려다 본 피존 마운틴
쉬운 산이라 등산객이 무지 많았다. 뒤 배경에 오른쪽 봉우리가 윈드 타워, 그 왼쪽의 큰산은 Peter Laugheed.
자전거 타기 딱 좋은 산판도로. 마운틴 바이크 타는 사람도 무지 많았다.
피존 마운틴 트레일 시작 지점
트레일 시작하고 약 10분쯤 걸으면 이렇게 오픈된 초지로 나서는데 여기서 보는 풍경이 정말 breathtaking 이다.
마운틴 바이킹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여기보다 한참 더 위에까지 올라간다.
초지에서 바로 건너 보이는 쓰리 씨스터즈와 왼쪽의 림월
가운데 윈드 타워와 왼쪽의 피터 라피드
피터 라피드 4 봉우리
앞에 큰산은 콜렘보라, 그 뒤에 마운틴 알란
왼쪽 끝 봉우리부터 로렌스 그라시, 할링 피크, EEOR(East End of Rundle), 중앙에 제일 높은 봉우리가 런들 그리고 캐스케이드. 다 올라갔다. ㅋ...

 

저 멀리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상부 능선
정상 능선 반대편으로 보이기 시작한 맥길리브레이. 피존 마운틴 처럼 낮지만 올라가기 길고 쉽지 않은 산이다.
중앙에 스코간 피크와 오른쪽 마운틴 로렛
정상에 서있는 사람이 Zia
Zia가 찍어준 사진

 

정상에서 보이는 쓰리 씨스터즈는 좀 멀다.
중앙에 제일 높은 봉우리는 고트(Goat) 마운틴 그 뒤에 조금 보이는 산이 얌누스카. 고트 마운티 능선 따라 얌누스카 오른쪽 끝 앞에 봉우리가 로더 픽 그 능선 마지막 봉우리가 도어잼(Door Jam) 마운틴. 산밑에 시멘트 공장과 오른쪽 평야쪽은 캘거리 방향.
왼쪽 끝 산이 그로토 마운틴
런들과 케스캐이드는 좀 더 가까이 보인다. 그 밑에 캔모어 시내 전경이 보인다.

 

오른쪽 콜렘보라와 그 능선 중앙의 스코간 패스(하얗게 눈이 보이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