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NIhahi Ridge (2019년 6월 30일 - 7월 1일)

진승할배 2020. 5. 5. 03:24

  지난 100년간 세계의 연간 자연재해 사망자 수는 어떻게 변했을까?
A. 2배 이상 늘었다.
B. 거의 같다.
C. 절반 이하로 줄었다.

조금 뜬금없긴 하지만 내가 던진 질문은 아니다. 한스 로슬링이라는 스웨덴 의학자가 물은 질문이다.

 


지난 2-3주 동안 에드먼튼엔 하루같이 비가 내렸고 날은 추웠다. 그래도 연휴는 돌아왔고 한국에서 분양받아 온 별장(?)을 이용해 볼 좋은 기회라 생각되었다.
다행히 산에 가는 날 날씨가 좋았다.

이번에 갔던 니하히(Nihahi) 릿지 트레일은 2014년도 에드먼튼에 있는 산악회의 운영을 맡았을 때 첫 산행지였다. 
하지만 그때는 눈이 많아서 중도에 포기했어야 했었다.
니하히 릿지는 밴프 국립공원에서 남쪽으로 약 100여 km 떨어진 Bragg Creek Provincial Park 안에 위치해 있다. 주립공원이라고 무시하면 곤란하다. 비록 니하히 릿지의 높이(2,377m)는 낮지만 바윗길이라 길도 험하고 고도감도 높을 뿐 아니라 주변엔 3000m 급 산도 있다. 록키는 록키다.

밴프로 들어가는 1번 하이웨이에서 왼쪽으로 빠져 브래그 크릭으로 들어가는 길은 왠지 경춘선 국도에서 가평으로 들어가는 길을 닮은 느낌이다. 
가평천 주변 만큼은 아니어도 엘보우 강변을 따라 Day use parking lot에는 연휴를 맞아 나들이 인파가 넘쳐났다.

널찍한 캠프싸이트에 내 텐트는 좀 초라한 느낌을 준다. 그래도 내꺼라 좋다. 내꺼... ㅋㅋ
내 기억에 내가 처음 사용 해 본 텐트는 윔퍼텐트였지만 내꺼는 아니었다. 내 텐트로 소유한 건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애들 어릴 때 산 게 처음이었다. 콘도를 살 능력은 안되었으니까. ㅋㅋ
그게 코오롱 4-5인용인데 30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건재하다.

얼마전 명숙 누님하고 캐나다 원정 얘기를 할 땐가 요즘은 개인 텐트를 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러고 얼마 후 산우회가 어디 산행을 갔는데 모두 각자의 텐트를 가져와서 캠핑하는 사진을 찍었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원색의 앙증 맞게 작은 텐트라니.
옛날 어느 장기 산행 때 어떤 후배가 배낭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앞으로 감자는 안 먹을 테니 제 몫의 감자를 버리면 안 되겠냐고 물은 후배가 있었다. 그 후배가 아직도 산에 다니고 이렇게 가벼운 개인 텐트가 있다는 걸 알면 뭐라고 할까? 더 이상 선배를 위해 감자를 지거나 텐트를 짊어질 일은 없어졌다.

수지가 준비한 바베큐 고기는 완벽 그 자체였다. 오랜만에 정말 맛있는 바비큐를 먹었다. 물론 굽기는 내가 구웠다. 잘... ㅋ
저녁 식사 후 엘보우강 상류를 따라 산책을 나섰다. 엘보우강 상류를 Little Elbow River라 부르는 모양인데 강의 모양이 홍천강을 닮은 느낌이다. 강폭이 좁고 물살이 세다. 강을 따라 걸으니 강과 나란히 선 니하히 릿지의 전경을 보는 득템을 했다.

밤새 추위와 싸우느라 잠을 설쳤다. 전기장판을 준비했지만 Little Elbow River Campground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새 텐트라고 난방이 잘되는건 아니었다.

니하히 릿지는 Official and Unofficial 트레일이라고 소개되어있다. 그러나 어디가 그 경계인지는 애매하다. 확실한 건 위험하지 않은 지역까지가 Official 트레일 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ㅋ
산행을 해보니 니하히 릿지는 뚜렷하게 4개의 릿지로 구분되어진다. 

트레일 헤드에서 편안한 숲속길을 따라 30분쯤 올라가면 첫 번째 흙길 능선을 만나는데 나머지는 모두 바위 능선이다. 각 능선 사이에는 뚜렷한 고도차가 있고 능선을 곧바로 종주하려면 릿지 시작 부분의 바위를 scramble 할 각오가 돼있어야 한다.(내려오는 길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바위능선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회로를 타고 올라갔다. 의도했다기 보다는 바윗길에는 루트 흔적이 없었고 릿지 오른쪽 scree 지역을 트레버스 하는 길은 너무나 선명하게 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법 가파르고 힘든 우회로는 책에서 crux라 부르는 바윗길과 맞닥뜨리는데 네발로 바위를 올라서니 두번째 세 번째 능선을 우회해 세 번째 능선 끝 South summit 바로 밑 지점이었다.

거기서 가파른 바윗길을 올라 마지막 crux를 통과하니 South Summit이 있는 마지막 능선이었다. 정상부 능선은 Lady McDonald 만큼은 아니어도 좌우가 낭떠러지인 칼바위 능선이다. North Summit으로 보이는 또 다른 봉우리까지는 길이도 꽤 되었다. 여기까지는 수지여사를 어르고 달래서 잘 올라왔는데 South Summit에서는 한 발짝도 더 나가려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사진을 부탁하고 릿지 한가운데로 나아가서 포즈를 취하려고 뒤를 돌아보니 수지여사가 보이질 않았다. 그 바람에 정상부 멋진 칼날 능선의 사진을 찍지 못했다. 
현기증이 나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는데야 뭐라고 하겠는가?

정상 바로 밑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 간단한 간식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세번째 능선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저 멀리 능선 끝에서 직등으로 올라오는 무리가 보인다. 그제야 직등으로 루트가 있는 줄 알았다.
안 가봤으면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난데 이번에도 수지가 제동을 걸었다. 할 수 없이 세 번째 능선 타는 걸 포기하고 crux를 내려서서 세 번째 능선 바위 바로 밑으로 난 길을 따라 두 번째 능선으로 올라섰다. 두 번째 능선에서 세 번째 능선으로 올라가는 바윗길을 살펴보니 어렵진 않겠지만 제법 높아서 고도감은 있어 보인다.
두 번째 능선에서 마지막 능선으로 내려서는 길은 10여 m의 가파른 바윗길이지만 홀드가 많아서 어렵진 않았다.

체력이 빵빵하고 콘디션이 좋으면 같은 코스라도 쉬워 보인다. 
5년 전에 이 코스를 왔을 때는 굉장히 쉬웠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번엔 밤새 추위에 떠느라 잠을 설쳐서 그런지 허리도 너무 아프고 체력도 떨어져 힘든 산행이었다. 5년 전만 해도 젊었던 모양이다. ㅋㅋ

아주 오래전 젊은 나이에 이민 온 사람들을 만나면 이민 초창기에 고생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무용담 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첫 아이가 기기 시작하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때는 아기 봐줄 사람이 없어서 커다란 상자를 구해서 그 안에 아기를 뉘어 놓고 가게를 했다는 사람도 있고 밤일이 끝나면 버스가 끊어져서 영하 30도의 추위 속을 한 시간 넘게 걸어 집에 오노라면 거의 동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봤다. 그런 고생담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걸 보면 지금은 꽤나 자리를 잡아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그런 고생담 끝에 꼭 덧붙이는 소리가 있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그 말이 진짜일까? 그렇담 뭐가 더 좋았을까? 젊음이 좋았을까 아니면 꿈이 있어서 좋았을까?

앞에 한스 로슬링이 물은 질문의 답은 C라고 한다. 그 이유는 생활의 수준이 높아진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재해가 국가를 덮쳤을 때 가난한 나라 일수록 그 피해는 더 커진다고 한다. 그만큼 이제 세계는 어디나 생활수준이 많이 좋아졌고 앞으로도 계속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50년 전 우리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너무나도 좋아진 건 사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때가 좋았어"를 입에 달고 산다. 이유가 뭘까?
나의 경우에 있어서 그 옛날이 좋았는지 자신할 수는 없다. 누구나 처럼 좋았던 시절도 나뻤던 순간도 있었으리라.
인류는 늘 발전하니까 미래는 언제나 지금 보다는 나을거라는 한스 로슬링을 말을 믿고 또 다른 산행을 위해 배낭을 꾸린다. 다부지게...

 

니하히 릿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