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Midnight Peak

진승할배 2020. 11. 6. 16:27

벌써 몇 차례 눈이 내렸고 아파트 단지 앞 작은 호수는 꽁꽁 얼었다.
그런데 아직 인디언 썸머도 아닐 건데 지난주에 갑자기 날이 풀리면서 얼었던 호수는 녹았고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싼지브와 마지막 산행을 하고 그다음 주에 싼지브가 앞으로 겨울에는 산행을 안 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아마도 네번째 Ha Ling Peak을 다녀와서였을 것이다. 싼지브 말이 어머니와 여동생에게서 자기 와이프에게 엄청난 압박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위험한 산에 가지 못하게 하라고...
그 말을 듣고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내가 이렇게 싼지브를 데리고 산에 가도 되는 건지 만약에 싼지브가 산행 중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 건지.
사실 싼지브는 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산에 가는 셈이다. 산에 대한 지식도 없다. 그러니 산행지도 내가 일방적으로 정한다.
그런데 만약 산행 중 사고라도 생기면 내 책임은 얼마만큼일까. 
일반 산악회라면 얘기가 다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산악회가 정관도 있고 정관에 산악회의 목적과 회원의 책임 등을 규정하고 자발적인 동호 활동 임을 명시하고 회원의 산악회 활동 중 일어난 사고에 대해 본인이 전적으로 책임진다고 명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전에 여기 산악회가 생겼을 때도 정관을 만들고 또 그걸 영어로 번역도 하고 변호사에게 공증도 받았다고 회장단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또 내가 산악회 카페를 만들었을 때도 카페 홈페이지 제일 첫 머리에 산악회 활동은 각자의 개인 의사로 활동을 하며 산행 중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 산악회는 일절 민형사상 책임이 없다고 명시하라고 회장단으로부터 부탁을 받았었다.
산행이 정말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경쟁적으로 준비해서 의기 투합해 산에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면 그건 누구 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기 곤란하겠지만 
어느 한사람이 일방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을 데리고 가서 사고가 났다면 그건 좀 얘기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늘 말하지만 록키엔 쉬운 산이 없다. 시즌에 따라 또 그 날 날씨에 따라 언제든지 위험은 상존한다. 
매장에서 고객이 미끄러져 넘어졌을 때도 'Wet Floor' 워닝 싸인이 있고 없고에 따라 매장의 책임도 크게 달라진다고 하니 나도 여기에 크게 워닝 싸인을 붙여야겠다.
나를 따라 산에 가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지 환영하지만 산행 중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며 동행자인 나의 책임은 없다고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같이 산에 가겠다고 무조건 산에 데리고 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산우회 산행중에 사고가 일어났을 때 복수형에게 고소하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까? 복수형도 빨리 워닝 싸인 하나 붙이세요. ㅋㅋㅋ

아침에 집에서 출발하면서 무언가 두고 가는 게 있는 거 같아 문 앞에 서서 한참을 생각해도 생각이 안 나 그냥 출발했다. 
하이웨이에서 옆을 지나치는 트럭 운전사를 보고 모자를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 산행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아 어제 이미 털모자를 배낭에 넣어 두었으니 챙모자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아침에, 준비해논 겨울 바지를 입었다가 너무 두꺼운 거 같아 일기예보를 다시 확인하고 여름에 입던 바지로 갈아입었다. 복장도 그렇고 장비도 그렇고 산행 준비하기 애매한 시즌이다.

차 소리가 멀어질 때쯤부터 트레일에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오고도 산에 온 사람들이 많았던지 눈이 다져져서 살짝 미끄러웠다.
다행히 날씨는 춥지 않았다. 시눅(Chinook)이 불어오는지 마치 온풍기를 틀어 놓은 듯 훈훈한 바람이 불었다.

Midnight Peak은 전에 몇 사람이 구룹으로 산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눈이 너무 와서 중도에 포기한 적이 있는 산이다. 
이번에 올라 가보니 그 때 중도에 포기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가팔랐고 그때는 누구도 아이젠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때의 교훈을 생각해서 아이젠을 챙겼는데 안 가져갔으면 큰 일 날뻔했다.

볼디 패스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정상으로 향했다.
미드나이트 픽은 높은 산은 아니다. 그래도 쉽지 않은 산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정말 가팔랐다. 높이만 보고 쉽게 도전할 산은 아니었다.
스크리 지역에선 차라리 눈이 많은 게 나았다. 무릎 깊이의 눈이라도 앞서 갔던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면 오히려 미끄럽지 않았다. 
반면에 살짝 눈이 덥힌 지역은 바닥이 안 보여 더 힘들었다. 
엄청 가파르지만 역시 낮은 산이라 오랜 사투가 필요한 산은 아니었다.

정상에 올라서기 직전에 동영상을 켜고 카메라 모니터만 바라보며 정상 능선에 올라섰다가 카메라 앵글을 바꾸면서 정말 깜짝 놀랐다. 
바로 발치 앞이 천길 낭떠러지였다. 얼마나 놀랐던지 내 비명이 그대로 녹음이 되었다. ㅋ 쫄보...
정상은 생각보다 좁았다. 정상에 바람이 어마어마했다. 마치 나를 떨어내려는 듯 미친 듯 나를 흔들었다. 
동영상을 찍는데 핸드폰을 놓칠 것 같아 사정없이 꽉 쥐어야 했고 한 똥배 하는 나도 날아갈 것 같아 주저앉아야 했다.
정상엔 생각지도 않게 정상 레지스터 통이 있었다.
수속(?)을 마치고 그냥 바람 속에 주저 앉았다. 오늘은 내내 구름 속에 있다 정상에 와서야 태양을 보았다.

바람은 심했지만 차지는 않았고 해는 따뜻했다. 그 바람 속에서 간식도 먹었다. 

오늘 미드나이트 픽을 오르면서 카나나스키스 트레일 초입 왼쪽의 산은 거의 다 올라간 셈이다. 
그동안 올라 갔던 봉우리들과 릿지들이 발아래 펼쳐져 있다. 개별적으로 올라갔던 코스들이 퍼즐 조각 맞춰지듯 하나의 지도로 되어 펼쳐져 있다. 
이 넓은 지역을 다 누볐으니 참 많이도 다녔다. ㅋ..

하산 길에 정상 바로 아래에서 살짝 눈에 덥힌 뜬돌을 밟고 자빠지면서 오른쪽 팔꿈치를 바위에 강하게 부딪히고 눈밭을 굴렀는데 어찌해볼 틈도 없이 10m쯤을 정신없이 미끄러졌다. 다행이 눈이 없는 스크리 지역에 걸려 멈출 수 있었는데 만약에 눈이 계속 이어졌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하니 아찔했다. 
옛날에 글리세이딩을 하다 픽켈로 제동 거는 법을 배웠던 생각이 났다. 한손으로 헤드와 자루 연결 부분을 잡고 다른 손은 자루를 잡아 가슴 앞에 뾰족한 날이 전방을 향하게 위치시키고 미끄러질 때 순식간에 몸을 돌려 엎드리면서 상체의 무게로 픽켈의 날을 눈 속에 박으며 제동을 하라고 배웠는데 정작 한 번도 써먹은 적은 없지만 이런 급 경사에서 미끄러지면 그런 방법 외에는 멈추게 하는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피해 하산을 했다.

산에 갔다 와서 Gillean의 가이드 북을 다시 찾아 보니 오늘 내가 오른 루트가 북릉 루트 임을 알았다. 그 외에도 서북릉과 서릉 코스도 있다고 한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산 이름에 관한 에피소드다. 미드나이트 픽은 아직 비공식 이름이긴 하지만 그 이름은 Rocky Mountain Ramblers 클럽의 리더인 Art Davis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1973년 10월 21일 그 일행이 이 산에 올랐다가 다른 하산 루트를 찾다가 절벽을 만나는 바람에 midnight까지 그들의 차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오지 못해서 그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난 미드나이트는 커녕 5시간 35분 만에 모든 산행을 마치고 오후 6시면 에드먼턴에 도착할 수 있을 테니 내가 이름을 붙인다면 Early Backhome 마운틴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시간이 널널하니 에드먼턴에 도착하면 하산주라도 한잔 해야겠다.
주님을 생각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ㅋㅋㅋ

아주 가는 사람이 약속은 왜 해~
눈멀도록 바다만 지키게 하고~
사랑했다는 말은 하지도 마쎄에요~
남자는 다그래!!

 

 

 

Baldy Pass Trail 주차장. 씨즌이 끝난 월요일이라 아무도 없다. 가운데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Midnight Peak.
지난 토요일 새벽 썸머 타임이 끝났는데 아직 시계의 시간을 안바꿔서 1시간이 늦다. 정각 9시에 산행을 시작했다.
볼디 패스 트레일은 Creek Bed를 따라 올라온다. 크릭 끝에서 올려다 본 미드나이트 픽. 왼쪽 능선이 서북릉으로 생각된다.
크릭 끝에서 돌아 본 모습. Nakiska 스키장과 그 오른쪽 첫번째 봉우리부터 Mt. Allan, Mt. Collembora 그리고 오른쪽 큰산이 Mt. Lorette.
볼디 패스 트레일에는 제법 눈이 있었다.
볼디패스 정상에서 Mt. Baldy South로 오르는 길.
볼디 패스의 높이. 약 400여 미터를 1시간 15분만에 올라왔다.
볼디 패스에서 미드나이트 픽으로 오르는 길.
Mt. Baldy. 오른쪽부터 Mt. Baldy South, Mt. Baldy 그리고 왼쪽이 Mt. Baldy West.
높이를 올림에 따라 마운틴 볼디가 달리 보인다.
자 이제 시작이다.

 

저 건너 하얀 눈에 덮힌 능선이 서북릉으로 보인다.
Gillean의 책에는 dark grey zone이 ankle breaker 존이라고 했는데 눈이 덮혀 정확한 색깔은 볼 수 없지만 아마도 이 지역을 말하는 것 같다. 난 이 지역에서 뜬 돌을 밟아 발목이 아니라 elbow를 부러뜨릴뻔 했다.

준회씨가 앞뒤에 필요없는 부분을 잘 트리밍해 주었다. 준회씨 땡큐~~

 

West Ridge
마운틴 볼디가 작은 산처럼 보이지만 마운틴 볼디는 전체가 바위산이라 굉장히 위험한 곳이 많은 산이다.  전에 산악회에서 이 산을 간적이 있는데 자일을 준비해 갔었고 실제 산행중에 두번 자일을 풀었었다.

 

 

나키스카 스키장 오른쪽 뒤로 Allan과 Collembora 사진 한 가운데 제일 높은 봉우리는 Peter Lougheed. 앞쪽에 큰산이 Wasootch(G8) Peak
앞에 능선이 Pocupine Ridge 그 뒤가 Wasootch Ridge.
스카이 라인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Baundary Ridge. 오른쪽으로 포큐파인 릿지와 와수치 릿지로 연결된다.
오늘은 실제 정상의 높이와 크게 차이가 나는것 같지는 않다. 약 970m를 올라왔다.

 

 

Mt. Lore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