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Barrier Lake Lookout

진승할배 2014. 10. 31. 04:56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더니 이건 좀 너무하지 싶다.
오죽했으면 이번 호 알버타저널에 '4월 추위에 시민들이 뿔났다'고 기사가 났겠는가.
그 기사에 의하면 날씨가 추우면 우울증이 심해지고 스트레스가 깊어진다고 한다.
또 어른들은 소화불량등 각종 정신적인 질병을 앓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럴 때 일수록 고 김장호교수의 산(山) 수필집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라는 책 제목이 생각난다.

 

춘래불사춘하니 생각나는 말이 있다.
얼마 전 책에서 보니 요즘 한국에는 "혼불혼(婚不婚)"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결혼은 했으돼 결혼하지 않았다는 말인데
결혼식은 하고 혼인 신고는 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우선 결혼식을 하고 한 일년 쯤 살아보고 혼인 신고를 한다고 하는데
하도 결혼하고 일년도 안돼서 이혼하는 쌍들이 많다보니 여자들이
이혼녀라는 낙인이 찍히는게 싫어서 그렇게 한다고들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산악회 카페에 처음 회원가입하시는 분들이 그럴 것 같다.
'회원불회원'(?)이라고 해야하나? 우선 회원으로 슬쩍 가입을 해보고
기존 회원들의 태도나 산악회 분위기를 보고 마음을 결정할 것 같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간 본다고 해야 할텐데 이렇게 산악회에 관심은 있는데
선뜻 산행을 못하는 분들한텐 어떻게 꼬셔서 같이 산행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고민을 해도 '결론은 버킹검' 역시 그분들이 자발적으로 산행에
참석하시는 수 밖엔 없다. 산행에 참석해서 우선 직접 경험 해 보는 수 밖에는
없다는 말이다. 같이 놀아 보고 뭐 그래도 우리 같은 하이클라스(오해는 마시라.
우리가 노는 곳이 산이다 보니 클라스가 좀 높다. ㅋ..)가 싫으면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좀 건방진가? ㅎㅎ..
그래도, 지난 주 렛츠고 에드먼튼에 산행 광고를 한 이후에 무려 10명이 넘는 분들이
회원가입을 해 주셨다. 이럴 때 우리 기존 산악회 멤버들이 새롭게 회원가입하신
분들께 따뜻한 환영의 말씀 한마디라도 해주시는 배려는 좀 필요할거 같다.

 

이번 산행엔 지난 주간에 새로 가입하신 분들 중에 무려(?) 세분이나
산행에 참석하셨다. 우리 산악회가 창립을 한 첫해를 빼고는 신입회원이
한꺼번에 세분이나 동시에 참석한 산행은 없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제일 연장자이신 손레지나님은 우리 회장님 사모님하고 연세가 같으신데
연세에 비해 훨 젊어보이시긴 해도 역시 그 연세답게 꺼릴게 없고 뻔뻔하신게
딱 우리들의 엄마 스타일이시다. 백두대간님이 장난 삼아 신입회원들은
노래로 신고식을 해야한다고 하자 신입회원 중 유일하게, 뻔뻔하게 노래를 하신
분이시다. 그것도 맨 정신에 말이다.ㅎㅎ..
신입회원 중 유일한 남자회원이신 드림(Dream)님은 알고보니 어마어마한 빽을
업고 오신 분이다. 산으로 향해 가는 길, 이른 새벽에 전화벨이 울려 이길 전회장님
인줄 알고 받아보니 우리의 조상 황대장이다. 황대장 말이 오늘 처음 가시는 분
중에 이영식님이라는 분이 있는데 알아서 잘 모시라는 엄포다.
밥 먹을 때도 밥 한 숫가락, 고기 한점이라도 더 얹어주라는 우리 황대장의 명령을
후배 등반대장으로 어찌 거역을 한단 말인가.
마지막 한분. 럭키 걸(Lucky girl)님은 본인이 럭키하다는 뜻인지 자기를 만나면
만나는 사람이 럭키하다는 말인지는 몰라도 카페 닉네임에 띄어쓰기까지 한 이름은
유일하다. 난 머리털 나고 여지껏 철인 3종 경기가 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그 철인 3종 경기를 한다는 사람은 처음 만나 본 것 같은데 바로 럭키 걸님이시다.
그것도 여자분이... 왠지 그런 부인을 둔 그 분 남편은 럭키한걸까 생각이 든다. ㅋ..
참, 닉네임뭘로하노님이라는(착각 마시라. 내가 띄어쓰기를 안한 것이 아니라
'닉네임뭘로하노'가 닉이다.) 분도 참석을 하셨는데 두번째지만 첫번째 같은 분이다.
이분은 첫번째 산행에 참석하셨을 때도 버스를 랜트했을 때 가셨는데 아마도
승용차는 맘에 안드셨던 모양이다.

 

우라질! 화창하던 날씨가 산행을 시작할려니 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몰려온다.
날씨가 찹다. 룩아웃 정상에 올라가 탁트인 사방이 안보이면 어쩌나 걱정이다.
언제나 출발은 순조롭다. 10명이 함께 출발했는데 전혀 급하지도 않은
언덕길임에도 선두와 후미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눈치를 보니 하필이면 후미 구룹에
속한 사람들이 기존의 우리 산악회 멤버들이다. 그분들이 너무 처지지 않게
슬쩍 속력을 줄이니 바로 뒤에서 '길이 막힙니다'라고 볼멘 소리가 들려온다.
누구긴 누구겠는가. 철인 뭐를 한다는 럭키 걸님이다.
할 수 없이 속력을 다시 높이니까 이번엔 저 밑에서 천천히 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ㅋ..
아픈 사람이 약을 찾아 먹듯 산에 가는 사람들도 뭔가 체력적으로 필요한게
있어서 산에 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처음 오신분들도 그렇고
건강한 사람들은 그래서 산에 잘 안가는, 아니 산에 갈 필요가 없는가보다.
앞으로 럭키 걸님은 미소천사님과 짝을 붙여줘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사실 오늘 산행 얘기는 쓰고 싶지가 않다. 아니 미천한 내 문장 실력으로는
어떻게 잘 표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이지만 너무나 완벽한 산행이었다. 10명 전원이 정상에 오르고 -물론
써니님도 포함이다. 정말 거짓말 아님. ㅋ..- 모두가 나름대로는 만족한 산행을
한 듯하니 내가 뭐 할 말이 있겠는가.
정상에서의 조망은 내 실력으로는 표현을 못하니 소설가 박완서님의 말을
빌려야겠다. "제 신앙심이 깊지 못하고 때로는 건성인 것은 이토록 눈물겹게
아름다운 자연을 제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제 버릇없는 투정을 용서하소서."
맞다. 그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다 가진 것 같아 옆에 계신
주님도 잊기가 쉬운 법인가 보다. 산사람만이 느끼는 감정이리라.

 

내려오는 길. 신앙심 깊기로 소문난 백두대간님이 먼저 엉덩이를 깔고 앉으셨다.
전문 용어로 글리세이딩이라는 등반 기법 중 하나인 엉덩이 썰매를 타시겠다는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회장님, 산이좋아님이 따라 앉으셨다. 우리 산악회
최 고령층 분들인데 이분들이 다리에 힘이 없어서 주저 앉으신건 아니고 내가 보기엔
철딱서니들이 없어서이시다. 오늘 처음 오신 최고령자 손레지나님도 따라 앉으신다.
산에만 오면 노인네(?)들도 어린 아이들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놀랍다. 할렐루야~~

 

우리 산악회가 이런 곳이다. 철딱서니 없는 어른들이 모여있는 곳이니 그 분위기가
어떻겠는가. 산악회라지만 군기 같은 것도 없고 언제나 화기애애(和氣靄靄, 서로 뜻이
맞고 정다운 기운이 넘쳐흐르는 듯하다)한 것은 말할 것도 없는데 그 분위기가
그대로 뒷풀이 자리로 이어진다. 딱 한잔의 하산주를 위해.

 

'칼바도스'라고 들어는 봤는가? 산이좋아님이 산(山) 다음으로 좋아하시는 프랑스산(産)
위스키 이름이라는데 술에 얽힌 사연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런건 그 술 좋아하시는 분한테
직접 듣기로 하고 암튼, 그런 고급 술이 산이좋아님에 의해 하산주 자리에
더해 졌다는 얘기다. 역시 술 도가 주인장이 공급해온 막걸리와 백세주와 꼬냑과
더불어 오늘은 500cc 딱 한잔의 하산주로 산행 참석 의미와 본전을 뽑았다는
김수영님의 고백은 좋은데 나는 뭐냐 이거... 젠장헐. ㅎㅎㅎ...

 

 

 

피에쑤..
오늘 처음으로 산악회에서 구입할 차량과 같은 밴을 랜트해서 산행을 했습니다.
저야 늘 운전하던 차니까 잘 모르지만 뒷 좌석에 앉으신 분들이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비좁아서 불편하지는 않으셨던지 너무 덜컹거려서 어지럽지는 않으셨던지
밴을 타보신 소감을 좀 소개해주세요.
암튼 오늘 비좁은 차안에서 고생하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4년 4월 8일 12 :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