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 River Wilderness Area (2019년 5월 20일)
알버타에서 빅토리아 데이(5월 20일)는 본격적으로 여름을 준비하는 시점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벌써 30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시작되었다던데 여기의 어제 밤기온은 영상 4도였다.
지난겨울은 유난히도 길었고 새로운 기록도 있었다고 한다.
작년 9월 중순에 눈이 내리면서 시작된 겨울은 올해 5월 3일까지 눈이 내려서 월 중 하루라도 눈이 내린 달이 처음으로 9개월 연달아 지속되었다고 한다. 또 그 기간 중 눈이 오거나 우박 등의 아이스 강우 현상이 일어난 일수가 200일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겨울만의 기록이라 해도 200일이면 자그마치 7개월 동안 눈이 내렸다는 이야기이다.
이제부터 5개월 남짓 짧은 여름이 시작하려는 참이다. 부지런을 떨어 한달에 두 번 산에 간다 쳐도 겨우 10번 산행할까 말 까다.
빅토리아 데이 연휴를 맞아 산에 가려고 맘을 먹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갈 만한 산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야 할 산도, 가고 싶은 산도 없으니 의욕이 한풀 꺾였다.
가이드 북을 뒤져 봐도 왠만한데는 다 가봐서 혼자 갈만한 산은 없었다. 궁리 끝에 가이드 북을 하나 더 사기로 했다.
산을 알아야 호기심도 생기고 호기심이 있어야 움직이는 동력도 생길 터였다.
일요일 오후에 장비점에 들렸을 때 점원이 폐점 시간이 15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알려줬다. 꼼꼼하게 읽어 보고 비교해서 책을 고를 시간은 없었다. 전에 참고했던 Gillean Daffern의 책을 집어 들었다. Gillean은 밴프 캔모어 주변 지역을 다섯 개 권역으로 나누어 등산 코스를 소개했는데 무식하게 높은 곳은 피하고 나 같이 날라리 산꾼이 다니기 좋은 곳을 소개해서 처음 샀던 Volume 1이 마음에 들어 들쳐 볼 것도 없이 Volume 2를 들고 나왔다.
새로운 곳을 간답시고 잠을 설쳤다.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한때는 설악산 지도를 그릴 수 있을 만큼 설악산을 빠삭하게 알던 시절이 있었다. 설악산을 많이 가서라기 보다는 매년 장기산행을 계획하면서 연구를 많이 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니어도 이제 캔모어 지역 록키는 어느 정도 방향 감각도 익히고 산이름도 익힌 정도는 되었다.
새벽 5시 산행을 출발 할 때 동쪽에는 해가, 남쪽에는 보름달이 떴는데도 기온은 영상 3도다.
1A 하이웨이에서 북쪽으로 빠지는 40번 하이웨이를 탔다. 언제고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길인데 드디어 오늘 처음 가게 되었다.
새 가이드 북을 처음 열었을 때 든 생각이 '거기도 산이 있었어?' 였다. 그러곤 있을 수도 있겠지 생각했고 그렇다면 거기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오늘 나선 길이다.
로키의 동쪽 변방 북쪽으로 갈수록 여지껏 봐왔던 록키 하고는 분위기가 다르다. 울뚝불뚝한 바위산은 안 보이고 초원지대의 언덕이거나 나무를 빼곡하게 품고 있는 작은 산들뿐이다. 만약에 가이드북이 이런 산을 안내했다면 오늘은 차라리 이 지역 지형과 길을 알아두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산행지가 가까웠다고 생각할 즈음 아주 작고 이쁜 다리를 만났다.
형태는 철골 트러스교인데 상판이 나무 널로 된 오래된 다리다. 그런데 오늘 이런 다리를 대여섯번은 지났다.
밴프와 자스퍼로 대표되는 알버타 록키는 강(river)도 밴프는 보우강, 자스퍼는 아사바스카 강으로 대표된다. 그 외에 강을 별로 많이 못 봤다.
그런데 이 지역을 둘러보니 아주 가까운 거리에 Waiparous 강과 Ghost 강이 근접해 있고 그 사이에 수많은 지류와 개천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등산객은 안 보이고 주로 Extreme sports를 즐기러 온 사람이 많은 거 같았다.
머드 바이크나 오프로드 4륜차에 진흙을 잔뜩 뒤집어쓴 차 말이다. 그 친구들은 오일 타는 냄새를 뿜으며 산으로 강으로 헤집고 다니면서 자연을 망가 뜨린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도 그들의 방식대로 즐길 권리는 있으니 내가 뭐라 할 권리도 없고 내가 싫으면 피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다리를 건너면서 비포장 길이 시작되었는데 갈수록 길이 험해진다. 아주 험한 비포장 길을 조심스레 운전하면서 오래 전 4륜 찦 끌고 가평의 오뚝이령을 넘고 평창의 닭목이 고개도 넘던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X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 꼴이 되었다. ㅋㅋ
Big hill(지명, 산이름 아님)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시야가 터지면서 왼쪽 절벽 아래로 Ghost 강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냥 오늘의 하이라이트이지 싶다. 기왕에 풍경 좋은 곳을 만났으니 늦은 점심이라도 먹으려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라면 물이 끓는 동안 고스트 강을 보며 상념에 잠겼다.
왜 하필 강이름이 Ghost 일까?
우리는 흔히 지나간 일이나 돌이 킬 수 없는 일을 '강 건너 갔다'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돌아가지 못할 강을 건너고 있는가. 다시 되돌아 건너갈 수 있는 강도 있을까?
불과 몇일 전엔 아주 젊은 영혼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너무나도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가여운 영혼을 위해 두손 모아 기도한다.
언제 또 다시 건널지 모르는 저 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에 어디선가 귀에 익은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싶다.
어제는 바람 찬 강변을 나홀로 걸었소
길 잃은 사슴처럼 저 강만 바라보았소
강 건너 저 끝에 있는 수많은 조약돌처럼
당신과 나 사이엔 사연도 참 많았소
사랑했던 날들 보다 미워했던
날이 더 많아
우리가 다시 저 강을 건널 수만 있다면
후회 없이 후회 없이
사랑할 텐데
하지만 당신과 나는 만날 수가 없기에
당신이 그리워지면 저 강이 야속하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