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Maligne Lake... Maligne Canyon (2018년 2월 19일)

진승할배 2020. 5. 4. 10:30

  산행 전전날 산악회 부회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산악회 단체 카톡방에 올려진 산행 공지를 보고 전화를 해온 터였다. 
같이 산행을 하겠다는 전화인 줄 알았는데 어디로 산행을 갈 거냐고 묻고는 자스퍼 쪽으로 가면 안 되겠느냐고 한다. 

이유인즉슨 자스퍼에 있는 '김치 하우스'라는 식당에 물건 좀 가져다줄 수 없냐는 거였다. 
'김치 하우스?' 자연히 지난여름이 생각이 났다. 성욱이 덕분에 공짜로 푸짐한 저녁을 얻어먹은 곳이다. 
세상이 좁다는걸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다. ㅋㅋ
암튼... Why not?
흔쾌히 대답은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이제는 내 고민이 시작되었다. 
자스퍼는 밴프쪽에 비해 등산 정보도 미미하고 또 한겨울에 만만하게 올라갈 산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하다 말린 레이크 뒤에 Bald Hill이라는 작은 산이 생각이 났다. 낮은 산이라 여름에 5시간 운전하고 자스퍼까지 가서 산행하기에는 너무 억울한(?) 산행이다.

 

Baldy Hill Trail 입구 키오스크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산행 날 아침에 에드먼튼이 영하 22도다.
산에 가면 조금 나아질 줄 알았는데 자스퍼쪽은 갈수록 기온이 떨어진다. 엣슨(Edson)을 지날 땐 영하 26도였는데 자스퍼에 도착하니 영하 30도가 가깝다. '김치 하우스' 미션을 완수하고 말린 레이크에 도착하니 영하 32도다. 주차장에 눈이 많다. 차에서 내리니 바로 얼굴이 얼얼할 지경으로 춥다.
장비를 갖추고 11시 정각에 산행을 시작한다. 그런데 Bald Hill 트래킹 코스가 바리케이드로 차단되었다. 눈이 너무 많이 온 탓이리라. 바리케이드 왼쪽으로 Moose Lake Loop 6km 싸인이 있는데 코스 표지판에 난이도 표시가 있는 걸 봐서 아마도 크로스컨트리 스키 코스 같은데 제법 사람이 다닌 흔적이 뚜렷해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어 거기라도 한 바퀴 돌기로 한다.

 

왼쪽의 Baldy Hill 대신 아래쪽 초록색 점선 Moose Lake Loop를 돌았다.


코스는 Bald Hill 발치를 돌아 말린 레이크 남쪽 호안을 따라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그 추운데 양지 바른 호숫가에 눈을 다져 조그만 싸이트를 만들고 컵라면으로 점심도 먹었다.
뜨끈한 국물이 몸을 녹이고 마음에 여유를 갖게 해준다. 커피 한잔을 들고 호수 상류로 눈을 돌리니 온천지는 하얗지만 내 마음은 지난해 6월의 푸르른 호수 물을 가르며 저 멀리 호수 상류로 달린다. 열세 명의 초등학생들이 함께했던 그 시간...
저 위 상류쪽 이름도 기억 안나는 아름다운 섬을 보트로 돌아왔던 곳이다. 우현대장 부부가 선착장에서 사진을 찍던 모습이 눈에 선하고 속상했던 마음에 은미대장을 물에 떠밀려던 기억도 새롭다.
아름다웠던 기억을 뒤로하고 2시간 30분의 짧은 트래킹을 끝내고 오늘 두번째 코스로 이동한다.

 

 

 

 


겨울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곳.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아픈(?) 기억도 있는 곳이다. ㅋㅋ
다음 일정인 배 출항 시간은 아랑곳 없이 제멋대로 행동한 여자 친구들에게 짜증을 부렸던 곳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좋은 추억인데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하고 그냥 넘어갔을걸 하는 후회도 된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내 못된 승질머리 이야기다. ㅋㅋ
말린 캐년. 늘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며 멋있다고 하는 곳인데 물 위에서 올려다보면 진짜 환상적인 곳이다.
물 위로 와야하니 겨울에만 볼 수 있는 곳이고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곳이다.
지난여름 함께했던 13명의 어른이 초등학생들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겨울 모습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죽기 전에 그럴 기회가 있으려나? ㅋ..

 

Maligne Canyon 입구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옛날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오늘 산행을 두 부부랑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두 부부의 남자들은 경상도 분이고 여자분들은 강원도 출신이시란다. 나이들도 다 비슷비슷해서 공감 가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 당시 시골에 살던 그분들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교대 부곡 친구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중 기억나는 산꼴짝 보리 문딩이 심주택씨가 뻔데기 사 먹던 이야기 하나.
그 옛날에는 뻔데기를 신문지를 접어 꼬깔 모양으로 만든 용기(?)에 담아 주었는데 신문지에 스며든 뻔데기 국물이 아까워 신문지를 쪽쪽 빨아먹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건강하다는 얘기에 박장대소하고 웃었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이 남는다. 오히려 그 옛날 신문이 요즘의 신문보다는 덜 오염되고 안전하게 만든 건 아닐까? ㅋㅋ
오늘 산행은 김치하우스를 빌미로 추억 여행이 된 셈이다.
말린 레이크와 말린 캐년을 산행하며 지난여름을 떠 올렸고 어려웠을 때 얘기를 들으면서 초등학교 시절을 떠 올렸다.
과거도 그립고 친구도 그리운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