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zen Lake (2019년 7월 28일 - 29일)
산에서 야영을 한다고 다음날 산행시간이 길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경험으로 알았다. 호텔에서 묵어도 마찬가지다.
들인 돈이 아까워 잠만 자고 일찍 호텔을 떠나기는 너무 아쉽다.
다만 산 가까이에서 자면 잠은 조금 더 잘 수 있는 건 확실하다.
오늘은 작정하고 야영장에서 아침에 게으름을 피기로 마음을 먹었다. 프로 산꾼도 아닌데 뭐 죽기 살기로 산행을 할까 싶었다. 그렇다고 산행을 안 할 수도 없어서 아주 쉽고 짧은 산행을 골랐다.
레이크 트레일은 조금 더 나이 먹고 다리 힘없을 때 갈려고 아껴두는 트립이 많다. 이번에 간 Frozen Lake Trail도 나중을 위한 트립이었는데 늙어서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Gillean의 가이드 북은 다 좋은데 영어가 너무 어렵게 쓰여있는 게 흠이다. '알라뷰' 같이 3 형식 문장이 한계인 내게 간목, 직목이 나오고 목적 보어가 나오면 이제 글씨는 날아가고 그림(사진)만 보는 그림책이 되고 만다. Gillean은 또 단어도 어디서 한번 들어 보지도 못한 어려운 단어만 골라 쓴다. 진짜 더럽게도 어렵다.
그러니 어려운 영어로 설명 해 놓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산속을 짧은 영어 실력으로 이해를 해서 그걸 머릿속에 그려 넣어서 실제 산행지에서 그나마 코스를 찾아간다는 것만도 내가 대단하다. ㅋㅋ..
이번에도 올라가고 내려오는 길 모두 헤매느라 수지한테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Gillean이 한페이지 반에 걸쳐 장황하게 설명한 등산코스를 나라면 단 두세 줄에 설명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엘크 패스 주차장에서부터 시원하게 뚫린 비포장 신작로를 그냥 무작정 걸어 엘크 레이크(Elk Lake) 표지판을 따라 가면 끝이다.
너무 쉬운가? 그러나 사실이다. 그냥 엘크 레이크 표지판이 나올 때까지 걸으면 끝이다.
그다음부터는 표지판도 잘 되어있고 길도 외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그걸 희한하게 꼬아놔서 더 헷갈리게 만들어 버렸다.
Frozen Lake trail은 알버타 주와 B.C(브리티시 콜롬비아) 주 경계에 위치한 트레일이다. 더러 차를 타고 주 경계를 넘어 B.C 주 산을 산행한 적은 있었지만 내 발로 주 경계를 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호수 산행이지만 호수는 못봐도 좋은데 내 발로 주 경계를 넘어 보고 싶었다. 그놈에 주 경계를 찾는다고 헤맸다. 주 경계가 산 능선을 따라 나누어졌을 거라는 혼자의 판단으로 엘크 패스의 고갯마루가 경계일 거라고 생각했고 거기에 당연히 주 경계 표시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가 걸은 Power Line(송전선) Road 가 엘크 패스를 넘는 길이 아닌지 아니면 주 경계는 맞지만 표지가 없었는지 결국 30여분을 헛걸음하고 말았다.
주 경계는 고원의 분지 한가운데를 지나갔고 언덕으로 이어진 주 경계는 능선도 아니었다.
아무튼 주 경계의 B.C 쪽에는 여기서 키오스크(Kiosk)라 부르는 안내 표지판도 서있고 코스 표지판도 여지껏 봐왔던 알버타주의 것과는 확연히 다르게 잘되어 있었다. (알버타주는 공식 루트라 해도 정말로 표지판에 인색하다)
가이드 북에는 오늘 고작 493m를 올라가는 산행이다. 비록 비포장 신작로를 약 4km 걸어야 하지만 정작 산길은 2.5km 밖에 안 되는 짧은 산행이다. 주 경계 표시가 있는 곳에서 작은 고개를 넘으니 책에 ooze라고 표현해 놓은 습지 형태의 분지가 나오고 그 분지를 건너면 짧지만 본격적인 가파른 언덕이 나온다. 그 언덕을 넘어서면 산행 시작부터 멀리 보이던 Mt. Fox가 압도적인 모습으로 눈 바로 앞에 훅 튀어나와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그 깍아지른 절벽 아래 진초록의 Frozen Lake가 아름다운 들꽃에 둘러싸여 다소곳이 앉아있다.
Frozen Lake는 이름 그대로 1년 중 9개월이나 얼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Gillean도 7월 말에 산행을 하는 게 좋다고 했다. 또 여기는 Grizzly bear 가 많이 나타나는 곳이라고 하는데 1998년에는 17인치나 되는 발자국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그리즐리 곰의 발자국인지 싸스콰치(Sasquatch)의 발자국인지는 아직도 모른다고 한다.
영어의 F는 우리말로 정확한 발음이 없다. Frozen Lake도 프로즌 레이크라 해야 될지 후로즌 레이크라 써야 될지를 몰라 정확한 의미의 전달을 위해 영어로 썼다.
여기 살면서 토종 한국인인 오리지널 갱상도 싸나이를 만난 일이 있었다. 말 중에 그가 피프티포를 말했는데 처음에 내가 못 알아 들어서 서로가 몹시 당황한 적이 있었다. 물론 54를 뜻하는 말인데 그의 발음이 얼마나 부드럽던지 내가 못 알아 들었다.
F는 좀 강한 발음이다. 그래서 F로 시작하는 여기 욕을 할 때도 좀 강하게 해야 맛깔(?) 난다.
근데 그 오리지널 갱상도 싸나이는 욕도 부드럽게 "팍" 혹은 "확" 그럴 거라 생각하며 웃은 적이 있다.
오늘 하산 길에 가파른 내리막 길에서 발이 꼬이면서 순식간에 앞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오른쪽 턱 밑과 쇄골에 상처를 입고 왼쪽 팔뚝 옷이 찢기면서 엘보우 안쪽에 상처가 생겼고 오른쪽 팔목이 시큰거린다.
아주 우스운 산행에서 우스운 꼴을 당한 셈이다. 이럴 땐 정말 그 갱상도 싸나이가 저절로 생각난다.
진짜 확! 팍!! 이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