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Mount Temple (2021년 8월 15일)

진승할배 2021. 8. 17. 15:50

늘 마음 한구석에 템플 마운틴이 있었다. 언젠가 꼭 가야지 했다.
원래 이번 주 산행지는 Big Sister였다. 날씨를 확인하다가 갑자기 일출 일몰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고 생각되었다. 
금요일 모처럼 연기도 없고 날씨가 굉장히 좋아서 템플 마운틴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해가 더 짧아지기 전에 템플 마운틴부터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갑자기 산행지를 바꾸었다. 

3,544m. Mount Temple.
캐나다 록키 전체에서 11번째, 앨버타 록키에서는 6번째 높은 산이라고 한다. 하지만 로프 같은 전문 장비 없이 걸어서만 올라갈 수 있는 제일 높은 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 보니 그 높이에 끌려 많은 사람들의 도전을 받는 산 중의 하나라고 한다. 나도 이미 세 번이나 도전을 했고 세 번 모두 실패했던 산이다. 

템플 마운틴은 물 색깔이 예뻐서 관광지로 유명한 모레인 레이크가 산행 출발 지점이다. 그런데 이 모레인 레이크는 주차장이 협소해서 아침에 조금 늦게 도착하면 주차공간을 찾기 힘든 곳이다. 또 산행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구글에 템플 마운틴을 검색해서 얼마나 걸리는가라는 질문을 클릭하면 약 10-12시간 산행이라고 쓰여있다) 다른 산행처럼 아침에 집에서 출발해서는 곤란하다.
토요일 일찌감치 일을 끝내고 이른 저녁을 먹고 집에서 7시 20분에 출발했다. 불빛에 달려드는 곤충의 희뿌연 체액을 뒤집어쓰고 밤 12시 정각에 모레인 레이크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적은 여섯대의 차만 주차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수면에 방해될까 봐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차 뒤에 자리를 깔고 슬리핑 속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주변이 소란스러워 눈을 뜨니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반쯤 일어나 창밖을 보니 아직 어둠이 짙은데도 이미 주차장은 꽉찬듯 보였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았다. 다시 더 자려고 누웠지만 소음과 불빛 때문에 포기하고 5시 45분쯤 일어났다. 전날 준비해 간 유부초밥으로 아침을 먹고 이를 닦고 산행 준비를 마치고 6시 40분에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을 준비하면서 어제 새로 산 베어 스프레이와 폴을 가져갈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결론은 스프레이는 두고 가고 폴은 가져가기로 했는데 나중에 보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템플 마운틴은 Sentinel Pass를 경유해 올라 가는데 이 센티넬 패스로 가는 Larch Valley Trail이 유명한 관광지라 사람이 무척 많았다. 라치 밸리 트레일 입구에는 4명 이상의 그룹으로 산행을 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 규칙을 지키는 사람도, 
감시하는 사람도 없는거 같아 나도 그냥 혼자 트레일로 들어섰다. 

전에는 센티넬 패스까지 2시간에서 2시간 10분쯤 걸렸던걸 기억하는데 오늘은 1시간 50분 만에 도착했다. 그만큼 체력이 좋아진 걸 느낀다. 올라오면서 바람이 좀 분다고 느꼈는데 센티넬 패스에는 바람이 어마어마했다. 오늘은 바람하고의 싸움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침에 주차장에서부터 연기가 꽉 차서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시야가 안 좋았다. 센티넬 패스 정상은 Ten Peaks가 한눈에 굽어 보이고 바로 옆으로 암벽 등반으로만 오를 수 있는 어마 무시한 절벽의 Pinnacle 마운틴의 장관이 절경인 곳인데 연기 때문에 거의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이렇게 경치가 안 보인다면 센티넬 패스 올라오는 이유가 없어 찾는 사람도 줄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센티넬 패스 정상에서 잠시 쉬면서 모자를 헬맷으로 바꿔 쓰고 헬맷 위에 카메라를 끼웠다. 여기서부터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듯 아주 가파른 경사면을 올라야 해서 낙석이 많아 헬맷은 꼭 착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 사이에 앞서 센티넬 패스에 있던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템플 마운틴으로 올라갔다. 그들을 보니 왠지 조금 마음이 놓인다. 

템플 마운틴의 등산로를 검색해보면 3개의 록밴드(cliff)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 코스의 crux지점이라 부르는 두 번째 록밴드 말고는 굳이 따로 분리할 필요 없는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의 그냥 바윗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crux라 부르는 지점은 약 10m 높이의 볼더링(Bouldering ; 규모가 작은 암벽을 별다른 등반 장비 없이 오르는 일 : Daum 국어사전 참조) 코스이다. 어렵지는 않지만 페이스가 노출되어 있어서 확보 없이 오르기가 조금 겁나는 지점이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이곳에 전에 못 보았던 로프가 설치돼 있었다.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은 등반 중 로프를 손으로 잡거나 기존에 설치된 확보용 볼트를 직접 손으로 잡는 걸 금기시한다. 그 이유는 그런 걸 사용하는 순간 그 바위 등급이 내려가기 때문인데 여기 템플 마운틴 크럭스 지점에 로프가 설치됨으로 더 이상 크럭스 구간은 없다고 봐야 할 거 같다.
전에 템플 마운틴에 왔던 세번 모두 크럭스 지점은 지났었고 늘 다음번 산행할 때도 바로 그 지점이 걱정이었는데 더 이상 걱정거리가 사라진 셈이 되었다.
이번엔 줄을 손에 감아 쥐고 꼭 붙들고 올라갔다. 내가 무슨 전문가라고 바위 등급을 생각할 거며 쉽고 안전한 방법을 마다하겠는가. 근데 올라와서 생각하니 전에 로프가 없을 땐 어떻게 올라갔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세 번째 록밴드라는 바위 구간을 지나면 더 이상 바위는 없고 지긋지긋한 스크리 구간이다. 처음 정상부 릿지를 올려다본 순간 든 생각은 '어떻게 저 돌들이 붙어 있을 수 있지?'였다. 진짜로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가파른 경사면인데(바위 빼고) 거기 돌들이 흘러내리지 않고 붙어 있었다. 아마도 저 깊은 데부터 돌들이 쌓여서 그렇지 바위면 위에 쌓인 돌이라면 비나 눈에 금방 쓸려 내려가고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스크리 지역은 능선 릿지 쪽으로 붙을수록 돌이 좀 더 굵어져서 걷기가 편했다. 하지만 바람이 세서 릿지로 가까이 올라 서기가 겁이 났다. 실제로 가끔씩 강한 돌풍이 불 때는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졌다. 물론 능선의 반대편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정상에 가까이 가니 북쪽 능선의 무지하게 큰 눈덩이가 눈에 들어온다. 

정상이다. 먼저 올라왔던 커플이 정상에 돌을 쌓아 만든 작은 바람 피난처를 나를 위해 양보하려고 일어난다. 그들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그들이 양보해준 자리에 쏙 들어가 앉았다. 정상부 릿지 아래서 만난 어떤 젊은 친구가(그 친구도 솔로였다) 정상이 굉장히 춥다고 했는데 진짜 추웠다. 헬맷 바깥으로 나온 귀가 시려 윈드 재킷에 붙은 모자를 쓰고 헬맷을 그 위에 썼다. 사진을 찍으려면 손이 곱아서 장갑 낀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녹여야 했다. 
정상에 레지스터 통이 있었는데 그 안에 있어야 할 작은 수첩이 없어져서인지 사람들이 온갖 종이에 이름을 적어 넣어 통 안은 구깃구깃한 종이로 가득찼다. 복권도 있었다. 난 마침 어떤 친구들이 템플 마운틴 루트 맵을 복사한 A4용지 뒷면에 이름을 적은 종이의 빈 여백에 이름을 남겼다.(물론 곧 없어질지도 모르지만) 

아~ 근데 정상에서 보이는 건 파란 하늘뿐이었다. 연기가 여기까지는 못 올라오는지 하늘 말고는 보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앨버타에서 여섯 번째 높은 산답게 템플 마운틴 정상의 조망은 일품이라고 소문난 곳이다.
이렇게 여름마다 산불이 기승을 부린다면 어쩌면 앞으로는 산에 와서 정상에 오르는 성취감은 누리고 집에 돌아가서 인터넷으로 남들이 찍어 놓은 사진을 보며 연기가 없을 때의 뷰는 이렇다더라 하면서 인터넷으로 대신 경치 감상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정상에는 낮 12시 정각에 도착했다. 5시간 20분이 걸린 셈이다. 지구력이 떨어지는지 정상 밑 스크리 지역에서 고전을 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시간이다. 20분을 머물다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자갈 스키를 타면서 뛰듯이 내려갔다. 스크리 지역에서 폴은 정말 필수다. 오를 때 미끄러지는 발에 힘을 주는 것도 밸런스를 잡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이렇게 자갈 스키를 탈 때는 필수다. 처음에 이런 스크리 지역이 있을 건 생각을 못하고 대체로 바윗길인 템플 마운틴에서 폴이 필요할까란 생각에 두고 올까 고민을 했던 건데 안 가져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하산 길이 빠른 편이었는지 crux 지점의 침니(Chimney ; 굴뚝 같이 세로로 길게 갈라진 바위의 틈새)를 빠져 나오니 먼저 올랐던 젊은 필리핀 커플이 있었다. 이 침니는 폭이 좁아서 배낭을 메고 오르기는 힘이 드는데 내려올때는 마침맞아서 바위벽 끝에 있는 침니까지 오는 게 겁나지 침니 속으로 들어가 적당히 뭉그적거리면 아주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는 곳이다. 센티넬 패스 밑의 Minnestimma 호수에 다달아서는 앞선 네 명의 일행을 따라잡았다. 3시 30분에 차에 돌아왔으니까 총 8시간 50분이 걸렸다. 생각보다 오래 안 걸렸다는 윤철이 말처럼(물론 윤철이는 나보다 1시간은 더 줄였을게 틀림없지만) 생각보다는 짧게 걸린 편이다. 

드디어 마침내 결국 템플 마운틴을 올라 갔다.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 높이의 산이라 그동안 못 올라갔음에 아쉬움이 많았다. 그렇다고 실력(?)이 없어서 못 올라갔다고 생각하거나 빨리 올라가야겠다는 조바심을 내지는 않았다. 때가 되고 준비가 되면 언젠가 오를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제는 로프가 설치되어서 더 이상 아주 위험한 산은 아니고 체력과 지구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산이라고 생각된다. 어떻든 3,544m를 오른 내가 자랑스럽다. 쫄보가 참... 출세했다. ㅋㅋㅋ


* 이번 산행에서 사진을 많이 못 찍었다. 아니 연기 때문에 사진 찍을게 거의 없었다. 또 헬맷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동영상을 시도한다고 폰(사진기)을 거의 의식하지 않아서 정작 찍어야 할 곳도 못 찍고 넘어갔다.

 

아침 6시 정각 주차장
6시 41분 모레인 레이크
출발지점의 높이. 내 시계가 맛이 갔는지 늘 약 100여 m 낮게 표시된다.
라치 밸리 트레일 입구. 여기부터는 4명이상의 그룹만이 입산 허용이 된다. 근데 난 그냥 혼자 올라갔다.
오른쪽의 큰산이 템플. 가운데 뾰족한 산이 피너클, 그 왼쪽의 흐릿한 산이 이펠(Eiffel)

센티넬 패스 정상에서의 조망. 연기가 심각한 수준이다.

 

 

 

크럭스 지점. 비 맞은 중처럼 혼자 뭔 말이 많은지 원... ㅋ

 

정상부 릿지인데 여기서 배터리가 다되서 켜자마자 배터리 경고음이 울리더니 꺼져버렸다. ㅠㅠ 카메라를 사놓은지 오래됐는데 그동안 관리를 잘 못해서 배터리 생명이 짧아진거 같다.

정상부 릿지 밑의 마지막 바위구간. 지난 마지막 산행 때 오른쪽 바위 중간에서 포기하고 내려왔다.

 

 

 

너무 기쁜 나머지 말이 좀 많아졌다. 원래는 안그런데... 용서하시길. ㅋ

누가 텔레토비 닮았다네요. ㅋㅋㅋ

 

실제 높이 3,544m랑 129m 차이가 난다. 내 시계상으로 1,799m에서 시작했으니 1,616m 오른셈인데 실제 등반 높이는 1,703m라고 한다.
정상에서 본 북릉. 정상보다 높아 보이지만 실제는 비슷하거나 조금 낮아 보인다.
올라온 정상부 릿지
뛰어 내려온 길
뛰어 내려갈 길. 배경에 피너클과 이펠

 

 

모처럼 연기가 바람에 날려가 시야가 트여서 센티넬 패스 정상과 웅장한 피너클 마운틴을 보여줬다.
Minnestimma 호수와 배경의 10 Peaks.
아름다운 10 Peaks의 전경이 사라졌다.
대한민국 국민은 어디에나 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