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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sler Mountain (2021년 1월 10일)

진승할배 2021. 1. 14. 02:40

天高馬肥의 계절이 가을이라면 천고비, 내가 살찌는 계절은 겨울이다.
더구나 올해는 코비드 때문에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작은 피트니스룸 마저 문을 닫아서 어디 한두 시간 땀 흘릴만한 곳도 없다. 

새해 둘째날, 남의 집을 방문하면 벌금이 어마어마하다는데도 불구하고 심주택씨 부부가 갈비찜에 산적 구이에 잡채에 연어회에 김치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는 연어만 먹고 다 두고 가는 바람에 잔치상 치우느라 또 배가 산만큼 나오고 말았다.
그다음 날 심주택씨하고 안부 통화하는 중에 옛날 산악회 얘기가 나왔고 내가 옛날 산악회 카페에 자격이 박탈돼서 카페를 볼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심주택씨 부인이 어떻게 카페를 만든 사람이 카페에 못 들어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산악회 회장님께 항의를 하겠다고 하더니 거짓말처럼 그 날로 복권이 되었다. 

산악회는 갈라졌고 남은 사람들끼리 산에 간다고 하더니 그마저도 시들해졌는지 산행도 없는거 같고 카페도 활동하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그나마 자기네들도 산악회 카페에 정치 얘기가 너무 많은게 안 좋아 보였던지 명바기 박그네 세월호로 도배되어 있던 글들이 많이 지워지고 없어졌다.(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들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산악회 카페에선 그런 정치 얘기하는 걸 금하자고 했을 뿐이다.) 

아무튼간에 오랜만에 옛날 사진을 보니 좋았다
벌써 만 9년이 넘게 록키를 다녔는데도 요즘은 정말 어느 산을 가야 될지 몰라서 산에를 못 다니고 있다. 갔던 산만 자꾸 갈 수도 없고... 그러다 카페에 지난 산행 사진을 보다 내가 안 간 곳인데 이맘때 가면 좋을만한 산행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구나. 산행은 안했어도 초딩 동창들이 단체로 왔을 때 친구들 덕분에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 가 본 산이다.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고속도로를 달려 에드먼턴을 벗어나니 시골엔 아직도 화목을 때는 페치카로 난방을 하는 곳이 많은지 장작으로 구들을 뎁힌 방 안에 앉아 있는 것처럼 차 안에 매캐한 그러나 기분 나쁘지 않은 장작 타는 냄새로 가득 찼다.  
영하 13도에 출발했는데 논스톱으로 엣슨(Edson)을 지나 20분쯤 더 달리니 갑자기 차안이 덥다. 온도계가 1도를 표시하더니 힌튼(Hinton)에 들어설 때는 6도가 되었다. 

록키에는 두군데의 곤돌라가 있는데 밴프의 썰퍼 마운틴은 사시사철 인기가 많은 산행지이다. 그러니 자스퍼의 휘슬러 마운틴도 사람이 많을 거라 생각이 되었다.
그러나 자스퍼 스카이 트램은 영업을 안 하고 있었고 휘슬러 트레일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제서야 밴프하고 자스퍼가 이렇게 다르구나 생각이 들었다. 밴프는 캘거리 지역뿐 아니라 타지 여행객들도 많이 오지만 이 자스퍼엔 국제공항도 멀고 접근이 쉽지 않으니 확실히 사람들이 많지가 않다. 
휘슬러 마운틴은 내 독차지가 되었다.
트레일 입구에는 눈 컨디숀이 안 좋아 추천할 만한 트레일이 아니라고 적혀있었다.
그런데 한 20분쯤 올라가니 빨간 테이프로 트레일을 막아 놓고 한쪽에는 무스의 활동기라 트레일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붙었다.
이런 젠장... 그럴거면 저 아래 입구에 붙여 놓던지.
참 난감하게 되었다. 한 10분쯤을 서서 고민과 갈등을 거듭했다. 그냥 지나가면 정말로 벌금을 물릴 건지. 벌금은 얼마나 될지. 나중에 법정에 가면 뭐라고 둘러댈 수 있을지. 별에 별 생각을 다하다 벌금을 물어도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따로 갈 데도 없었다. 

한시간을 걷고 첫 휴식을 취하려고 멈췄다. 갑자기 배가 아파진다. 그냥 가기는 불편할 거 같다. 

고도를 높일수록 점점 눈이 많아진다. 2시간 가까이 올라 나무가 끝나는 지점에 왔을 때는 눈에 허벅지까지 빠졌다. 눈 속에서 무릎으로 눈을 차고 걸으려니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게다가 눈 속에 오래 있으니 발도 시리고 종아리 허벅지도 차가워진다. 스노우 슈는 차 안에 고이 모셔 놓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후회 막급이다. 우선 이걸 사진에 남겨야겠다 싶어 전화기를 찾으니 없다. 아무리 찾아도 진짜 없었다. 순간적으로 패닉!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요즘 세상엔 전화기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거기엔 어머니 사진도 있고 손주 녀석들 사진도 있다. 거기다 틈틈히 써놓은 글, 책을 보면서 갈무리해 놓은 글들. 하나도 기억 못 하는 그 많은 전화번호들.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아찔하다. 
더구나 여기 이런 눈 속에 흘렸으면 도체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그나저나 난 아직 곤돌라를 끌고 올라가는 케이블도 못 봤다. 밴프의 썰퍼 마운틴은 처음부터 곤돌라 줄을 가운데 공중에 두고 이리저리 갈지자로 올라 가는데 여기는 산 중턱에 오도록 줄도 못 봤다.
이왕에 여기까지 온 거 전화기는 나중에 찾고 나무를 벗어나 케이블 있는데 까지는 가보기로 한다.
이제 숲을 벗어나 본격적인 오르막이 될 지점까지 나왔는데 생각해 보니 올라간들 사진도 못 찍을 거고 점점 눈도 많아져서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눈이 빠지게 눈만 보고 걸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볼 일 볼 때 빠진 게 틀림없을 거 같은데 확신이 없으니 올라 온 길을 꼼꼼히 살피며 내려왔다.
다행히 전화기는 내가 생각한 위치에 있었다.
산행을 하면서 가장 중요시 다루는 소지품이 자동차 키와 전화기다. 왜 그런지는 말하면 잔소리고 그래서 여름철에 차 키는 지퍼가 있는 배낭 주머니에 전화기는 배낭 어깨끈에 매달 수 있는 작은 주머니에 넣는다.
그런데 날이 추운 겨울에는 그렇게 보관하니까 배터리가 빨리 소모되고 작동도 느려진다. 그 이후론 몸에 직접 다을 수 있는 바지 앞주머니나 뒷주머니에 꽂고 다닌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해 아주 추운 겨울에 산행을 마치고 차에 왔는데 차 문이 열리지 않는 거다. 할 수 없이 차 키를 이용해 문을 열었는데 아주 시끄러운 소리로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요즘은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거니까 키가 있어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빵빵 빵빵 알람은 계속 울리고 다행히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혼자 그 소리를 듣고 앉아 있었다. 차 리모트 키의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을 했는지 정말 오랫동안 주물러서 다행히 차에 시동을 걸 수 있었다. 그 이후론 차 키도 겨울엔 바지 주머니나 속 주머니에 보관하는 습관이 생겼다. 

1시간 반을 허비했다. 아직 12시도 안된 시간이다. 다시 올라갈 수도 없고 터덜터덜 걸어 내려오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에디스 카벨 메도우가 짧고 쉬워서 괜찮을 거 같았다. 
차를 몰아 에디스 카벨 로드로 가니 거기도 막혀 있었다. 더 이상 갈 만한 데를 알지도 못하고 생각도 안 난다.

그냥 재스퍼의 한인 식당에 들려 점심이나 먹고 올라가야겠다고 자스퍼로 향하는데 가만 생각하니 레스토랑도 문을 닫았을게 틀림없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하루다. 

오늘은 산행을 한 게 없으니 산행후기라고 하기도 그렇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전화기에 스크립 해 놓은 거나 공개해야겠다. 잃어버리기 전에.
최근에 읽었던 책은 캐나다 여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쓴 '고양이 눈'이라는 책이다. 소설을 읽으면 글의 배경을 보고 그 시대의 사회상을 알 수가 있다. 4-50년대 전쟁 후의 캐나다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중에서 내가 기억할 만한 것들 중에는 캐나다 어린이들도 구슬치기를 했다는 것, 우유병에 두꺼운 종이로 뚜껑이 있었다는 것. 그런데 우리는 그러지 않았던 기억인데 그네들은 그 뚜껑으로 따먹기 놀이를 했다고 한다. 우리네 딱지처럼.
학교 생활도 비슷한 게 많았다. 나는 우리만 선생님한테 줘 터지는 줄 알았는데 이 나라도 선생님이 자로 손바닥을 때리고 심지어 가죽 혁대로 엉덩이도 때렸다고 한다. 또 수업 중에 졸거나 떠드는 학생에게 칠판지우개를 던졌다는 것. ㅋㅋㅋ
여자 아이들은 종이 인형에 옷의 끝 부분을 접어 종이 옷을 입히고 놀았다는 것.
또 여자 아이들이 줄넘기나 고무줄놀이를 할 때 단조의 반복적인 노래를 불렀다는 것도 똑같다. 우리 여자 아이들이 뭐라고 불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비슷한 가사도 있는 듯싶다.

 

여기에 캐나다 아이들이 불렀다는 노래 가사를 소개한다. 

살로메는 무희였다네,
그녀는 야한 춤을 췄네.
야한 춤을 출 때 그녀는 
거의 벌거벗고 있었네. 

또 이런 것도 있다고 한다. 

어젯밤이 아닌 그저께 밤
스물네 명의 도둑이 우리 뒷문으로 들어왔네.
그리고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네!
아가씨, 빙글 돌아요, 돌아요, 돌아요.
아가씨, 땅을 짚어요, 땅을 짚어요, 땅을 짚어요.
아가씨, 신발을 보여 줘요, 신발을 보여 줘요, 신발을 보여 줘요.
아가씨, 아가씨, 스물네 개의 스키두! 

저 마지막 단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우리 여자 아이들은 뭐라고 노래했더라? 

그밖에 우리한테 참새 시리즈, 최불암 시리즈가 있었던 것 처럼 그들에겐 벌써 병아리 씨리즈, 바보 씨리즈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 더, 남자들의 특성은 세계 공통적인 것 같은 글이 있어서 책에 쓰인 그대로를 여기 소개하기로 한다. 

'속옷에 대해, 특히 교사들의 속옷에 대해 많은 고찰이 이루어진다. 
대상은 항상 여자 교사들의 속옷에 한정된다. - 중략 - 

남자아이들은 원숭이 얼굴을 흉내 내면서 이런 노래를 부른다.' 

나는 영국을 볼 수 있고,
프랑스를 볼 수 있어.
나는 네 속바지를 볼 수 있어. 

이런 것도 있다. 

나는 몰라요, 나는 상관도 안 해요.
나는 안 입어요, 나는 속옷을 안 입어요. 

무식한 놈들...
우리는 적어도 저렇게 대놓고 저런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단지 중학교 때 어떤 친구가 여자 미술 선생님 치마 속을 거울로 비춰보다가 걸려서 그 여선생님한테 허벌나게 터졌다는 이야기는 기억이 난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