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2962... Temple Mountain... 2013. 09. 06

진승할배 2013. 12. 19. 13:11

 

2주전(15일) 갑자기 통풍을 앓았다.
황대장이 놀러 온 하루 전날 밤에도 멀쩡했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왼쪽 엄지 발가락이 아프더니
이틀을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다행히 정박사님의 도움으로 일주일 만에 완치(?)를 하고
이렇게 지내면 안되겠다 싶어 산에 가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산에 가려니 등산화를 준비해야했다.
전에 신던 신발이 낡아서 새로 개비(改備)를 하려던 참이었다.
거금을 들여 등산화를 사고 비누칠을 하고 미리 적응을 시켜 놓을까하다가
전에 누군가가 요즘 신발은 잘 만들어서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은 기억을 떠올리고 그냥 박스채 한쪽에 쳐박어 놓기로 한다.

 

쾅, 쾅!
이른 새벽 굉음과 함께 어떤 아줌마가 최고급 차로 주차장 경계석을 타고 넘어
주차장으로 쏜살같이 들어온다.
그 덕(?)에 우리는 5시 정각에 출발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 6명을 태운차는 어두운 고속도로를 가르는데 뒷자리에 앉으니 졸음이 쏟아진다.
레드디어를 지날 때 쯤 저절로 눈이 떠졌는데 아침밥도 안주고 차는 레드디어를
그냥 지나친다. 시간 관계상 캔모어에서 아침밥을 준다는데 오늘 얼마나 죽을
고생을 시킬려고 저리 서두르나 싶은게 조금은 불안해진다.
다행히 캔모어 맥도널드에서 전날 캘거리에서 묵으시고 출발하신 오기자님을 만났다.

 

모레인 레이크. 우리의 산행 출발지다.
아침에 경계석을 타고 넘어 날아오신 아줌마가 등산화를
안챙겨 오셨다고 한다. 음.. 어쩐지 날아오는 폼이 수상타했다.
그래도 어찌 어찌 해결을 했는데 그 방법은 본인에게 물어보시라.
개인적으로 세번째 찾는 모레인 레이크다.
주변 풍광도 고운 물빛도 예전 그대로인것 같은데 호수에 떠다니던 통나무가
많이 줄어든것 같다.
모레인 레이크는 호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호수쪽과의 경사면이 너무
가팔라서 산에서 쓰러진 나무나 암석들이 그대로 호수로 굴러 떨어진다고
이름도 모레인(moraine 빙퇴석(氷堆石): 빙하에 의해 운반된 암석·모래 등의 퇴적물)
레이크라고 지었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런대도 호수에 나무가 안보이는 것은
사람이 인공적으로 치운걸까 내가 잘 못 기억하는 걸까?

 

등산은 호수 오른편의 그 가파른 경사면을 갈지(之)자로 완만하게 낸 길을 따라
마치 돛단배가 역풍에 바람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가듯 힘들게 시작된다.
그 길 이름이 Sentinel Trail.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그런지 그래도 등산로는
아주 잘 닦여져 있다. 이대장 말에 의하면 이 트레일이 로키에서 제일 높은 곳을
통과하는 트레일이라고 한다.
그 가파른 경사면을 오르다 자세히 보니 그 가파른 경사면에도 내 아름도 넘을 침엽수들이
빼곡히 들어찼는데 나무 밑둥이 대부분 'ㄴ'자로 휘어져 있는게 보인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 뿌리가 밑으로 뻗지를 못하고 경사면을 따라 뻗다 보니
나무 밑둥이 거의 수평으로 뻗어 나왔는데 그래도 지상에 나온 나무는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곧게 뻗어 올랐기 때문이다.
저렇게 경사면에서 자란 나무도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는데
평탄한 곳에 바르게 나아 준 우리 인간은 왜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지 못 할까?
내 이야기다.

 

우리가 올라가야 할 산이 이 트레일 끝에 있는가 보다.
그 가파른 경사면을 올라 능선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시야가 터지면서 광활한
분지가 나타나는데 그 분지를 둘러싼 산봉우리들이 장관을 이룬다.

 

트레일 끝난 지점에서 점심을 먹고 오기자님과 박성갑님과 헤어져
본격적으로 Temple Mt. 산행에 나선다.
지금까지 온 길하고는 전혀 다른 길이다. 흙이라고는 볼 수도 없고 오로지 바위, 돌길이다.
한국에 인수봉 후면으로 하강을 하고 다시 인수산장으로 내려올려면 인수봉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내려오는데 그 길(?)이 순전 바위 투성이다. 인수봉이 만들어 질때 그 바위들이
생긴건지 인수봉위에 있던 바위들이 오랜 세월 풍화에 의해 굴러 떨어진건지
바위를 하고 힘이 다 빠져서 그 길을 내려오면서 하는 말들이 
인수봉 할 때는 안다치고 이 길 내려가다가 떨어져서 다치겠다고 투덜거리는데
오늘 오르는 길이 딱 그 길이다.
어디서 그 많은 바위들이 굴러들어 왔는지... 하늘에서 돌 비라도 온 것 같다.

 

'태양!''태양아~''앤디!'
아침 맥도널드 화장실에서 처음 들은 그 소리는 오늘 하루 종일 아마도 100번은 들었을거 같다.
그건 오늘 얼마나 위험(?)한 산행이었는 가를 대변하는 소리이기도 하고
전형적인 한국 엄마들의 자식 대하는 태도이기도 할 터이지만
만약에 우리 엄마가 그랬다면 아마도 난 중간에 꽥 소리라도 질렀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끝까지 짜증 한번 내지않고 묵묵히 듣고 있는 그 태양이가 대견하다.

 

오르는 중간 중간엔 마치 실내 암벽 등반을 하듯 짧고 쉬운 볼더링(볼더링(Bouldering)의
사전적인 뜻은 큰 바위를 로프 없이 등산화와 초크만을 사용해서 오르는 행위) 코스가 있어
그런대로 힘은 들어도 오르는 재미가 있다.

 

점심 식사 시간을 빼고 이미 한 6시간은 넘게 걸었다.
오랫만에 한 산행. 체력은 바닥나고 시간은 오후 4시를 넘어가는데 올라갈 것도 문제지만 내려올
걸 생각하니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마침 내려오는 동양 아이들 무리를 만나 정상이 얼마나 더 가야하냐고 물으니까
아직도 한 두세시간은 더 올라야 하는데 나보고 시간 상 너무 늦지 않겠느냐고 걱정을 해준다.
그래 맞다. 나도 미련 없이 포기. 그 중 한 여학생이 나보고 'We always have next!' 라고 위로해준다.
맞는 말이다만 나에게도 그 다음이 있을런지...

 

오늘 글 제목을 보고 궁금하게 생각한 분도 계시리라.
2962m. 오늘 내가 올라간 꼭지점의 높이이다.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듯 누워서 한 20분은 죽은 듯 잠(?)에 빠져있다가 대장의 무전기 소리에
눈을 뜬다. 이석주씨도 포기하고 내려온다고 한다.
주섬 주섬 베낭을 챙기는데 5분도 안돼서 이석주씨가 나타난다.
작년 산행에 회장님도 여기서 멈추셨다고 하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헐~~ 그러고 보니 웬수끼리 하산하게 생겼다.
뭐.. 할 말도 없고 아니 말은 고사하고 그저 저 웬수 당장 코 박고 죽어줬으면 좋겠는데 (ㅎㅎㅎ)
위험한 길은 서로 알려주고 간식도 나눠먹고 담배도 같이 피고 계곡에 앉아 발도 같이 씻고...
참 뇌... 그런게 산행이고 산 동지인가 보다.

 

8시가 조금 넘어서 하산을 했다.
먼저 내려오신 박성갑님은 자기만의 약(?)을 드시고 차에서 주무셨다고 한다.
이제야 온 몸이 쑤셔오는데 막 저린 느낌이다.
새 신발 때문에 까졌던 발 뒷꿈치도 아프고, 통풍으로 앓았던 왼쪽 엄지 발가락도 우릿해오고,
양 발목은 시큰거리고, 종다리 허벅지는 욱신 욱신 쑤신다.
차에서 좀 잘려니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잠도 안온다. 이럴때 박성갑님이 드신 약이라도 있으면
좀 도움이 될려만 눈치를 보니 약도 떨어진거 같다.
아니 약을 남겨두면 약을 안 좋아하는 신랑이 올라가는 길도 혼자서 다 운전해야 될까봐
일부러 안 남긴거 같다. 음.. 작전이 틀림없다. ㅋ..

 

이미 해는 져서 어두운데 아직 정상팀이 도착을 안한다. 어느 순간부터 무전도 불통이다.
길이 험해서 어두워지면 위험할 거란 걱정이 되지만 정상에 올라간 사람들이 누구인가.
애써 걱정을 누르지만 '태양! 태양아~'가 걱정이다.
9시 42분. 정상팀이 도착했다. 역시나 대단들 하다. 아직도 포카혼타스 정도는 한번 더
올라가도 될 것 같은 모습들이다. 무엇보다 어린 태양이가 대견하다.
그렇게 전원이 무사히 산행을 마친다. 그리고 무사히 에드먼튼에도 도착했다.
도착한 시간? 그건 묻지마시라. 왜? 우리 마누라(?)가 알면 큰 일 나니까.