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lphur Mountain (2018년 3월 11일)
산에 가는 날은 늘 잠이 부족하다.
당연히 직업 때문인데 나의 야행성 체질과 무관하지 않다.
내가 하는 일(운전)의 특성상 8-9시에 정상적으로 시작하는 일은 드물고 대체로 새벽에 시작하거나 혹은 저녁에 시작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아침잠이 많은 나로선 새벽에 일어난다는 게 보통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라서 직업을 가질 때 저녁 혹은 밤일을 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평소엔 아침잠을 늘어지게 자서 좋지만 산에 가는 날은 새벽에 가기 때문에 밤일을 하는 나로서는 산에 가는 날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트럭 일을 할 때는 새벽 4시에 일을 끝내고 부리나케 집에 와 샤워하고 옷만 갈아 입고 새벽 5시 출발하는 산악회 팀에 합류하여 4-5시간 운전하고 산에 가서 산행을 하고 다시 그만큼 운전하고 집에 무사히 돌아왔으니 지금 생각해도 하느님 감사합니다다.
그러니 산행을 하면서 졸기도 하고 헤매기 일 수 였다.
먹는 게 힘이라고 하지만 잠이 보약이라고도 한다.
잠을 못 자고는 천하장사라도 힘을 못쓴다. 산에서는 역시 체력이 뒷받침되어줘야 하는데 말이다.
그나마 요즈음은 자유업을 하고 있으니 시간 조절이 좀 용이해진 편이긴 하다. 물론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지만 말이다.
지난 일요일 산에 갔던 날은 하필 썸머 타임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5시가 6시로 한 시간 당겨졌으니 잠도 한 시간 손해를 본 셈이다.
겨우 졸린 눈을 치껴 뜨고 윤철이를 기다리는데 약속 시간이 되어도 오지를 않는다. 전화를 해보니 그 때야 일어나는 거라고 한다. 윤철이도 썸머타임 시작하는 걸 몰랐다고 한다.
썸머 타임 시작 전 제 시간인 7시에 출발을 했다. 1시간을 손해 보았으니 산행을 변경하기로 합의를 본다.
오늘은 아주 쉬운 관광지로 산행을 하기로 하고 이왕에 망가진 거 두 홀아비가 모처럼 온천을 해서 때도 빼고 캘거리 E-Mart에서 시장도 보기로 합의를 한다. ㅋㅋ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밴프에 있는 썰퍼 마운틴은 관광용 곤돌라가 있는 곳이다. 한국의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를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라나.
권금성 케이블카 하니 생각나는 산행이 있다. 아마도 산우의 82년도 하계 장기 등반이었을 것이다. 산행을 같이 했던 면면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때 대장이 건대 일어과를 다니던 백형남이라는 후배였던 걸로 기억이 된다.(혹시 내 기억이 잘 못 되었으면 제 기억을 바로 잡아주기 바랍니다.)
대장의 인덕이 부족한 탓인지(ㅋㅋ) 첫날부터 비 때문에 고생이 심한 산행이었고 마지막 날 소청에서 야영하고 화채능선을 따라 내려와 권금성 산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산행이 아니라 케이블카 밑의 산길로 걸어서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산행이었다.
근데 마지막날 소청에서 쫑파티를 너무 거하게 하는 바람에 다음날 마지막 하산길이 고생길이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어떤 후배가(아마도 김홍명이라는 후배가 아니었을까 기억이 됨. ㅋ)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자고 제안을 했었는데 그럴 마음도 간절했지만 산악인의 자부심을 떠나 수중에 돈이 없었다.
썰퍼 마운틴 산행길도 딱 설악산 케이블카가 있는 산행길 처럼 곤돌라 케이블 밑을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곳이다.
벌써 몇년전에, '첫 번째 왔을 때는 걸어 올라가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왔고 두 번째 왔을 때는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다가 곤돌라를 타고 내려왔고 세 번째 와서는 걸어서 올라갔다 걸어서 내려왔노라'라고 산행 후기를 썼던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로도 한두 번은 더 왔던 기억이 있는 걸 봐서는 한 대여섯 번은 왔으리라 싶다.
전에는 관광지이니 만큼 쉬엄쉬엄 쉬면서 2시간에서 2시간 10분쯤 걸려서 올라갔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은 마음 먹고 빠른 속도로 계속 치고 올라 가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체력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이유는 지난 한국에 갔을 때 산우들과 도봉산 쪽으로 산행을 갔던 날 동기인 희섭이가 날듯이 산행하는 걸 보고 만약 내가 희섭이 처럼 빨리 산행을 하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게 그런 질투심만으로 해결될리는 없는 법이 아니겠는가. 딱 1시간이 한계라는 걸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조금 서둔 덕분에 1시간 47분 만에 정상에 설 수는 있었다.
이제 바로 내려가서 두번째 미션인 온천욕을 하면 될 판인데 오늘 썰퍼 마운틴이 처음이라는 윤철이가 완전히 관광객 모드로 변해서 정상부 여기저기를 돌아보기 바쁘다. 그렇다고 재촉할 수도 없고 혼자 기념품점에 들어가 진열된 책을 뒤적이다 트레일 가이드 책을 산다고 피 같은 달라를 쓰고 말았다. ㅋ..
오늘은 성격이 느긋한 윤철이 때문에 온천욕은 못했지만 대신 오랫만에 대처에 나왔으니 장도 보고 짜장면도 한 그릇씩 사 먹고 다시 시골로 내려가기로 했다.
82년도의 산행때의 일이다. 설악동에 내려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다들 지치고 배는 고픈데 그야말로 짜장면 한 그릇 사 먹을 돈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 배낭 안에 비상식으로 가져간 미숫가루가 남은걸 기억해 내고 지금은 하늘나라로 간 환식이가 코펠 한가득 물을 받아다 미숫가루를 타서 다들 시원하게 들이켠 것까지는 좋았는데 버스가 한계령을 넘을 때쯤부터 다들 배를 부여잡고 난리가 났었다.
원통에 도착하자 마자 다들 화장실로 내달리기 바빴고 홍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환식이가 공중 화장실 수도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 온 것이 화근이었는데 아마 그 물이 탱크에 오래 받아져 있던 물이라 대장균 덩어리였던 모양이었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도 한동안 고생하다 정로환을 먹고야 진정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산행에 있던 친구들 중에 누군 학교 선생님도 되고 누군 중소기업 사장님도 되고 또 누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친구도 있으니 참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멀리 하늘나라로 이민 간 윤환식이 많이 그리운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