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cade Mountain (2021년 9월 5일)
힘든 숙제 하나를 끝마쳤다.
원래 다음 주 산행 예정이었는데 이번 주가 노동절 연휴라 한주 당겼다.
캐스케이드(Cascade) 마운틴은 밴프 타운 홍보 사진의 배경 산으로 유명하다. 밴프 쪽(정면) 바위 절벽 사이로 작은 폭포 물줄기가 흘러내려 붙여진 이름일 게 틀림없다. 그런데 한국 관광객 가이드는 캐스케이드 산이 주변 산들은 다 3,000m가 넘는데 자기만 불과 2미터 차이로 3,000m 산(Park Canada 공식 높이 2,998m)이 못돼서 저렇게 눈물을 흘린다고 우스게 소리를 한다고 하는데 실제 그 주변에 3,000m가 넘는 산은 하나도 없다.
새벽에 집에서 출발하면서 자주 잊어버리고 출발했던 모자, 손수건, 시계를 모처럼 다 챙겨 온 거에 스스로 기특해 하며 오늘 만약에 트레일이 자전거 출입 금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면서 밴프로 향했다. 그런데 가다 보니 정작 자전거 싣는 걸 잊고 가는 중이었다. 이런~! 가보고 싶은 산은 많으니 산행지를 바꿔야 하나 마나 한참 고민했다. 그래도 결론은 그냥 계획한 산행을 하기로 했다.
캐스케이드 산은 10년전 쯤 위니펙에서 오자마자 산행했던 산이다. 그때는 감히 정상 등정 조에 끼지도 못하고 Amphitheater라는 산밑 분지에서 희희낙락 놀다가 내려왔다.
그러고 보면 체력은 나이에 비례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현재의 나는 그때에 비해 머리털이 조금 더 빠지고 배가 조금 더 나왔을지는 몰라도 10년전에 비해 체력은 더 좋아지지 않았나 싶다. 그때는 꿈도 못 꾸던 캐스케이드 정상을 올랐으니 말이다.
캐스케이드 산행은 밴프 시내 맞은 편에 있는 노르퀘이(Norquay) 스키장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이번에 캐스케이드 산을 검색하다 처음 알았는데 노르퀘이 산에는 Via Ferrata 가이드 산행이라는 게 있었다. 동영상을 보니 바위에 확보용 철선을 설치해 놓고 거기에 캐러 비너를 통과해 바위를 오르는 산행이었다. 6가지의 코스에 175불부터 450불까지 요금이 책정되어 있었는데 언젠가 한번 해보고 싶기도 하다.
캐스케이드 산행은 처음 약 100m의 고도를 낮추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세번째 스키 리프트 뒤 산행 출발점에 오니 자전거 출입 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자전거 싣는 걸 잊고 오기 잘했다. 그러고 보면 잊어버린다는 게 다 나쁜 점만 있는 게 아니다. ㅋㅋ
수목한계선까지의 숲속 길은 10년 전 왔던 내 기억보다 길이 좁았고 가팔랐다. 거기다 나무뿌리 돌부리가 깊이 드러나 길이 험해서 도저히 자전거 통행이 불가한 산길이었는데 난 Fire 로드 같이 넓은 산판 도로로 기억하고 있었다. 자전거 통행을 금지한 이유가 있었다.
수목한계선을 넘어 서면 바로 Talus 지형이다. 전에 템플 마운틴의 정상 능선에는 송곳 하나 꽂을 수 없을 만큼 촘촘히 작은 돌들이 쌓여 있었다면 여기는 얼마나 큰 바위와 돌들이 얼기설기 쌓여 있는지 구멍이 큰 데는 사람이 들어가 앉아도 될만한 공간도 있었다. 역발산을 했다는 항우가 와서 이 산을 들어 흔든다면 돌들이 가라앉아 산 높이가 절반은 줄어 들 듯 싶었다. 요즘은 높은 데를 쳐다보면 어지럽다. 게다가 이런 돌과 바위들이 널려있는 지형을 쳐다보니 마치 무수한 점들로 어떤 도형을 그린 종이를 보는 것처럼 더 어지러워 고개를 들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어려서 땅따먹기란 놀이를 통해 내 땅을 넓혀가는 삼각 측량을 배운다. 여기는 무수한 케른(Cairn)을 직선으로 연결하여 어려서 배운 삼각 측량을 이용해서 어느 길이 빠르고 바른 길인지를 찾아야 한다. 그만큼 쓸데없는 케른이 너무 많았다. 여기가 First Peak이다. 오른쪽 산허리를 가로 지르는 길이 있는데 난 앞사람들을 따라 산 정상을 올라갔다 100여 미터를 하산하는 등정의 기쁨(?)을 누렸다. 여기 정상에서 보면 나머지 정상까지의 길이 훤하게 보인다.
두 번째 봉우리는 False Summit인데 여기는 전체적으로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트레버스 루트인데 일부 구간은 이 전체 산행의 크럭스라고 한다. 근데 난 이 False Summit이라는 단어를 보면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허승진 형님과 산행을 한 적이 있었다. 어느 산이었던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상인 줄 알았는데 정상이 아니었다. 그때 승진이 형이 "여기가 Sub-summit이구나" 그랬다. 그러더니 잠시 후 특유의 졸린듯한 목소리로 "근데 사전에 Sub-summit이라는 단어가 있나?" 그러는 거였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Sub-summit이라는 단어가 진짜로 맞는 단어인 줄 알았다. 왜? 석학 승진이 형이 말했으니까. 근데 이어서 "왜 leader도 sub-leader가 있잖아? 히히힛" 그러고는 웃는 거였다. 전에도 말했지만 교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승진이 형 머리는 정말 비상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볼 생각은 안 했지만 여기서 산에 다니다 보니 Sub-summit이라는 단어는 못 들어봤고 그런 준정상(?)을 False summit이라고 하는 것 같다.
산에 다니다 보면 1m 저쪽이, 아니 딱 한 걸음 저쪽이 딴 세상일 때가 많다. 세상에는 꼭 보지 말아야 할 것도 많다. 그때는 외면하면 된다. 여기 False summit 밑의 크럭스도 그렇다. 안 보고 지나가면 그냥 아무렇지 않은 산길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중간에 서서 사진과 동영상을 남겼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게 살 떨리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 정상까지는 스크리 지역이지만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서 그런지 잘 다져져 스크리 구실을 못했다.
햇살은 따뜻한데 아주 차갑고 강한 바람이 불어와 햇살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산에는 벌써 겨울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어디서 다시 산불이 났는지 오늘도 시야가 맑지는 않다. 밴프 시내가 가물가물 어렴풋하게 보인다.
정상까지 5시간 10분이 걸렸고 전체 산행 시간 꼭 9시간이 걸렸다. 9시간은 파크 캐나다 웹사이트의 캐스케이드 산행 안내 시간과 똑같다. 보통은 그 시간보다는 적게 걸리는 편이었다. 일주일만의 산행이라 지난 빅씨스터의 스크리에서 쌓인 근육의 피로가 덜 풀렸던지 오늘은 굉장히 힘들었다.
캐스케이드 산은 46번째 높은 산이지만 대체로 쉬운 산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해도 약 18km 넘는 거리를 걸어야 하고 1,460m를 올라야 하는 길고 지루한 산행이다. 힘들었지만 잘난 체 하기 딱 좋은 산을 끝냈다. 잘~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