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Kidd ( 2020년 7월 27일 )
일요일 오후 아무 일도 없이 코피가 터졌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수면제 반알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배낭을 꾸리면서 아이젠을 넣었다 뺐다 다시 넣었다.
산에 가는 날 아침, 평소 알람 소리에 잘 일어나는 편인데 두 번째 알람을 듣고야 겨우 일어났다.
Galatea Lake Trail 주차장에 도착해서 설사를 했다.
아침에 늘 하던대로 레드디어에서 맥도널드 표 브리또 두 개와 커피 한잔을 한 게 다였다. 정말 드문 일이다.
모처럼 차가 가득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하지만 나랑 같은 산에 가는 팀이 한 팀이라도 있을지 의문이었다.
마운틴 키드로 가는 걸음이 무겁다. 컨디숀이 안 좋았다.
어떤 산은 보는 위치에 따라 전체가 다 바위로만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산이 있다.
2주 전 사고가 나서 한 명이 죽고 두 명이 다친 얌누스키가 그렇고 이 마운틴 키드도 그렇다.
가파르고 험할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시작부터 폭포 옆을 타고 오르는 바윗길이다.
가뜩이나 몸이 안좋은 때문인지 다리가 떨린다.
1시간 40분을 오르는 동안 벌써 두 번을 쉬었다. 세 번째 쉴 때 바위에 기대앉아 그대로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뙤약볕 아래 온통 모기에 뜯기는 것도 모르고 30분 넘게 잠들었었다.
그때가 11시 20분이었다. 너무 탈진했나 싶어 소금을 꺼내 티스푼 하나 분량의 소금을 먹었다.
기운은 없지만 입맛이 없어서 귤과 물만 먹었다. 다시 1시간을 더 올라 갔는데 점점 더 어지러워지고 헛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또 소금을 먹고 이번엔 배낭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정상엔 못 갈 줄 알았다. 그래도 올라 갈 만큼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점점 더 가파라졌지만 못 올라갈 만큼은 아니었다.
내 시계의 고도계가 잘 못 되었는지 많이 올라온 것 같은데 아직도 2300m였고 2시 30분이었다.
물 세병을 준비했는데 이제 반병만 남았다. 거기서 포기하기로 했다. 1500에서 시작했으니 그럭저럭 800여 m는 올라왔다.
어떤 가이드 글에 눈을 이용해 오르려고 early season을 택했다는 글을 보았다. 아마도 지긋지긋한 스크리 보다는
눈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 아이젠을 준비했다가 출발 직전에 뺏다.
그 글에 눈 위로 오르기 전에 avalanche의 위험이 있는지 잘 관찰하라는 경고가 있었는데 내가 눈사태의 위험을 판단할 능력도 대처할 능력도 없을 거 같아 차라리 힘들어도 안전한 스크리를 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여름에도 아이젠은 필수였다. 눈을 피해 오르는 길이 없었다. 딱딱하고 미끄러운 눈 사면을 오르느라 고생을 많이했다.
솔직히 Mount Kidd를 등반하기로 하고 걱정이 많았다. 지지난 주 사고도 그렇고 지난주에는 유명한 콜롬비아 아이스 필드 설상차가 전복되는 사고도 있었다. 사고의 위험은 늘 상존한다.
오늘 지나친 근심과 긴장이 위장 장애를 일으키고 몸을 아프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옛날부터 들은 말이 시골 영감 서울 와서 고층빌딩을 올려다 보면 어지럽다고 한다.
난 그 말이 시골 양반 놀리려고 꾸며낸 말인줄 알았다.
근데 이제 높은 곳을 올려다 보면 진짜 어지러움을 느낀다. 아마도 내가 시골 사람이 되었거나 영감이 된 게 틀림없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해야지 다리가 떨릴 때는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맞는 말이다. 등산도 어지럽지 않을 때 해야지 어지러움을 느끼면 집에서 손주나 볼 나이가 된게 틀림없다.
내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