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Bow Lake... Bow Hut ( 2018년 2월 5일)

진승할배 2020. 5. 4. 09:33

  정월 대보름이 가까웠나 보다.
어제 밤 10시경 여기 말로 super moon이 오른쪽 귀퉁이를 기울인체 동쪽 하늘을 가득 메우듯이 떠 오르고 있었다.
그 달이 우리가 가는 길 정면 남쪽 하늘 위로 높이 떠 있다. 
높이 떠 있는데도 왠지 초라해 보인다.
날이 무지 춥다. 떠날 때 영하 32도 였는데 Leduc을 벗어나니 영하 36도를 가리킨다. 그래도 일기 예보상 록키의 기온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록키로 가는 차안에서 오늘 산행지를 결정했다. Bow Lake 위의 Bow Hut을 가기로 한다.
윤철이가 인터넷을 뒤져 왕복 15km 5시간 소요라고 알려준다.
"5시간? I don't think so. 그건 너 같은 날 다람쥐 얘길걸."
보우 레이크까지 가는 길도 멀고 눈도 오고 있으니 가는데까지만 가기로 합의를 하고 한시름 놓는다. ㅋㅋ

 

운전대를 윤철이 한테 맡겼는데 눈이 와서 그런지 굉장히 조심스럽다. 늦는게 흠이긴 하지만 내 맘에 꼭 든다.
록키마운틴 하우스 쪽으로 루트를 잡았다. 보우레이크 쪽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가는 길에 물을 준비 안했다는 이유로 산속에 홀로 서 있는 그로서리 가게에 들렀는데 한국 사람이 하는 곳이다. 지나다니면서 많이 본 곳인데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줄은 몰랐다. 윤철이 말이 인디언 리저브 지역이라 장사도 잘된다고 한다. 한국 사람이 안들어가 있는 곳이 없다더니...

 

한국인이 운영하는 작은 주유소겸 편의점

11시 42분에야 보우레이크 Num Ti Jah 주차장에 도착했다. 기온은 일기예보 대로 아주 좋아서 영하 12도. 그러나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시간대로라면 지금 부터라도 충분히 보우헛까지 다녀 올 수 있는 시간이긴 하다.
단 뛸 수 있는 체력이 된다면 말이다. 누군가 쓰던 여분의 스노우 슈즈를 윤철이 한테 건네주고 장비를 갖춘다.
11시 50분쯤 산행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마침 중국 관광객이 도착해서 오늘 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호수위를 걷는 윤철

넘티자 랏지로 들어 가는 길엔 이미 눈이 사람 키 높이다. 오늘 처음 스노우 슈즈 산행을 해 본다는 윤철이가 눈 위를 걷는 기분이 좋은지 연방 나이스를 외친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긴 호수를 가로 질러 상류쪽으로 가니 윤철이가 지나간 자국 위로 물이 차올라 슬러시 형태다. 순간 얼음이 얇은건 아닌가 긴장을 하지만 얼은 호수 위로 물이 흘러 들어오는 거려니 생각을 한다.
호수가 끝나고 곧 오르막이 시작이지만 그리 큰 언덕은 아니다. 오르막을 오르기 전 첫 휴식을 하고 간식을 한다.
육포를 꺼내서 칼로 반 자르려고 하니 윤철이가 "저 고기 안먹잖아요" 한다. 그제야 옛날 산악회 회식 때도 바베큐를 안먹던 기억이 떠 올랐다. 그러고 보니 윤철이를 참 오랫만에 만났다.
그러나 저러나 고기도 안먹는 친구가 저렇게 근력이 좋은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첫 휴식

 

숨차게 오르막을 넘고 나니 보우 폭포가 있는 커다란 벽이 우리를 가로 막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물이 흐르면서 얼은 얼음 기둥이 안보인다. 난 웅장한 물 기둥이 있어 빙벽하는 친구들도 있을 줄 알았다. 여름에 그렇게 거창하게 흘러 내리던 물줄기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1시 50분. 폭포 밑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윤철이가 점심을 준비하는데 가스 버너를 꺼낸다.
이 추운 날씨에 가스 버너로 물이 끓을까? 화력 좋다는 윤철이 말을 믿어 보기로 하고 지켜보기로 하지만 내심 될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왠걸?
가스버너 화력이 줄어들지를 않는다. 라면을 다 먹은 후 가스통을 살펴보니 4season mix라고 되어 있는데 Made in Korea다. 역시 메이드 인 코리아는 이제 세계 최고다. 그렇다면 이젠 굳이 무거운 휘발유 버너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암튼 또 새로운 걸 배운셈이다.

 

올라 오는 내내 지금 올라가는 길이 언젠가 여름에 왔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올라 갔고 올라가 보니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내려오는 길에 그 전에 왔던 길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 윤철이에게 계곡 있는 쪽으로 가자고 제안을 하고 계곡으로 가니 폭포는 꽝 얼어서 물도 안보이는데 계곡은 얼지도 않고 물이 흐른다.
지난번 산행 때 그 계곡을 건너는 아슬아슬한 바위길이 생각나서 겨울엔 어떤지 보고 싶었는데 그 바위가 굴러 떨어졌는지 도무지 계곡을 건널 수 있는 어떤 길도 보이질 않는다.
괜히 사람도 안다니는, 길도 없는 곳으로 윤철이를 이끌고 온 셈이 되었다. 왼쪽에 계곡으로 떨어지는 낭떨어지를 끼고 우리가 올라왔을 만한 길로 윤철이가 앞장서서 걷는다. 올라 올 때도 느꼈지만 윤철이가 앞장 서 걸은 스노우 슈 자국을 따라 걸어도 나는 종종 더 깊이 빠지는 것이다. 그래 윤철이 한테 체중을 물어보니 70kg이라고 한다. 무게가 더 많이 나간다는게 중력을 더 받는다는 의미인 줄은 알겠지만 사람이 안 다닌 길을 가려니 스노우 슈를 신었음에도 눈속으로 쳐박히기 일쑤다. 몇번을 눈 속에 가슴까지 빠져서 죽을 힘을 다해 겨우 빠져 나왔다. 스노우 슈즈가 눈위를 걸을 땐 부력을 주는지 모르지만 일단 눈속에 빠지면 거꾸로 눈밖으로 끌어 올리는데 더 많은 힘을 써야 함은 당연지사라 스노우 슈즈 신은 발을 꺼내는데 죽을 힘을 소비해야만 했다. 올라 갔던 길과 합류한 후 옷 속으로 들어간 눈을 털어내고 옷을 다시 잘 입으려고 하는데 마치 올림픽에 나간 우리나라 대표 유도 선수가 탈진해서 도복 조차 여미지 못하는 것 처럼 겨우 숨을 몰아 쉬며 허리띠를 졸라 맬수 있었다. 

 

고생 끝에 낙이라던가? 아니다 이럴 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더 어울릴듯하다. 아무리 스노우 슈즈를 신었다 해도 눈이 있는 곳 아무 곳이나 무작정 산행을 할 수 있지는 않다는 걸 알았다.
특히 바위가 많은 능선길, 커다란 나무가 많은 곳이 눈으로 덮혀 있는 곳은 굉장히 조심할 필요를 느꼈다. 바위길은 움푹 패인 곳은 눈으로 덮이고 바위 위의 눈은 바람에 날라가 전체적으로는 평평해 보이지만 바위가 없는 곳을 디디면 마치 크레바스에라도 빠진 듯 몸 전체가 쑥 빠져버리기 일쑤다. 또 커다란 침엽수 밑은 겨울에도 푸르른 솔가지 때문에 나무 바로 밑 기둥 부분은 눈이 잘 쌓이질 않는다. 그런데 나무 옆을 지나가다 나무 기둥 쪽으로 잘 못 디디면 그대로 나무 기둥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을 한다. 거기에서 2m 가까운 눈을 헤집고 올라오는데 눈이 자꾸 무너져 내려서 다시 눈 위로 올라 서는데 많은 체력을 소모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여인이 좋아한다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났다.
지난번 산행 때 건너가 보지 않았던 그 바위 길을 찾느라 괜한 윤철이를 고생시킨 셈이다.
결국 언제나 내가 선택한 길이 바르고 편한 길이었던 셈은 아닐까? 가지 않은 길은 잊는게 상책이라는 생각이다.
그나 저나 그 바위는 어디로 사라졌지? 계곡으로 떨어졌나?

 

저 벽 넘어에 Bow Hut이 있는데 바로는 못가고 사진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야한다.


눈을 헤치고 나오느라 지친 터에 보우 레이크를 가로 질러 내 차가 있는 곳으로 갈 생각에 앞 길이 아득하다.
레이크 위에는 눈만 쌓였다 뿐 장애물은 없다. 그런데 누군가 우리 앞 서서 산행을 한 일행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사람들의 자취를 따라 걷는다. 그게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넓직한 호수 위에 난 길이 산행 입구와 주차장을 잇는 일직선이 아니다. 왼쪽으로 휘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오고 오른쪽으로 삐딱하게 가다 왼쪽으로 돌아 온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생 길도 이 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늘 바로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도 모르게 삐뚤어 질 수도 있는게 우리가 사는 길이 아닐까 싶다. 누구도 똑바로 걷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 해 떨어지는 호수위를 걷는다.
발걸음이 빠른 윤철이는 벌써 몇 백미터나 앞서서 걷고 있고 나는 윤철이가 짚은 폴 구멍에서 나오는 황홀한 형광색 빛을 따라 걷고 있다. 저 푸르스름한 빛이 진짜 눈의 색깔인가?

 


'고생 끝 행복 시작'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어디 가서 무얼 맛있는걸 먹을까를 생각하는 찰라 차가 눈속에 처박히고 말았다.
넓찍한 주차장 아무데나 갈 수 있는지 알았는데 내려서 보니 주차장 한쪽으로만 눈을 치우고 한쪽은 무릎도 빠질 눈이 그대론데 온 사방이 입체감이 없는 하얀 눈으로 덮혀서 엉뚱한데로 차를 몰았다.
변명할 여지 없이 내 잘못인데 젊은 윤철이가 혼신의 힘으로 밀어서 겨우 나올 수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캘거리에서 저녁을 사주겠다고 하니 집에 기르는 개가 자기가 안가면 쉬를 안해서 빨리 집에 가야 된다고 한다.
헉! 그럼 그 힘든 산행을 하고 하산주도 없이 그냥 집에 간다 말이야? 
에효~ 역시 산행은 아니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