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Black Prince Cirque Trail
산행 날 아침,
습관적으로 베란다 문을 열고 밖으로 고개를 내미니 비는 안온다.
그런데 문득, 청아한 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이니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오랫만에 듣는 새소리에 한결 기분이 밝아지고 이젠 완연한 봄인가 싶다.
지난 한주내내 비가 오고 날이 궂었다.
오늘 산행지인 카나나스키스 지역은 지난 주 내내 눈이 왔었다는데
오늘도 눈이 예보되어있다. 시산제도 있는 날인데 날씨가 염려스럽다.
산행 집결지에서 첫번째 작은 사단이 일어났다.
온갖 시산제 음식을 준비해 오신 백부회장님이 차 안에 열쇠를 넣어둔채
차문을 잠궈버리셨다. 내 와이프였다면 벌써 내 잔소리에 숨이 넘어갔을
터이지만 워쩔겨. 부리나케 AMA에 연락하고 다른 차량 두대를 먼저 출발시킨다.
이른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다행히 AMA 차량이 30분도 안돼 도착했다.
레드디어 팀호튼에 도착해 먼저 떠난 회원들과 합류한다.
백부회장님이 아침 식사로 왕만두와 찐빵을 준비해 오셨다.
아침에 부회장님 차문을 못 열었으면 워쩔뻔 한겨.
그런데 팀호튼에서 두번째 작은 사단이 일어났다.
이길전회장님이 처음 오신분한테 나를 소개할 때 농담을 하신것을 두고
내가 '팩' 화를 내버렸다. 물론 이길전회장님은 나를 좋아하셔서 그런 농담을
하신것을 잘 알지만, 정작 본인인 나는 그런 칭찬이 내재된 네가티브 농담을
받을 만큼 잘하는 것도 없고 과분하다는 생각이니 그 농담이 진담으로
생각되어질 만큼 찔리는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암튼 그 순간 무안하셨을 이길전회장님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로키쪽 캐나다 하이웨이 1번에 올라서니 본격적으로 눈이 내린다.
철 들고 나서부터 무슨 큰 일만 하려면 날씨가 궂었던 기억이 있는 나는
시산제라는 푸른산악회 창립 후 모처럼 큰 행사가 나로 인해 궂은 날을
맞은게 아닌가 내심 미안하다.
이런 날씨에 예정된 산행은 가능한지, 또 눈속에 시산제는 강행을 할 수
있을지, 그렇다면 다른 차선책은 없겠는지 등등 심란한 마음으로 운전하다
세번째 작은 사단이 일어났다. 마음속으로 허트마운틴 입구에 있는 쉘터를
생각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우리의 원래 목적지 방향을 지나쳐 그곳으로
직행하고 말았다. 다행히 쉘터는 언제라도 사용이 가능함을 확인했지만
다시 차를 돌려 원래의 목적지로 10여분을 달려야했다.
카나나스키스 인포메이션 센터. 먼저오신 회장님 일행과 CN드림 신문사
김민식사장이 우리를 맞으신다. 에드먼튼에 있는 유일한 산악회지만
사실 아직은 지역사회에 큰 영향력이 있는 단체라고는 할 수 없는 작은
산악회의 시산제를 축하해 주기위해 달려와 주신 CN드림 김민식 사장의
열정과 정성에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회장님과 임원들과 상의해서 날씨에 상관없이 계획된 산행을 강행하기로 하고
산행지로 이동한다.
Mount Black Prince Cirque Trail. Black Prince 마운틴 밑에 있는 작지만
아름다운 빙하호수를 돌아오는 짧은 산행인데 밴프지역에 있는 공원중에 가장
깊숙히 자리를 잡고 있는 Peter Loughed Provincial Park에 위치하고 있는
그래서 에드먼튼에서 가기에는 좀처럼 쉽지않은 곳이다.
걱정한대로 산길에 아직도 눈이 많다. 더구나 최근에 내린 눈이라 다져지지도
않았구 오늘도 눈이 내리고 있다. 여기서 네번째 작은 사단.
최근에 내린 눈때문에 호수로 들어가는 트레일을 지나쳐 산 능선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능선으로 올라서는 길이 들어서고 보니
아주 좁은 계곡길이다. 겨울철 눈이 많이 오는 적설기나 여름철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는 특히나 피해야하는 길이 계곡길이다. 겨울에 적은 눈이라도 사태가
나면 탈출로가 없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길이다. 계곡 옆으로 눈이 1m도 넘게
쌓여있다. 다행히 경사는 가파르지 않았지만 오늘같이 눈도 오는 날은 항상
경계해야하는 산행길이다. 아름다운 빙하호를 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대신에 고도를 높여서 많이 올라갔으니 산행의 의미는 더 있다고 위안을 한다.
시산제라는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할 시간이다. 산길로 조금만 들어가도 눈이
쌓여있고 지금도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어 시산제 할 장소도 마땅치가 않다.
마침 주차장에 우리만 있어서 그냥 눈속의 주차장에서 시산제를 강행하기로 한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고작 600m 내외의 산 정상에서 시산제를 하는데 우리는 이미
1825m의 높이에서 시산제를 하니 한국의 어느 산보다도 더 높은 곳에서 시산제를
하는 셈이다. 백두산, 한라산은 빼고... (그 산 정상에서 시산제하는 산악회도 있을까?)
회원들 모두 시산제는 처음인듯 보이지만 시산제도 제사는 제사. 우리 회원들은
틀림없는 한국 사람들이다. 백두대간님의 아이디어로 눈위에 제단이 만들어지고
척척 모든 회원들이 손발이 맞아 아주 쉽게 젯상이 차려졌다.
님의침묵 부대장의 사회로 마치 예행연습이라도 했던 듯 아주 매끄럽게 시산제가
진행된다. 나는 그저 엄숙한척 서있기만 하면 되더라 이 말씀.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오늘 일어난 것 같은 작은 사단들이 더 이상은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하느님과 산신님께 기원을 한다.
1:29:300. 하인리히라는 사람이 사고에 대해 연구해 보니 한번의 큰 사고가
일어날 때는 그 전에 29번의 사람이 다치거나 기물이 파손되는 경고가 있고
그 경고 전에 이미 아차싶은 300번의 주의가 있다고 한다.
이번에 발생한 애가 끊어지도록 슬픈 세월호 사건도 무사안일, 사고불감증이
몰고 온 어처구니 없는 미개한 사고가 아닐 수 없다. 거기다 더 속 터질 일은
우리 국민을 아주 세계적으로 망신을 시킬려고 작정한 듯한 정부의 태도이다.
그러고도 뻔뻔하게 군림하는 이 정부를 아니 이나라 정치권 모두를 확 뒤집어
엎어야 할 일이다.
우리도 더 건강한 몸으로 더 오래도록 잘 살기 위해서 산에 가는 것인 만큼
첫째도 안전이고 둘째도 안전이 되야할 터이다. 오늘 4/300(삼백분의 사)라는
주의 신호가 있었지만 이미 우리는 299/300에 와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회원 모두가 더 조심하고 더 조심해야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시산제를 맞아 세월호 사건으로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영면한 우리의 아들, 딸들의
영혼들에게 대한민국의 어른의 한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
피에쑤
회장님 사모님.
덕분에 시산제 뒷풀이는 잘하였습니다.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밧뜨,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저희가 사모님한테 몹시 힘든 일을 남겨드린거
같아 참석한 모든 회원을 대신해 사과드립니다.
2014년 5월 3일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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