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승할배 2015. 7. 12. 09:00

기어코... 앨범을 찾아내고 말았다.

궁금한건 못 참으니까.

한국 같았으면 책장 한켠에 꽂혀있을 앨범이지만 이곳으로 옮겨 온 이후론 이삿짐 박스속에 고스란히 모셔져있던 앨범이다.

과거를 기억하고싶지 않아서일까 아님 앨범을 꺼내볼 마음의 여유마저 없어서일까.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아빠 책, 앨범' 이란 타이틀을 단 박스속에 있던 앨범이 10여년만에 빛을 보게된 셈이다.


이런걸 플라시보 효과라고 해야하나?

모든 친구들이 안다고하니 나도 알꺼 같고 앨범을 펼치는 순간 그 속의 친구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물론 여자 동창들까지도. 아니 어쩜 나는 앨범을 펼치는 순간 다시 13살짜리 초등학교 6학년생으로 돌아갔는지도 모른다. 많은걸 간직한 앨범. 그러나 아직은 그안에 숨겨진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아내진 못한다. 마치 이곳 알버타에 숨겨진 원유를 아직도 다 찾아내지 못하는 것 처럼.


그런데 이건 무슨 현상일까.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피그말리온의 여인 처럼 그들이 빛바랜 사진으로부터 툭 튀어 나온다.

아니 내가 진짜로 그 애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애란이가 튀어나온다. 그런데 뒷모습이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 허벅지까지 내려와 찰랑거리는 감청색 원피스 교복, 맨살 위에 신켜진 레이스가 달린 하얀 양말... 

물론 위는 한번 접혀있다.

백경희가 나한테 한바탕 쏟아붓고 눈을 흘기며 돌아선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 저 맨 앞줄에 앉아있던 키작은 은희가 그런 나를 돌아보며 웃는다.

어! 이게 현실은 아닐건데...


눈을 뜨니 앨범이 내 가슴위에 엎어져 있고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 위의 램프가 켜져있다.

어제 마신 얕은 취기가 잠을 더 잘 들게했는가 보다.

꿈이었나? 

아무려면... 그렇게 해서라도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