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Signal Mt. (Mount Tekarra, 2021년 6월 20일)

진승할배 2021. 6. 29. 00:14

불룩한 배 중간에 벨트를 메어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신공을 터득할 때쯤 되니까 당연하게도 불청객이 찾아왔다. 
마지막 산행한 다음날 부터 갑자기 오른쪽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스노우 슈를 묶었던 끈에 의한 피로로 발이 아픈 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심해졌다. 나를 잘 아는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전에 통풍 앓은 적 있지 않았어? 혹시 그거 통풍 아니야?" 하는 말을 듣고야 아차 싶어 병원을 찾아 약을 먹기 시작했다. 
전에도 두번 통풍을 앓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며칠 약 먹고 금방 낫었는데 배둘레햄에 비례하는 건지 이번엔 쉽게 낫지를 않았다. 결국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약을 더 세게 때리고 또 비싼 신약으로 바꿔 먹고서야 겨우 치료가 되는 듯하다.
그동안 좀 아프고 불편한건 있었지만 전혀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니다. 술도 못 마셨지만 먹는 양을 줄이고 식이요법을 해서 체중이 5kg 가까이 빠진 건 작은 수확이다. 그렇다고 뱃살이 빠진 건 아니다. 잘 알다시피 똥배는 별 개니까. ㅋ.. 

꼭 석달만의 산행이다. 아직 완전히 낫진 않았지만 산에 가고 싶어 좀이 쑤실 지경이라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이번 산행지는 지난번 휘슬러 마운틴을 갔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와 관광객 모드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발견한 Tekarra 마운틴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테카라 마운틴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에 많지가 않았다. 테카라 마운틴을 검색하면 Skyline Trail에 대한 정보가 더 많았다. 스카이라인 트레일은 2-3일짜리 백패킹 트레일로 유명한 모양이었다. 테카라 마운틴은 그 트레일 중간쯤에 있어서 백패킹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반하는 산 같았다. 하지만 시그널 마운틴 쪽으로 당일치기 산행도 가능하다고 해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스카이라인 트레일 헤드 주차장은 시그널 마운틴 트레일 시작점으로도 사용된다. 여기는 전에 한번 왔던 곳이다. 기록을 찾아보니 2011년 10월 8일 무려 19명이 같이 왔었다.
그 당시 기억으로 지루한 Fire Road를 따라 올라 갔던 기억이 남아서 이번엔 자전거를 가지고 갔다.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다. 그런데 산에 도착하니 산기슭을 따라 안개 같은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구름 너머로 해는 보이지만 습하고 쌀쌀한 날씨 속에 산행을 시작했다.
산길의 키작은 풀잎에 맺힌 이슬이 낡은 싸구려 등산화에 떨어져서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양말이 젖고 발가락에 물기가 스며들었다. 고어텍스 슈즈를 신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래서 다들 고어텍스 고어텍스 하는 모양이라고... 올해는 과부 딸라 변을 내서라도 고어텍스 등산화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ㅋㅋ 

오를수록 조금씩 경사가 급해진다. 경사가 급하면 빗물이 흐를 때 빠르게 흘러 그런지 땅이 더 많이 패여서 돌과 바위의 노출도 심해져 자전거를 밀고 올라가는 것도 힘이 들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몸속의 요산이 뚝뚝 떨어지는 거 같아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2시간 45분 산행 후 시그널 마운틴 분기점에 섰다. 삼성 헬스 앱으로 8.5km,  895m를 올라왔다.
오랫만에 산행이라 그런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서 그런지 벌써 지친다.
자전거 보관소(?)에 자전거를 파킹하고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섰다. 산길이라고 경사가 급한 건 아니다. 테카라 캠프그라운드까지는 아직도 5.4km가 남았다니 테카라에 접근하는 길만도 만만치가 않은 거리이다.
(산에 다녀와서 찾아보니 테카라 캠프그라운드에서 테카라는 왕복 6km거리였다. 그러니까 테카라 마운틴 산행은 왕복 33.6km의 굉장히 긴 산행이다.) 

산책 길처럼 쉬운 트레일인데 자주 눈으로 길이 막혀 있었다. 짧은 거리는 러셀을 하면서 지나갔고 큰 눈은 눈 아래로 우회를 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그래도 스카이라인 트레일에서 보이는 풍광은 좋았다.
넓은 초지에 다다라서 마침내 테카라 마운틴의 웅장한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테카라 마운틴을 보니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대부분의 록키 산들이 한쪽이 절벽이면 다른 한쪽은 사람이 올라갈 만한 경사가 있게 마련인데 이건 나 같은 초짜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을 거 같은 절벽이었다. 

산에 가까이 간다고 올라 갈 수 있겠나를 걱정하며 걷고 있는데 삼성 헬스 앱이 10km를 걸었다는 알람을 알려준다. 1시 10분. 9시 정각에 산행을 시작했으니 4시간을 조금 더 걸었다. 우선 점심을 먹기로 하고 쿠션 좋은 소파같이, 밟으면 푹푹 들어가는 이끼 같은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침에 고속도로에 올라 서고야 시계를 안차고 나온걸 알았다. 어떻게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 전화기의 삼성 헬스 앱이 생각났다. 그런데 이 앱이 배터리를 많이 잡아먹는 모양이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전화기를 확인하니 배터리가 30% 남았다는 경고가 떴다. 시계도 없는데 완전 방전이 되면 곤란해질까 봐 앱의 사용을 중지시켰다. 

테카라 산행이 조금 길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긴편이었다. 그래도 하산할 때는 자전거를 탈 거니까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조금 느긋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그렇다 해도 테카라는 눈도 많고 절벽에 가까운 경사면이어서 도저히 오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시즌을 잘 못 선택한 건 분명해 보인다.
점심을 먹으면서 발밑의 트레일을 따라 내려가 야영장을 가느니 시그널 정상에 올라가 산 반대편을 관찰하는게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그널 마운틴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을 올라 정상부 능선을 타고 내리면 올라온 눈길에 다시 안 빠져도 될 거라는 깜찍한 생각도 했다. 

정상은 내 기억 속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넓고 평평했고 돌과 바위가 많았다. 다만 내 기억 보다는 전망이 좋았다. 처음 왔을 때는 10월이라 춥고 바람도 심했던 기억은 나는데 날이 흐렸던지 좋은 경치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근데 이번에 시그널 마운틴은 낮지만 위치가 좋아서 뷰가 상당히 좋다는 걸 알았다. 자스퍼 시내도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Maligne Lake Road랑 나란히 달리는 산들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 총 거리 약 23km에 표고차 1,204m를 올랐다.
아직 완전하지 않은 발로 오랫만에 한 산행치고는 아주 만족한 산행이었다. 
올라갈 때 3시간 가까이 올라간 거리를 자전거로 30분 만에 날듯이 내려왔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힘주어 핸들을 쥔 왼팔이 자전거의 흔들림에 아프다. 그제야 어제 오후에 2차 접종한 게 생각이 났다. 

브레이크가 터질듯 내달린 쾌감은 정말 좋았지만 너무 편하게 빨리 내려 와서 그런지 도선사에서 자동차 타고 내려온 듯한 이 찜찜함은 무얼까. ㅋㅋㅋ

 

 

 

 

 

시그널 마운틴 분기점. 오른쪽 길이 시그널 마운틴 캠프그라운드로 가는길. 왼쪽길로 100m 쯤 올라가면 테카라 마운틴(스카이 트레일) 분기점.

 

왼쪽이 스카이 트레일 입구

 

 

 

스카이 트레일에서 본 풍경. 맞은편 산은 Maligne Lake Road와 나란히 달리는 Colin Range.

저 멀리 테카라 마운틴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은 초원위에서 바라본 시그널 마운틴 정상부.
테카라 마운틴 전경. 어디로 올라갈 수 있을까?
시그널 마운틴 정상
시그널 마운틴 정상부 능선
자스퍼
멀린 캐년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Edith Lake(오른쪽)와 Annette Lake
Fire Road의 끝. 여기서 능선을 내려 저 Fire Road를 따라 자전거가 있는 곳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